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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준 May 01. 2022

교훈 7, 기념품은 여행을 기억나게 해준다

나중에 그 여행을 잊지 않기 위해서

도시 하나에 머물 때 박수가 2일 정도밖에 되지 않으면, 너무 순식간에 도시를 떠나는 느낌이 든다. 어딘가 가서 그날 자고 다음날 자면 더이상 그곳에 없는 것이다. 지금 내가 여행 계획을 한다면 절대 그렇게 하지 않을 일정이다. 하지만 원래 하고 싶은 것과 해야만 하는 것은 다른 법이고, 여행 중에도 그런 것이 분명히 있다.




하고 싶은 것을 떠나 해야 하는 것을 하기 위해, 뮌헨에서의 2일을 마무리 하고 프라하로 떠나기로 했다. 호스텔에서 체크아웃   침구류를 정리해 세탁통에 넣어야 하기에  가족의 것을 반납했다. 호스텔을 떠나기 , 믹스커피 마실 뜨거운 물을 챙기기 위해 주방에서 전기주전자에 물을 한가득 받아 끓인다. 기다리는 사이 어떤 여자애가 옆에서 자기도 뜨거운 물을 받겠다면서 기다리는데,   찻잎 반의 컵에 빨대가 꽂혀 있다.




빨대로 찻잎을 먹는건가 싶은 생각에 물어보니, 자기가 온 남미에서 흔하게 마시는 차 문화라고 한다. 찻잎과 뜨거운 물을 한가득 담아서 빨대로 빨아 먹는다는데, 그럼 찻잎을 같이 먹냐고 물어보니 빨대 끝에 필터가 있다고 한다. 자세히 보니 정말 필터가 달려 있어서 차만이 올라온다. 한번 먹어보겠냐고 해서 먹어봤다. 마시는 것은 일반적인 차와 다를 것이 없었다. 다만 뜨거운 차를 빨대로 먹는다면 입 안을 데기 좋을 것 같다. 신기한 경험에 가지고 있던 믹스커피를 좀 건네주었던 기억이 난다.




뮌헨에서 출발한 버스는 중간중간 정류장을 거치며 프라하로 간다. 좁긴 해도 버스 안에 화장실이 있고, 규모가 큰 버스인 경우 2층 버스로 되어 있기도 해서 생각만큼 답답하진 않다. 창 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을 구경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옴짝달싹 못하고 다섯 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는 것은 꽤 답답한 일이다. 부모님을 모시고 가다 보면 필요 이상으로 긴장되는 것도 있고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하기에 가급적 안 자고 깨어 있으려 했지만 결국 중간에 졸다 깨다를 반복하게 되었다. 그렇게 버스를 타고 프라하에 도착했다.



부모님과 가기 전, 몇달 전 혼자 왔을 때 찍었던 프라하 도착 직후의 모습




사실 프라하에 도착해서 예약한 숙소까지는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고 그 사이 골목길을 통과하면서 보면 구경할 것도 많다. 하지만 부모님을 모시고 다니다 보니 캐리어를 끌고 숙소까지 걸어가는 것은 약간 애매했다. 주저하지 않고 지하철을 타기로 한다. 한국에서 흔히 지하철 표는 1회권 기준을 하는데, 프라하의 지하철 표는 편도 이용이 아니라 정해진 시간 동안 이용하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표를 끊고 입구에 있는 기계에 표를 집어넣은 뒤 지하철을 탄다. 표를 넣어서 이때부터 표를 사용한다, 라고 도장을 찍는 것이다.



 

그런데 지하철을 타려고 개찰구를 넘어가니 건장한 남자 두명이 불러 세운다. 혹시 표를 샀냐고 물어보는 것이다. 그들이 신분증을 보여줬는지  보여줬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아무래도 검표를 하는 사복경찰 이었던  같다. 인터넷을 뒤져보면 무임승차 하는 비법을 적어놓은 곳들도 많지만 나와 우리 가족은 무임승차를  정도로 대담하지는 않았기에   표를 모두 보여주었다.


경찰은 표를 보더니 도장을 잘못 찍은 것 같다면서, 다음번엔 잘 찍고 타라고 이야기 한 뒤 사라졌다. 사실 경찰이라고 하면서 접근해 불편한 사업을 벌이는 사람들도 많기에 번화가나 대도시에서는 항상 조심해야 하지만, 적어도 그때 내가 본 사람들은 정말 확실하게 경찰이었던 것 같다.




여하튼   없이 지하철  정거장을 거친  걸어서 숙소에 도착했다. 프라하의 숙소는 호스텔이었는데, 내가  처음 프라하에 왔을  이용했호스텔이었다. 교환학생 하면서 처음으로 스스로 계획 짜서 여행  곳이 프라하 였는데, 호스텔을 이용해 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하지만 깔끔했고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웠기에 부모님을 모시고 다시 예약했다. 다만 아쉬웠던 것은, 내가  처음에 예약했던 곳은  쪽으로 창문이  있고 볕이  드는 2 방이었는데, 이번에 배정받은 곳은 안쪽  없는 1 방이어서 구조가 많이 달랐다. 다음번에 방문한다면 객실 위치를 지정해서 예약하고픈 마음이 굴뚝이었다.




맨 처음 예약했을때 배정받은 객실. 이곳을 쓰지 못해 너무 아쉬웠다




하지만 아쉬움은 뒤로 하고 일단은 짐 정리를 마친 뒤 이틀밖에 없는 시간을 알뜰살뜰 쓰기 위해 구경을 나선다. 숙소는 프라하 성으로 가는 언덕길 방향에 있었는데, 오후 시간에 프라하 성을 다 돌아보기에는 약간 빠듯할 듯 했고 프라하 성 대신 높은 곳 위에서 주위를 구경할 수 있는 페트린 타워를 가기로 했다.




페트린 타워까지 가는 길은 비스듬한 언덕길을 따라서 올라가다가 공원을 지난다. 언덕길을 따라 올라가며 몇 번 뒤를 돌아보면 뒤쪽에 프라하의 전경이 펼쳐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페트린 타워 꼭대기에 도착하면 더 탁 트인 전경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가면서 중간중간 뒤를 돌아보면 그다지 멀리 걸어오지 않았다 해도 여태까지 온 길이 프라하 시내와 함께 펼쳐지는 것이 멋있다.



페트린 타워까지 가는 길 중간에서 돌아보는 프라하의 전경




그다지 힘들지 않은 길을 조금 걸어 가면 페트린 타워에 금새 도착한다. 타워 근처에는 매점이 있어서 원한다면 맥주를  마실 수도 있다. 한국에서는 길거리에서 맥주 마신다는 것은 약간 어색하지만, 페트린 타워 근처의 매점에서는 탄산음료 마시듯이 맥주를  마실  있었다. 한국에서도 유명한 체코 맥주인 필스너 우르켈을  먹을  있다. 옛날에 혼자 갔을 때는  먹었지만, 이번에는 부모님과 함께 가야 했기에  먹지는 않았다.




페트린 타워는 걸어 올라갈 수도 있고 엘레베이터를  수도 있는데, 걸어서  올라갈 정도의 높이는 아니었기에 내가 혼자 갔을 때는 걸어서 올라갔다 내려왔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부모님을 모시고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추가요금을 내고 엘레베이터를 이용하기로 했다. 다만 엘레베이터가 작은 편이라 타기 위해서는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엘레베이터 앞에는 나보다 어려 보이는 여자애가 표를 확인하며 사람들 탑승을 도와주고 있었는데, 아빠는  모습이 인상 깊었는지, 대학생이 알바하는  같다고 했다.



아래에서 올려다본 페트린 타워




페트린 타워 위에 오르면 프라하의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프라하 중앙을 흐르는 볼타바  주위로, 진홍색 지붕상아색 벽을 건물이 다닥다닥 몰려 있다. 까를교와 화약탑 같은 유명한 건물들도 쉽게 알아볼  있다. 페트린 타워  전망대 아래로는 바람이 통하는 공간을  둘러 걸어 내려올  있는데, 사실 보이는 전망은 비슷해도 높낮이에 따라 조금씩 바뀌는 풍경을   있다.



페트린 타워 위에서 보는, 프라하의 전경




서늘한 바람과 함께 구경을 마치고 천천히 내려오면, 산책로처럼 되어 있는 공원을 통해 아래로 내려올  있다. 프라하 시내의 주요 관광지들은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서 모두 도보로 이동할  있어서 걸어다니는데에 부담이 없다. 아래까지 내려와 골목을 구경하며 카를교까지 걸어갔던 기억이 난다. 카를교는 프라하에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봤을 법한 다리인데, 아마 프라하에 있는 여러 다리들 중 가장 유명할 것이다.




카를교 위에서는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이나 간단한 공예품을 파는 사람들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나라에서  관광객들까지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아래 강으로는 사람을 실은 여객선이 돌아다니고,  멀리 프라하 성과 대성당이 선명히 보인다.  옆으로는 페트린 타워도 보이는데, 페트린 타워 쪽은 푸른 나무가 무성한 숲으로 되어 있어 프라하   전망과 대비된다.




부모님과 같이 있을 때는 찍지 못했던, 카를교 위의 전경. 오른쪽에 프라하 성과 대성당이 보인다




카를교를 건너면 작은 광장과 함께 횡단보도가 나오는데, 이곳의 신호등과 바로 옆쪽 탑 아래로 지나가는 터널, 그리고 앞쪽에서 지나가는 노면전차의 운치가 좋아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신호등을 건너면 프라하 구시가지로 들어가는데, 좁은 골목 양쪽으로 비슷하게 생긴 건물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다양한 상점들과 함께 사람들로 붐비는 곳에서 활력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카를교에서 구시가지로 이어지는 곳




이곳에 스와로브스키 매장이 있었는데, 아빠가 엄마에게 목걸이를 사 주셨던 기억이 난다. 엄마는 평소에 장신구를 많이 좋아하시는 편이 아니었는데 지금은 일 하면서 쓰시는 것 같다. 사실 나도 여행하면서 기념품을 정말 안 사는 편이었다. 물건을 살 때 경제성을 가장 먼저 생각하는 나는, 이때 이 물건을 사서 그게 얼마나 유용하게 쓰일 것인가를 생각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도 옛날 여행에서 샀던 물건들을 돌아보면, 마음에 드는 기념품을 사는 것도 좋은 생각인  같다. 기념품 자체가 경제적인 의미가 있어서가 아니다. 나중에 훗날 여행과 소중한 순간에 대한 기억을 잊어버리기 시작할 , 그때의 소중한 기억을 떠올리고 상기하기 위해서이다. 기념품 아니면 다른 것이라도, 그렇게 기억을 떠올릴  있는 것은 많이 간직해야 하는  같다.




'교훈 7, 기념품은 여행을 기억나게 해준다.'




이때 프라하는 두번째 였지만, 사람이 많아서 그랬는지 아니면 이전에 봤던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정말 사진을 별로 찍지 않았다. 시간이 한참 지나서 부모님을 모시고 다시 간 여행에서는 사진을 열심히 찍었지만, 이때는 사진을 찍어야겠다는 생각을 별로  했던  같다. 그런데 나중에 돌아보니, 벽에 매달린 박쥐를 찍은 사진이 있었다.  박쥐만큼은 정말 신기했었던 모양이다.




앞뒤 몇 시간 동안 찍은 사진 없이, 핸드폰에 덩그러니 들어 있었던 박쥐 사진




혼자 갔을 때 찍었던, 프라하 구시가지 골목




구불구불한 구시가지의 골목을 따라 조금 걸어가다 보면 구시가지 광장이 나온다. 시간에 맞춰서 움직이는 천문시계가 유명하지만, 사실 천문시계보다 천문시계를 보기 위해 몰려드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이 더 재미있는 곳이다. 구시가지 광장 변두리에는 이런저런 음식들을 파는 노상 가게들이 있는데, 이곳에서 부모님과 저녁을 먹었다. 메뉴는 소세지와 통햄이었다.




사실 통햄에는 나름의 이야기가 다.  처음에 혼자 프라하를 왔을  나는 통햄을 먹어보고 싶었지만 통햄은 기본적으로 파는 중량이 있었고, 그걸  먹을 엄두가 나지 않았던 나는 통햄을 포기하고 소세지를 먹었었다. 그때는 통햄을 시켜서  먹는다던가, 먹고 남은 것을 포장한다던가, 사서 다른 사람과 나눈다던가 하는 생각은 아직 하지 못했던 때였던 것이다.




부모님께 말씀드리니 너는 그때 그걸 먹고 싶었겠지만 못먹었을거야, 왜냐면 넌 하고싶은게 있으면 보통은 참아두는 편이니까, 라고 이야기 하셨다. 한때 먹지 못했던 통햄 구이를 부모님과 함께 먹었다. 시원한 맥주와 함께였다. 생각하고 기대한 것만큼 기똥찬 맛은 아니었고 테이블에 서서 먹어야 했지만, 그런건 아무래도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먹진 못하고 사진만 찍었던, 직화구이 통햄




시간이 지나서 그때 이야기를 하며 부모님과 통햄을 먹었던 그 시간




프라하는 한국인들에게도 아주 유명한 장소이고, 여러모로 이점이 많은 여행지였기에 한국인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구시가지 광장에서 다른 한국 사람의 사진을 찍어 준 적이 있었는데, 일하는 직장인인데 휴가를 내서 프라하를 온 사람이었다. 짧은 시간 동안 알차게 프라하를 구경하고 다녔는지, 프라하 교외의 괜찮은 장소를 추천해줘서 사진을 찍어뒀던 기억이 난다.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니 휴가를 내서 유럽여행을 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이전에는 전혀 느끼지 못한 방식으로 실감하게 되었다.




프라하에 밤이 찾아오고 가로등에 불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낮의 선명한 색감과는 다른 모습이 펼쳐진다. 하늘이 어둑해지며 노을이 찾아오다가, 완전히 어두워진 밤에 건물들이 조명을 받아 빛나기 시작한다. 밤의 카를교 쪽에서는 빛을 받아 밝아진 프라하 성을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사진을 찍곤 한다.


 곳에서 만난 한국인들은 서로서로 사진을 찍어 주는데, 우리 앞에서 여자애  명을 어떤 남자애가 사진을 찍어 주고, 우리 가족은  남자애의 사진을 찍어 주었다.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아빠는 무언갈 느꼈는지, 가서 용감하게  걸어보라고 했었다. 나는 공유하지 못하는 그시대의 감성인가 싶었다.




해가 지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카를교에서의 전경




하늘이 짙푸르게 어두워질 때, 도시에 불빛이 들어온다




깊은 밤, 조명으로 밝아진 프라하 성




늦은 밤에도 북적이는 프라하의 밤거리를 구경하다 숙소로 돌아오니, 같은 방을 쓰는 외국인이 들어와 있었다. 미국에서 온 그 친구와 이야기를 조금 하다가, 내일 일정을 생각하고 침대에 누웠다. 가장 먼저 숙소에 도착한 덕에 자리잡을 수 있었던 1층 침대다.


프라하의 밤 끝에서, 그렇게 잠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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