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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준 May 07. 2022

교훈 8, 발마사지는 긴장 완화에 좋다

스트레스를 받는 부모님께는 발마사지를 받게 하자

프라하에서의 둘째 날 아침. 일어나서 소박한 식사를 챙겨 먹고 그날 해 볼 것을 점검한다. 일단 어제 가지 못했던 비투스 대성당과 프라하 성을 천천히 구경한 다음, 사고 싶은 것을 사기로 한다. 일단 아빠가 책이나 다이어리 같은 것을 찾으신다고 해서, 근처에 어디를 가야 할까 하다가 어제 문득 본 곳이 기억났다. 호스텔에서 나와 프라하 성 쪽으로 올라가는 방향에 책을 파는 곳 같은 것이 있었던 것이다. 프라하 성을 올라갈 겸 중간에 그곳을 가 보기로 하고 준비했다. 




호스텔은 건물 하나를 통째로 쓰고 있어서 객실 이외에도 공간이 충분했다. 공용공간은 위쪽에 유리 천장이 달려 있고 가운데에는 카펫과 의자가 놓여 있었는데, 조용한 분위기가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기에도 좋았다.




아침 일정 시작 전 믹스커피를 마시는 부모님




봄이 끝날 때쯤 걸었던, 프라하 성 올라가는 언덕길




서점은 크지 않아서 몇 평쯤 되는 공간이 책장으로 가득 들어차 있다. 그리고 체코어를 하나도 모르는 나는 읽을 수 없는 책들을 둘러보며 아빠에게 필요한 책이 무엇인지 찾는다. 아빠는 인테리어 용도나 선물용으로 쓰시려는 건지, 책을 읽을 수 없어도 상관없으니 식물 관련 그림이 담겨 있는 책을 찾는다고 하셨다. 


엄마와 비슷한 나이대인 것 같은 중년 여성은 가게의 주인 같았는데, 다행히 영어가 통해서 이런저런 것들을 물어보며 아빠가 원하는 책을 같이 찾아 주었다. 그리고 손바닥 만한 사이즈에 그림이 많이 들어간, 식물 관련 주제의 책을 하나 찾았던 것 같다. 그 책을 사기로 하고 계산을 마치니 가게 주인이 책을 넘겨주며 '축하해. 이제 이 책은 네 거야' 하던 것이 기억난다. 




이때 두 번째로 프라하를 간 것이었는데, 이전까지는 전혀 느껴지지 못하던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유명한 화가 알폰스 무하의 그림들이었다. 호스텔에도 포스터가 붙어 있고, 책방에도 관련 그림이 걸려 있었다. 한번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기억할 아름다운 분위기에 그린 사람이 누구인지 물어보았고 나는 알폰스 무하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다. 몇 달 전에 프라하에 왔을 때는 한 번도 못 본 것 같다고 했더니, 그럴 리가 없다고 어디에나 이 그림이 걸려 있다는 말을 들었다. 알폰스 무하라는 이름을 잘 기억해 뒀다가, 나중에 프라하의 알폰스 무하 박물관에 가서 기념품을 사기도 했다.




나중에 혼자 방문했던 알폰스 무하 박물관. 그림이 들어간 기념품을 많이 찾을 수 있다.



구경을 마치고 나서 언덕길을 쭉 올라 프라하 성으로 가는데, 중간에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던 것 같다. 아이스크림을 먹고 나서 언덕길을 쭉 올라가다 보면 정반대로 꺾어 올라가는데, 그럼 왼쪽에는 프라하 성과 대성당이 있고 오른쪽 비탈길 위로는 프라하 시내 전경이 펼쳐진다. 비탈길 끝, 프라하 성 입구까지 올라오면 좋은 전망으로 유명한 스타벅스가 있다. 사실 스타벅스에 가지 않아도, 난간 너머로 펼쳐지는 전망은 충분히 좋아서 구경하기에 좋다.



프라하 성 가는 길 보이는, 프라하 전경




프라하 성 입구




프라하 성 들어가는 곳에서 입장을 위해 표를 끊으며 또 기념품 가게에 들렀다. 대성당이 있기 때문인지 기념품도 종교 관련 기념품이 많다. 엄마가 묵주를 하나 사려고 하셨는데, 기념품용 묵주인지 아니면 정말 종교의식에 쓸 수 있는 묵주인지 궁금해하셨다. 결국 그 묵주를 사지는 않으셨지만, 아마 종교를 믿는 친척을 위해 선물로 사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싶다. 




프라하 성 안에는 압도적인 크기의 비투스 대성당이 자리하고 있는데, 어찌나 큰지 한번에 사진을 다 찍기 힘들 정도이다. 여행을 다니면서 가장 크다고 느꼈던 것은 쾰른 대성당인데, 그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충분히 크다. 대성당 안에 들어가면 거대한 내부 공간과 함께 반짝이는 스테인드글라스를 구경할 수 있다. 빛을 받아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이 스테인드글라스들 중에 하나는 알폰스 무하가 만든 것이라 하는데, 나는 그것을 나중에 프라하를 떠나면서 알게 되었다. 



사진으로 한 번에 담기 힘든, 비투스 대성당의 엄청난 규모




비투스 대성당 주위, 건물들로 둘러싸인 공간은 꽤 널찍해서 걸어다니기 좋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며 시간을 보내는데 결혼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아무리 봐도 특정 국가에서 온 것 같은 사람들이 많아서, 그곳에 프라하를 배경으로 한 뭔가가 유행을 탔나 했었다. 어쩌면 유럽에서 결혼 사진을 찍고 싶은데 프라하에서 진행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되어서 그럴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비투스 대성당의 안과 밖을 구경하고 걷다 보면 앞쪽의 건물 내외부를 구경하게 된다. 좁은 골목에 형형색색의 건물들이 늘어선 곳도 있고, 안쪽에서 프라하의 전망을 바라볼 수 있는 곳도 있다. 프라하 성 옆쪽에 있는 정원까지 구경하고 나면 프라하성 뒤쪽의 샛길로 다시 내려갈 수도 있다. 프라하성 뒤쪽의 샛길에서도 볼타바 강과 함께 프라하의 전망이 보인다. 여러모로 프라하 성은 프라하 전체를 돌아보기에 참 좋은 장소였던 것 같다.




중간에 돌기둥에 걸터앉아 간식을 먹으며 잠시 쉬던 순간




이날은 새롭게 어디를 가 보는 것 대신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부모님 사고 싶은 것을 샀었다. 엄마는 누가 봐도 프라하에서 샀을 티셔츠를 하나 샀다. 지금도 종종 입고 다니신다. 다른 사람들 선물하기 좋은 가벼운 기념품도 찾아서 돌아다니다가 어느 가게에서 손톱 가는 작은 도구를 샀는데, 부모님이 마음에 드셨던 것인지 나중에 그걸 더 사와달라고 했었다. 나중에 프라하에 들릴 일이 있었던 나는 그 가게를 다시 방문해 똑같은 물건을 좀 더 샀었다. 




사실 나는 기념품을 많이 산 경험이 없어서 오히려 부모님과 같이 다니면서 기념품 고르는 경험을 했던 것 같다. 여행을 갔다오고 나면 주위 사람들에게 기념품을 나눠 주는 일도 많은데, 너무 비싼 주는 사람에게도 금전적 부담이고 받는 사람에게도 심적 부담이다. 그렇다고 너무 저렴한 것을 주면 필요 이상의 오해가 생길 수 있다. 그래서 적당한 가격에 실용적인 것을 골라야 하는데, 무엇이 실용적인가에 대한 경험은 기념품을 많이 골라봐야만 안다.




일전에 나는 요리하는데 쓰는 조미료 같은 것도 좋다고 생각했지만 먹는 것들의 경우 처음엔 잘 쓸 수 있어도 다 먹고 나면 사라져 버리기에, 견고한 구조로 반복해서 쓸 수 있으면서 일상생활 속에 계속해서 남아 있는 물건이 좋은 것 같다. 아빠가 골랐던 손톱 다듬는 도구가 좋은 예였던 것 같다. 비록 쓰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손톱 다듬을 일은 누구라도 있을 것이고 그 도구를 쓰면서 준 사람을 생각하게 될테니까.




하지만 정작 남 줄 선물은 잘 고르고 아빠는 본인이 쓸 물건은 왜 샀는지 모르겠을 물건을 샀다. 아빠는 크리스탈 상점에서 거대한 크리스탈 볼을 샀는데, 가격도 꽤 비싼 것이었다. 나를 통해 강력하게 가격 협상을 하시는 것이 내가 가격 협상을 하는 것을 보고 싶으신 걸까 아니면 그냥 가격 협상을 해 보고 싶으신 걸까 궁금했었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크리스탈 볼을 쓸 데가 없을 것 같아서 어디 쓰시냐고 물어봤더니 나중에 다 쓸데가 있다, 라고 하셨다. 그리고 나중에 보니 쌀을 한가득 담아서 향 꽂이로 쓰고 계셨다. 




물건을 좀 사고 나서 밖에서 점심을 사먹었는데, 숙소의 직원에게 물어봐 추천받은 곳으로 갔다. 관광객들이 많이 가지만 괜찮다는 말에, 직원이 추천하는데 뒤통수는 안 맞겠다 싶었다. 내가 여행을 가면 숙소 직원에게 대부분을 물어보기도 하고, 사실 흔히 들려오는 이야기들이 조금 신경쓰이는 것도 있었다. 말 없이 빵바구니를 올려놓고 거액을 청구한다던가 하는 일화들. 물론 나는 그런 일을 겪지 않았고 가게에서 그냥 주는 빵인 경우도 많이 있었지만, 많은 것이 걱정이었던 그때 나는 부모님을 모시면서 걱정이 더 많았다. 




손님의 메모가 탁자의 유리 아래에도 깔려 있고 사방팔방에 깔려 있던 그 음식점에서 내가 걱정했던 일은 없었지만, 팁을 반드시 내야 한다고 이야기 해 주지 않아서 별 생각 없이 안 내겠다고 했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팁 포함이니까 꼭 내줘야 한다, 라고 이야기 했던 것이 생각난다. 가족여행 특성상 쥐어짤 정도로 예산 절약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기에, 아 꼭 내야 하는 거니? 몰랐어 하면서 하면서 팁을 내고 모든게 마무리 되었지만 비슷한 일을 많이 겪었는지 직원의 표정이 정색에 가까울 정도로 진지해 지는 것이 신기했다. 




부모님과 함께 먹기에 무리 없었던 프라하의 음식들




이것저것 구경하면서 시간을 보내니 또 조금씩 밤이 찾아온다. 프라하 여행을 갔다온 사람들은 프라하의 야경이 좋았다고 입을 모아 이야기 하지만, 사실 나는 도시의 야경이라면 모두 좋아한다. 하지만 시간이 오래 지나고 나서 그때 프라하의 야경 사진을 돌아보니, 뭔가 다른 도시들과 다른 더 따뜻한 상아색의 분위기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아니면 부모님과 함께 있었던 그때의 시간으로 기억이 더 특별하게 빛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엘레베이터 없는 계단을 뱅뱅 돌아 전망대까지 구경하고 난 뒤, 기념 주화 자판기에 동전을 넣어 기념 주화 챙기는 아빠를 보며 사람의 취향이란 참 다양하다고 생각했었다. 돌아다닌 곳이 넓진 않았기에 밤거리를 구경하다 보니 비슷한 가게를 많이 봤는데, 그중 자주 지나쳤던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사먹었었다. 다른건 다 모르겠고, 아이스크림 통이 들어있는 쇼윈도의 변두리 쪽에 날벌레가 쌓여 있는 것이 기억에 남는다. 우리 가족 모두 아이스크림을 떠 먹을때 아주 신중하게 떠 먹었다. 


야경을 좋아하는 나에게도,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프라하의 밤거리들




그런데 그날 저녁부터 갑자기 부모님 사이가 안좋아지기 시작했다. 물론 여행 하다 부모님이 다투고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길래 보통은 그냥 진정될 때까지 구경만 하는 편이지만, 이날 밤은 좀 심각했다. 내가 둘 사이에서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 답답해질 정도였다. 그런데 갑자기 지나가는 가게 안에서 발마사지를 하는 것을 본 엄마가 아빠랑 같이 발마사지좀 받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프라하 한복판에서 동남아 간판 달린 가게의 발마사지를 받는다니, 이탈리아 남부 역사적인 도시에 가서 벨기에식 감자튀김을 사먹는것과 비슷한 것 아닐까. 무슨 프라하에서 동남아식 발마사지냐고, 발마사지 받는다고 진짜 발이 편해지냐 되물었지만, 받고 나면 느낌이 다르다면서 강력하게 주장하시는 것이었다. 그래서 부모님 두 분이 발마사지를 받으러 들어가고 나는 그 사이에 잠깐 혼자서 거리를 돌아다니며 평온을 느꼈다. 그러고 시간이 지나고 나서 부모님을 모시러 갔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더이상 부모님은 다투지 않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누가 먼저 한국으로 돌아갈지 내기하는 듯 보였던 감정싸움은 온데간데없고, 모든 것에 만족스러운 부모님의 모습에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아마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가만히 발마사지를 받다 보니 감정도 좀 정리되고 피곤이 풀린 것 아닐까 싶지만, 걷잡을 수 없이 커지던 불에 물을 한 바가지 뿌린 듯한 느낌은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기만 하다. 어쩌면 발마사지에는 내가 알지 못하던 있던 효과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교훈 8, 발마사지는 긴장 완화에 좋다.'




발마사지를 받고 나서 기분이 훨씬 좋아지신 부모님과 함께 프라하의 마지막 밤을 마저 구경한다. 숙소로 돌아오니 어제 봤던 미국인은 체크아웃을 하고, 다른 미국인 여자 두 명이 들어와 있다. 엄마는 내가 외국인들과 이야기 하는 것에 관심이 있으셨는데, 옛날 고등학교 중학교 다닐 때 부모님이 컴퓨터 게임을 못하게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지금 게임 이야기 하는거냐고 물어보시기도 했고, 동생이 운동선수라고 직접 이야기 하기도 하셨다. 이때 잘 못하더라도 열심히 말하려고 하는 엄마의 모습이 기억에 남았다. 




프라하의 마지막 밤이 그렇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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