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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준 Apr 24. 2022

뒷맛 씁쓸한 호캉스

일해, 돈벌어야지

동생은 운동선수다. 일 년에 운동을 해야 하는 때가 있고 그렇지 않은 시기에는 조금 여유가 있다. 이 시기라는게 매우 규칙적이라서, 동생은 좀 여유있는 시기에 여행을 가자고 한다. 내가 편하게 여행을 갈 수 있을 때는 동생과 함께 일본을 갔었다. 


물론 해외여행이 힘들어진 지금은 국내에 다른 여행지라도 가고 싶어 하지만, 사실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사는 지금의 상황에서 다 같이 모여 국내여행을 가는 것도 쉽지 않다. 동생은 다 같이 모여 어딘가를 가는데에 의미를 두고 싶어하지만, 현실은 가족 중에 한 명은 항상 시간이 맞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결국 호캉스를 한다고 하면 또 다같이 모이는 것도 아니다. 한 달 전에 이때 진행하자고 동생 주도로 내가 예약을 했는데 아빠는 갑자기 몇 주 전 일정이 안 된다고 한다. 주말에 보통 일이 있는 엄마는 같이 가기로 해 놓고 주말에 일을 하겠다고 한다. 어차피 저녁 먹는 시간 전에는 도착할 수 있으니 뭐가 문제냐고 하고, 동생은 그 모습을 보고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투덜댄다. 


나는 그 둘을 보면서 호캉스 하는 그 돈을 벌기 위해서는 얼마나 생활비 절감을 해야 하는지, 그 비용으로 인터넷 쇼핑을 하면 내가 원하는 식자재를 얼마나 많이 살 수 있을지, 계산기를 두들기기 시작한다. 총체적 난국이란 이런 것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동생과 함께 그리고 가족과 함께 일정을 진행한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자, 라고 마음을 먹은 상태이기에 그런 복잡한 것은 제쳐두고 인생 처음으로 호캉스라는 것을 즐겨보기로 한다. 어쨌든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간에 배움의 도움이 되기도 하니까. 




가족행사는 절대로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 호캉스도 그렇다. 2022년 4월, 서울 중구





요새 있는 좋은 호텔에 가서 숙박하는 것 외에, 삼시세끼 밥을 먹여주는 라운지 혜택이 포함된 것들이 많고 그것중에 하나를 골라 객실을 예약했다. 동생을 열심히 꼬드겨서 근처의 유명한 카페를 가보자 하지만, 걷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동생을 억지로 데리고 갈 수는 없다. 무엇보다, 호텔을 예약해 놓고 왜 호텔 밖에서 시간을 쓰냐는 동생의 주장은 너무나도 완고하다. 나는 어차피 밖에 나가니 근처의 갈 만한 곳들을 같이 돌아보면 좋지 않느냐 인데, 극명한 성향 차이를 다시 한번 느낀다.




을지로와 명동 근처에 있는 그 호텔은 나도 몇 번 지나다니며 본 적이 있었다. 호텔보다는 옆쪽에 있는 큰 백화점을 오고가며 자주 봤었는데, 군대 가기 직전, 그 앞에서 관광객들 사진을 찍어주기도 했다. 부모님과 함께 여행 갈 때 그곳 맞은편의 은행에서 환전을 하기도 했다. 백화점 만큼은 아니지만 호텔도 몇 번 들어갔다 나온적이 있었는데, 1층에 있는 베이커리를 가거나 음식점에 간 적이 있었다. 하지만 숙박 예약을 해 본 적은 없었다. 이번에 호캉스를 가면서 직접 간 것이 처음이었다.




1층의 사람으로 번잡한 로비를 지나 엘레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데, 엘레베이터 천장에 복잡하고 화려한 장식이 보였다. 체크인 하는 층에 내려 보니 창 너머로 을지로 쪽 전망이 탁 트여 있었다. 이날은 날씨가 좋아서 전망이 아주 좋게 보였다. 이런저런 것들을 확인하고 체크인 해서 객실로 올라가니, 사치스러운 샹들리에가 있는 객실이 보였다. 화장실은 석재로 되어 있어서 우리 집 안방보다도 안락해 보였다. 




요새 라운지가 포함된 호캉스 패키지의 특징이라면 하루 세 끼에 맞춰서 계속해서 음식을 준다는 것이다. 일단 체크인 하고 나면 애프터눈 티 라고 해서 간단한 다과와 간식을 준다. 이전부터 고급 호텔들에서 판매하는 애프터눈 티 세트를 먹어보고 싶었는데, 그런 것들에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나름 괜찮은 애프터눈 티를 경험할 수 있었다. 


동생과 이것저것 이야기 하면서 애프터눈 티를 먹고 나서 시간을 보내면 잠시 후 저녁 시간이다. 늦게 도착한 엄마 그리고 일정이 되지 않아 못 온 아빠 대신 오신 엄마 친구까지, 다함께 오랜만에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저녁을 먹는다. 저녁을 먹고 나면 호텔 1층의 라운지에 가서 간단하게 술을 먹는다. 중간중간 이용할 수 있는 사우나에 들락날락 하면서 쓸 수 있는 것들은 모두 써 본다. 




그렇게 다음날 아침이 되면 혼잡한 시간을 피하기 위해 평일보다 더 일찍 일어나서 아침을 먹으러 간다. 아침을 다 먹고 나서 사우나에 가서 또 목욕탕에 몸을 담궜다가 다시 방으로 돌아오면 이제 체크아웃이 목전이다. 기다리면서 조금 낮잠을 자다 보면 체크아웃 시간이 된다. 




1박 2일의 놀이공원 같은 호캉스가 그렇게 끝나고, 집으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타러 간다. 




라운지 이용이 포함된 호캉스는 할 것으로 가득찬 것이 놀이공원 같다. 2022년 4월, 서울 중구




살면서 처음으로 해 본 호캉스, 게다가 라운지까지 쓰는 호캉스를 하다 보니 새롭게 느낀 것이 다양하게 있었다. 




보통 호캉스 하면 마음 편하게 굴러다니면서 쉬는 것을 생각하지만 생각보다 일정이 바빴다. 체크인은 3시 부터인데 3시 이후부터 애프터눈 티를 준다. 애프터눈 티를 먹고 5시 30분 부터 저녁식사 시간이다. 저녁식사 먹고 나면 늦은 시간이라 어딜 구경하기 애매해서 이때 보통 사우나 같은 부대시설을 쓰러 간다. 부대시설 쓰고 나면 뭔가 허전해서 1층 라운지에서 술 한잔 해야겠다 싶어 라운지 간다. 술 먹고 올라오면 늦은 밤이라 잠들어야 하고, 다음날 아침은 또 혼잡한 시간을 피하기 위해 일찍 일어나 조식을 먹으러 가야 한다. 


빈틈없이 뭔가를 하다 보니, 한국인들은 여행지 가서도 새벽같이 일어나 일정을 시작한다는 이야기가 괜히 있는 것이 아니구나 싶었다. 




라운지 가격이 포함된 패키지의 경우 가격이 상대적으로 비싼 편인데, 이런 곳을 이용하면 다른 곳에는 돈을 하나도 안 쓸 줄 알았다. 그런데 오히려 라운지 포함 패키지를 이용할 때 부대시설에서 돈을 사용하는 비중이 더 높은 것 같았다. 라운지 이용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면, 어차피 숙박 이외에 돈 쓸 일이 없으니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밖에서 해결할 수도 있다. 하지만 라운지 포함된 패키지의 경우 업장 안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다 보니 멀리 나가기 더욱 번거로워지고, 그것 때문에 부대시설을 더 이용하게 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런 저런 느낀점 이외에 나에게 남은 것은, 묘한 씁쓸함이었다. 여태까지 한 번도 누워 본 적 없는 그런 침대에서 자고, 방을 돌아다니면서 편하기는 확실히 편했다. 요새 호캉스에 대해 이야기 하는, 현실의 고민들과 완벽히 분리된 공간이 주는 편안함과 해방감 이라는 것도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편안함이 이상했다. 나에게는 그것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좋은 전망과 편안한 침구류, 맛있는 음식과 즐기는 소중한 사람들과의 시간이 좋았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그것들이, 마치 해감 되지 않은 조개를 먹을 때 씹히는 모래알처럼 까슬거렸다. 




서울 안 좋은 자리에 있는 사치스러운 공간의 숙소, 맛있는 음식들. 지금 내 손에 쥐어져 있고 내가 즐기고 있는 것들이, 그저 잠깐 나를 스쳐 지나가는 것에 불과하며 내가 그것을 위해 치른 대가가 결코 작지 않다는 것. 그리고 그런 것들이 온전히 내 것이 될 일은 앞으로 절대 없다는 것이, 뒤로 이어져 있는 전철의 객차처럼 기분 좋은 편안함과 해방감 뒤에서 쫒아오고 있었다. 체크아웃 후, 그것은 호텔 건물만큼이나 커져 나에게 그림자를 드리웠다. 




결국 호캉스란, 내가 지금 무엇을 가지고 있지 않은지, 내가 무엇을 가지고 싶은지 알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앞으로 그것을 가질 수 없을 것이라는 것도. 그래서, 나에게는 호캉스의 뒷맛이 씁쓸했던 모양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나는 결국 가질 수 없음이, 내가 느낀 호캉스의 씁쓸함이었다. 2022년 4월, 서울 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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