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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준 Apr 16. 2022

생각은 일시적이지만 기록은 영원하니까

메모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다

나는 일상생활 중에 메모를 자주 하곤 한다. 일을 하다가도, 지하철을 타다가도, 쉬고 있다가도 떠오르는 생각을 메모해둬야겠다 싶으면 가리지 않고 꼭 메모를 해 둔다. 이전엔 펜과 종이를 이용해야만 했기에 꽤 불편했지만, 요새는 짧게 메모를 할 수 있는 전자기기가 다양하기에 생각을 메모로 남기는 일 자체는 매우 쉬워졌다. 그렇게 남겨둔 메모는 나중에 다시 정리를 하곤 한다.




사실 메모를 한다는 것은 꽤 번거로운 일이다. 무언가를 하고 있는 와중에 메모를 하는 것은, 어떤 것에 계속해서 집중하고 있던 정신을 흐리는 일이다. 가령 내가 요리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재미있는 생각이 나서 메모를 한다고 하면, 하던 것을 모두 내려놓고 핸드폰을 집어든 뒤 메모를 하고 나서 다시 요리를 시작해야 한다. 메모를 하기 위해서는 당장에 하는 일의 집중을 흐려야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럼에도 메모하는 습관을 들여 뒀고, 메모를 해야겠다고 떠올리는 순간에는 주저하지 않고 메모부터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기회가 되면 메모하는 습관을 들이면 좋다고 추천하곤 한다. 특히 잡생각이 많은 사람들에게 더욱 강력히 추천하곤 한다.




내가 그런 습관이 생기게 된 것은, 군대 때부터였다.




나는 군대에 있을 때 메모하는 습관을 들이게 되었다. 2018년 8월, 서울 남산




지금의 군대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가 있을 때의 군대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던 때였고 일도 많았다. 그런데 일과 중에 갑자기 불현듯 재미있는 생각이나 나중에 다시 생각해 보고 싶은 것들이 머릿속에 떠오르면, 나는 그날 일을 모두 마치고 다시 생각해 보려 하곤 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려 해도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다시 생각해 보려 해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것이, 어찌 생각하면 중요한 것이 아니기에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에겐 그것이 굉장히 답답하고 아쉬운 일이었다. 이때 어떻게 생각을 해서 이런 생각을 했더라, 하면서 아무리 더듬어 봐도 그때 내가 했던 생각이 딱 떠오르지 않는 것이 여간 답답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 이후에는 나중에 생각해 보고 싶은, 메모할 거리들이 있으면 최대한 빨리 메모를 했다. 사실 업무 특성상 수첩을 가지고 다니면서 정리할 것이 많았지만, 업무적인 것 외에도 생각을 정리하고픈 것들을 메모하곤 했다. 당장 메모할 수 없다면 이걸 메모해야겠다, 라고 명확하게 생각하고 나중에 반드시 메모했다. 그렇게 메모해 두니 시간이 지나서 머리를 쥐어짜면서 이전 생각을 떠올리려고 고생할 필요도 없었고, 생각해 보고 싶었던 것을 나중에 내가 원하는 때에 생각해 보기에도 좋았다.




그렇게 군대에서 메모하는 습관이 생긴 이후로 지금까지도 계속, 나는 메모하는 습관을 가지고 생활하고 있다.




나중에 기억하지 못할 수 있는 생각을 기록하기 위해, 메모하는 습관을 들였다. 2018년 11월, 서울 청계천




생각은 머릿속에 흐르는 강 같아서, 다양한 생각이 순식간에 흘러가는 것이다. 우리는 강에서 뭔가 마음에 드는 것이 흘러가고 있을때 그것을 쫒아가서 잡아챌 수 있지만, 생각의 강은 다르다. 빨리 잡아채지 않으면 어어어 하는 사이에 그것은 강물을 따라 흘러가 버리고 다시는 되찾을 수 없다. 우리가 하고 있는 그 생각은 오직 그 순간에만 존재하는 것이다. 놓쳐버린 생각은 언제 다시 돌아올지도 모르고 혹시 다시 떠올린다 해도 그때 했던 생각과 완전히 동일한 것이 아니다. 그러기에, 일전에 했던 생각을 다시 떠올리는 것은 매우 번거로운 일이다.




메모하는 습관은 그 흘러가는 생각을 고정시켜준다. 머릿속에서 바람빠진 풍선마냥 중구난방으로 돌아다니는 생각을 붙잡아서 움직이지 않는 표본으로 만들어 준다. 메모 하는 과정에서 생각을 정리하여 좀 더 정제된 생각을 메모로 남길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고 날것 그대로 적는다 해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지금 당장 메모하지 않으면 사라져 버릴 생각을 바로 이 순간에 고정시켜 주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지 않을까.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맞는 방법으로 다양한 생각을 메모한다. 단순히 생각을 적어내는 것이 아니다. 의식하지 못한 상황에서 시간처럼 흘러가는 생각을, 더이상 잊지 않을 수 있도록 고정시키는 것이다. 비록 생각은 일시적일 수 있더라도, 그런 생각을 적어둔 기록은 영원할테니 말이다.




메모를 통해, 흘러가는 생각이 고정된 형태로 현실에 자리잡게 된다. 2018년 12월, 서울 남대문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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