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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준 May 01. 2022

무사하거나 무시하거나

코로나 몇십만명 시대를 지나고 나서 

맨 처음 한국에 코로나 이야기가 돌던 때를 기억한다. 나는 그때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외국 위주로 확진자가 나오던 때 많은 사람들이 염려를 하고 있었지만 아직까지 크게 영향은 없는 상황이었다. 중국에서 확진자가 많이 나오고 있고, 중국에서 긴급하게 귀국한 사람들로부터 시작된 감염이 산발적으로 있는 정도였다.




그런데 서울 밖에서 급격하게 확진자가 많이 나오면서 모든 것이 뒤바뀌었다. 두 가지가 기억에 남는데, 그때 같이 확인하던 게스트하우스의 모든 지점에서 예약 취소 메일이 쇄도한 것이었다. 예약이 더이상 들어오지 않고 내국인 외국인 상관없이 모든 예약이 취소되는 상황에서 여태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텅텅 비어버린 예약 일정만이 남았다. 




또 다른 것은 어느 대만 부부에 대한 기억인데, 사실 서울 밖에서 확진자가 나오는 상황에서도 서울 안에서는 좀 염려만 있는 상황이지 일상에서 큰 영향이 있다고까지 느껴지지는 않는 정도였다. 그런데 코로나가 확산되기 전까지 게스트하우스에서 머물던 그 대만 부부는 확진자가 늘어나기 시작하자 정말로 두문불출 하지 않더니, 인터넷으로 주문한 방진복에 선캡까지 눌러쓰고 체크아웃했다. 숨은 쉴 수 있을까 싶었던 그 모습이 아직도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 기존 최대한 감염을 통제한다는 입장에서 확진자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게 되자,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코로나의 영향력이 일상에까지 미치기 시작했다. 사람들에게 가장 영향을 주었던 것은 대부분의 업장 영업시간이 단축되었다는 점 같다. 밤늦게까지 영업하는 가게들이 많은 한국 특성상 텅 비어버린 주말의 밤거리는 사람들에게 적지않은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 같다. 




이때 사람들에게 새롭게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은, 나도 걸릴 수 있고 누군가에게 옮길 수 있다, 였던것 같다. 확진자가 얼마 나오지 않을 때의 코로나는 방역관리를 철저하게 하지 못한 누군가가 걸리는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지만, 확진자가 많이 나오게 되면서 단순히 방역관리 수준의 문제가 아님을 사람들이 알게 된 것이다. 


이는 사람들에게 극심함 피로감을 불러일으켰는데, 내가 걸릴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옮길 수도 있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가령 내가 그저께 저녁에 만난 사람 중 한명이 확진되었다면 나는 그 이후에 만난 모든 사람들에게 내 확진 사실을 알려야 하나? 그러면 그 소식을 들은 지인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생각만 해도 골치 아파지는 것이다.




모여서 무언가를 하는 것에 익숙하고 그것이 주류에 가까운 한국 문화에서, 이런 피로감과 새로운 압박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스트레스를 주기 시작했다. 코로나에 걸려서 아픈 것보다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준 것은 이런 것들이었을 것이다. 사회적 환경이 더이상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따라갈 수 없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런 것이 주는 스트레스. 




확산 초기, 남의 이야기에 가까웠던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퍼지면서 사람들에게 피로감을 불러일으켰다. 2018 09, 서울 남산




보통 감염을 강력하게 통제하던 국가들도 결국 감염자가 폭증하는 모습을 보였고, 대처 방식은 두가지 였다. 결국엔 확진자를 모두 통제할 수 없음을 받아들이고 그에 맞춰서 준비하던가, 아니면 존재하는 감염자를 없던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국가가 전자를 따라갔듯이, 한국도 급증하는 확진자를 모두 통제할 사회자원이 부족했기에 확진자를 억제하는 정책을 포기하게 되었다. 물론 포기한 것인지, 의도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확진자가 폭증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다섯 명 중 한 명이 코로나에 걸렸을 정도니까.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에 걸리면서 코로나 자체에 대한 심각성은 이전에 비해 훨씬 낮아졌다. 일전엔 다들 몸조심을 한다면 코로나에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확진자가 폭증하면서 단순히 몸조심을 한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인식이 퍼진 것이다. 마스크를 아예 안 벗는 외부활동이란 불가능한데, 아무리 조심해도 안 걸릴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그와 함께 사람들 마음 속에서는 서서히, 어차피 안 걸릴 수 없다면 지금 이렇게 하는 것이 의미가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몸조심 한다고 해서 안 걸리는 것도 아니며, 억세게 운이 없으면 누구라도 걸릴 수 있다. 감염 추적 방식도 이전과 바뀌면서, 내가 코로나에 걸린다 한들 어디서 걸렸는지 아는 것도 힘들어졌다. 결국 걸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그 모든 확산 방지 수단이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결국엔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질병을 상대로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가?




기존 사람들에게는 두가지 선택이 있었다. 방역수칙을 이행하고 일상과 경제활동의 불편을 감수하거나, 혹은 방역수칙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고 감염을 확산시키는 것이 그것이다. 사람들이 본연의 욕망에 따라 후자를 선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은, 감염 추적이 이루어지고 있기에 자신또한 추적당할수 있다는 것과 실제로 자신이 감염에 일조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확진자가 폭증하고 감염 추적이 이전과 같이 이루어지지 않게 되면서 사람들은 더이상 이전과 같이 행동할 필요가 없어졌다. 자신이 열심히 방역수칙을 지켜도, 결국엔 자신도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어딘가에서 코로나에 걸릴 수 있고, 만약 자신이 누군가를 코로나에 감염시켰다 해도 그 사람이 자신으로부터 옮았음을 알 수 없게 되었음을 인식한 것이다.  




사람들의 행동을 의도하려면, 반드시 그 행동을 해야만 한다는 동기를 주어야 한다. 그리고 폭증하는 확진자 속에서 사람들은 그 동기를 잃어버렸다. 모든게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넘어가기 시작할 때, 확진자 수가 정점을 찍고 감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사람들은 언젠가 다시 폭증할 지 모른다는 얕은 불안감을 삼키면서, 이전과 같은 일상을 맞이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확진자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사람들은 방역정책을 준수할 이유를 잃었다. 2018 10, 서울 경복궁




코로나를 거치며 사람들은 두 가지 중 하나로 나뉘었다. 어떤 사람들은 정말 억세게 운이 좋아서 무사했던 사람들이다. 어떤 외부 요인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스스로의 마음가짐으로 방역 수칙을 지키면서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다. 혹은 코로나에 걸렸는데 본인이 몰랐던 것일 수도 있다. 주위 사람들이 모두 코로나에 걸리고 있는데도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거나, 걸리지 않았다고 믿거나, 걸렸는데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반면 애초에 코로나가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들도 있다. 감기와 같은 증상이 있고 높은 전염력을 가진 질병을 어떻게 통제하고 확산을 막겠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결국 코로나에 걸리는 것은 방역수칙의 이행이나 다른 것들이 아니라, 주사위를 굴리는 것에 가까운 운에 불과한 것이며, 내가 걸리던 누가 나에게 옮기던, 내가 남에게 옮기던 제대로 된 추적은 불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는 노력으로 막을 수 있는 질병이 아니니, 그저 최대한 일상과 같은 생활을 유지하고 만약 걸리게 되면 건강에만 유의하면 된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코로나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이다.




결국 코로나가 지나가고 난 사람들은 두 가지 중 하나였다. 무사한 사람, 무시한 사람. 무시하거나, 무사하거나, 그것이 확진자 몇십만명 시대를 거친 사람들의 선택이었던 셈이다.   




사람들은 코로나를 거치며 그렇게 선택해야만 했다. 무사하거나, 무시하거나. 2018 10, 서울 구 노량진 수산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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