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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준 Apr 24. 2022

교훈 6, 계산대에서 지체되면 일단 줄에서 벗어나자

부모님과 함께 걸어다닌 잘츠부르크

제대로 된 호스텔에서 첫 밤을 지내고 다음날 아침. 의외로 부모님은 잘 주무셨지만, 화장실과 세면시설을 공유한다는 생각에 아주 편하게 계시지는 않으셨던 기억이 난다. 호스텔에서 먹을 수 있는 조식을 푸짐하게 잘 챙겨 먹고 여행 일정을 나섰다.




뮌헨은 그 자체로도 유명한 도시지만, 근처에 있는 유명한 명소들을 갈 수 있는 징검다리 역할도 많이 하고 있다. 원래 스위스를 가지 않는다면 독일의 스위스라고 불리는 추크슈피체를 갈까 했지만, 부모님과 함께 스위스를 둘러본 상태라 또 갈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잘츠부르크 였다. 한국에서도 유명한 관광 도시이기도 하고, 뮌헨에서도 직통 기차를 타고 편하게 다녀올 수 있어서 마음에 들었다.




사실 나는 그때 아직 여행지를 찾는 것에 대해서  모르고 있었고, 뮌헨 근처에 다른 곳을 알아볼 여력이 없었던  같다. 잘츠부르크 말고도 가볼 만한 곳이 많을  같았는데, 다시 간다면    유명한 다른 관광지들을    같다. 물론  유명한 곳이 어디 있겠싶지만 말이다.




여하튼 뮌헨에서 부모님과 함께 열차를 타니, 열차는 흔히 볼 수 있는 독일의 풍경을 지나쳐 가며 잘츠부르크로 향한다. 산 혹은 언덕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넓은 초원에 농경지가 깔려 있고 가끔 도시나 집들이 지나친다. 아빠는 독일의 국력이 어디서 나오는 지 알겠다면서, 땅이 무지하게 넓은 것이 실감난다면서 신기해 하신다. 그렇게 몇 시간 기차를 타고 가니, 잘츠부르크에 도착한다.




그런데 잘츠부르크 역에 내려서 주위를 두리번 거리고 있으니, 어떤 할아버지가 와서 말을 건다. 혹시 괜찮다면 자기가 잘츠부르크 안내를 해 주겠다고 한다. 사실 내가 혼자 여행을 하면서 겪었던 일들 중에는 그야말로 눈 뜨고 있는데도 코 베어가는 일도 많이 있었지만, 정말 순수한 선의로 겪었던 일도 많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때 부모님과 함께 있었고, 최대한 조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할아버지와 조금 이야기를 해 보니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고, 어차피 사람들 많은 번화가 쪽에서 움직이는데다가 크게 문제는 없을 것 같아서 조금 따라가 보기로 했었다. 한국에서 엔지니어 일을 잠깐 했었다며 명함을 보여줬는데 유명한 회사의 것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 유행어도 잘 알고 있었다. 건물 안에서 이런저런 문화를 알려주면서 부모님께 설명해 드리라고 이야기 하기도 했다. 한국 사람들이 맥주 코스터에 적어준 일종의 후기 같은 것을 가지고 다니면서 보여주기도 했는데, 별명이 잘츠부르크 김정일이었다. 왜 하필이면 김정일이냐고 물으니, 그건 아주 긴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괜찮다면 잘츠부르크 근처의 자기 고향에 있는 브루어리로 초대하고 싶다고 했고 그때까지 가니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에, 좋은 제안이지만 부모님과 함께 왔고 잘츠부르크 구경을 하는 일정이 있어서 힘들 것 같다고 정중하게 거절했다. 그리고 그때 가지고 있던 믹스커피를 전부 다 선물로 주었다. 사실 한국에서 생활했다면, 믹스커피는 이미 온갖 종류를 먹어봤을 것 같지만, 그때 우리 가족이 표현해 줄 수 있는 최대한의 성의 표시라고 생각해서 줬던 기억이 난다.




이 할아버지와 헤어지고 나서 우리 가족은 잘츠부르크 김정일은 왜 이런 활동을 하는 것일까 하고 생각했다. 자기 시간을 써 가면서 외국인과 말상대를 해 주고 현지 안내를 해 준다니, 그 행동에 어떠한 금전적인 동기가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오래 지난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아무런 금전적인 대가가 없다 해도 충분히 할 만한 것 같다. 은퇴하고 나서,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흥미를 가지고 찾아오는 사람들과 대화하고 그것을 안내하면서 말상대를 하는 일은 그것만으로 이미 재미있는 일 아닐까. 문득 다시 생각하니, 나도 그런 일을 해보고 싶다고 느꼈다.




잘츠부르크 김정일 할아버지가 보여줬던, 맥주 가게의 코스터. 언젠간 가기를 기대하며




유명 영화 촬영지로도 알려진 미라벨 정원




좋은 날씨에 꽃들이 알록달록하게 피어 있는 미라벨 정원을 통과해서 조금만  걸어가면 사람들로 북적이는 잘츠부르크 시내가 나온다. 다리 근처에서 아이스크림을 사먹은  다리를 건너 조금  걸어가면, 사람들로 북적이는 좁은 골목이 나온다.  옆으로 비슷한 높이와 양식의 건물들이 각각 조금씩은 다른 색으로  늘어서 있는 모습이다. 모차르트가 태어났다고 하는 생가도 있고 기념품 가게도 있는데, 아무래도 우리 가족의 관심은 전자보다는 후자이다.




그중에 기념품 가게 한 곳에 들어가서 부모님에게 필요한 기념품을 사려 했다. 사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기념품에 큰 관심이 없는데, 부모님은 거기서 물어볼 사람이 나밖에 없으니 뭘 사면 좋냐고 나에게 물어보셨다. 이런저런 것들을 이야기 하며 다 골라서 계산대에 서려는데, 계산대 바로 앞에서 부모님이 어차피 소금을 다섯개 살 바에 그냥 열개 사는게 낫지 않겠냐고 말하면서 가격이 얼마나 차이 나냐고 물어보신다. 뒤에 사람들은 잔뜩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고, 부모님은 어떤게 더 싸냐고 물어보고 있고, 나는 직원 앞에서 할말을 잃었다. 그리고 직원은 나를 보더니 마치 모든 것을 다 깨달은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알아, 무슨 말인지 알겠어.




사실 그러면 그냥 줄을 벗어나서 뒤로 가면 그만이지만, 그때 경험이 없던 나는 그저 줄에서 내가 예상한 대로 일이 풀리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매우 당황해서 하늘이 노래지는  알았다.  뒤로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에 다시  뒤로 돌아가서 부모님이 물어본 것을 확인했던 나는, 계산대 앞에서 결정을 바꾸지 말아달라고 부모님께 부탁드렸다. 사실 사람 마음은 언제나 바뀔  있는 것이니, 부모님에게 바꾸지 말아달라고 하는 것보다 부모님이 마음을 바꿨는지를 내가 먼저 확인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교훈 6, 계산대에서 지체되면 일단 줄에서 벗어나자'




짧은 혼돈의 쇼핑을 마치고, 골목을 조금 걸어가다 보니 분수대가 있는 큰 광장이 나왔다. 맑은 날씨에 붐비지 않는 광장과 그 주위를 둘러싼 건물들에, 비슷한 광경을 몇 번 봤던 나도 그때는 묘하게 그 광경이 신기해서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엄마가 나를 보면서 혹시 교환학생 하는 동안에 여행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말하면 도와줄테니 꼭 말하라고 이야기 했었다. 나는 그때 그게 무슨 말인지 잘 몰랐지만,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그 말을 이해하고, 어떻게든 그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지 못했던 것 같아서 종종 아쉬운 마음이다.




분수대가 있는 멋진 레지던스 광장, 그곳에서 엄마와 나눴던 대화




잘츠부르크 도심지를 조금 걷고 나면 언덕을 비스듬히 올라가는 산악열차를 타고 잘츠부르크 성에 갈 수 있다. 성에 오르면 잘츠부르크 시내와 함께 잘츠부르크 사이를 흐르는 강이 보인다. 높은 산 없이 중간에 언덕만 두고 펼쳐진 넓은 땅은 한국에서 보기 힘든 모습이다. 성에 있는 기념품 가게에도 잠깐 들렀는데, 이곳에서는 내가 쓰기 위해서 허브 소금을 샀던 기억이 난다.




호엔잘츠부르크 성에서 볼 수 있는 잘츠부르크 시내와 넓은 평원




짧은 잘츠부르크에서의 시간을 뒤로하고, 다시 뮌헨으로 돌아왔다. 뮌헨 중앙역에서 가까운 곳에 숙소가 있기에 사 온 짐을 마음 편하게 숙소에 넣어두고 저녁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어제 잘 때 침대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 아래쪽 사진을 찍어서 직원에게 물어봤었다. 지지대 중 몇개가 빠진 것 같은데 괜찮냐고 물어보니, 위에서 점프라도 하지 않는다면 큰 문제 없을 거라는 대답을 들었다. 내심 지지대를 다시 끼워 주기를 바라고 있었던 나는 꽤 아쉬웠지만 어쨌든 문제가 없다니 다행이었다.




직원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사진을 찍었던, 지지대가 몇 개 빠진 침대




어수선한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뒀던, 호스텔 침실의 모습




이날 부모님을 모시고 저녁을 먹으러 비어홀 이라는 곳으로 갔었다. 정확하게 어떤 비어홀이었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한데다 사진도 제대로 찍어 두지 않아서  모르겠는데, 이곳에서 비어홀이라는게 어떤 것인지 처음 경험해 봤던 기억이 난다.  공간에 있는 넓은 탁자에는 사람들이 복작대면서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하고, 바이에른 전통 복장을  점원들이 돌아다니면서 음식과 술을 나른다. 매장 가운데에는 밴드가 있는 공간이 있는데, 저녁에 음식을 먹는 사람들 사이에서 음악을 연주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곡은 옥토버페스트 음악으로 유명한 Ein Prosit 였다.




악단 바로 앞쪽에 앉아서 음악을 들으며 부모님과 이야기 하고 음식을 먹었는데, 사실 나는 악단 음악을 들으면서 음식을 먹는 것이 처음 경험해 보는 것이었다. 활력 있는  특유의 분위기는 한국의 북적이는 시장에서 음식 먹는 것과 비슷해서, 나중에 뮌헨에  간다면  다시 가보고픈 곳이다.




비어홀의 안의 작은 악단이 사람들에게 음악을 들려 준다




시끌벅적한 곳에서 부모님과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 하던 그 때의 기억




다시 뮌헨에 간다면, 비어홀에 또 가고 싶다




악단의 음악과 사람들의 웃음소리로 가득찬 비어홀을 뒤로하며 거리로 나온다. 늦은 뮌헨의 골목길은 몇몇 상점들의 진열장만 불이 들어와 있었지만, 거리엔 곳에 사람이 있어 불안하진 않았다. 밤거리를 걸어 다시 호스텔로 돌아온다.




뮌헨에서의 마지막 밤이 그렇게 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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