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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준 May 22. 2022

MBTI 에 몰입할 수밖에 없는 이유

인간관계에서 상처받기 싫은 사람들 

일하는 곳에서 갑자기 MBTI 이야기가 돌기 시작했다. 어쩌다가 보게 된 것이 생각보다 관심이 있었는지, 윗사람들이 나보고 검사를 해 보라면서 링크를 보내 주었다. 막상 검사 결과가 내가 생각한 것과 전혀 달라서, 검사가 잘못된 것 아니냐는 말과 함께 어쩌면 완벽히 정해진 선택지만 골라서 진짜 자신의 모습을 잃어버린 것 아니냐는 주장도 등장한다.




사실 나는 뭔가를 선호한다 라기보다는 필요할 때 해야 하는 것을 하는 상황이 많아서, 정반대의 성향을 동시에 가질 때가 많다. 먼저 적극적으로 말을 걸고 대화를 주도할 때도 있지만 그냥 아무것도 안하고 조용히 있는 것이 좋을 때도 있다. 그래서인지 MBTI 검사를 몇 번 했지만 결과가 판이할 때가 많았다. 아마 검사를 했을 때 내가 어떤 마음가짐을 하고 있었는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고, 매번 마음가짐이 달랐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어떤 때는 모임을 주도하여 모두가 즐거웠으면 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으로, 어떤 때는 그냥 집에서 조용히 글을 쓰고 요리를 하는 것이 좋은 사람의 마음가짐으로.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는 심리검사에는 조금 회의적이다. 나는 생각이 많은 편이라 질문을 곱씹다 보면 답을 내리기 힘들어지는데, 그러다 보니 심리검사에서 이야기하는 생각하지 않고 빠르게 답을 내리는 것이 쉽지가 않다. 생각이 많은 내 성향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마음과 성향을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가능한지, 그걸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하는 심리 검사가 과연 믿을만한 결과를 낼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단한 심리검사를 통해 자신의 성향을 되돌아 보고 이전에 모르던 것을 배울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히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다른 다양한 이유 때문인지, 지금 MBTI 는 꽤 많은 사람들에게 유명해졌다. MBTI 로 자기 소개를 하기도 하고 수많은 유머도 생기는 등, 사람들은 MBTI 에 몰입하여 신뢰하고 있다. 




왜 사람들이 MBTI 에 몰입하는 걸까? 아마 사람들은 MBTI 가 사람의 성향을 큰 범주에서 나눠 분석적으로 설명하는 모습에서 많은 매력을 느꼈을지 모른다. 여태껏 언급되던 혈액형 심리학과 다른 모습이 사람들에게 신뢰를 줬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냥 막연하게 그럴 수 있다 같은 주장과는 다르게, 다양한 문답을 통해 사람의 성향을 나름 분석적으로 제시하는 모습이 믿음을 준 것 아닐까. 하지만 단순히 왜 MBTI 에 몰입하는가에 답으로는 부족한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여태까지 있었던 다른 대중 심리학과 MBTI에 사람들이 몰입하는 정도가 얼마나 다른가 하는 점이다. 혈액형 심리학부터 시작해서 간단한 그림 그리기 테스트까지, 다양한 심리 테스트가 있었지만 사람들은 그것에 깊게 몰입하지 않았다. 자기소개 할 때 혈액형이나 심리 테스트 결과를 이야기했던 적은 없었다. MBTI 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그렇다. 




결국 MBTI 에 사람들이 몰입하는 이유는 조금 다르게 생각해 봐야 한다. 왜 MBTI 이느냐 가 아니다. 옛날부터 지금까지 무엇이 바뀌었길래, 사람들이 MBTI 에 몰두하고 있느냐 이다. 




옛날에 다른 심리 테스트를 믿던 사람들이 지금은 MBTI 에 몰입하고 있다. 무엇이 달라진 걸까? 2018 09, 서울 남산




내가 옛날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혈액형 심리학이 한창 유행이었다. 특정 혈액형은 자기중심적인 성향이 강하다 라거나 혹은 특정 혈액형은 이해심이 높다 라던가 하는 내용이었는데, 어찌나 혈액형 심리학이 유행이었는지 이것을 바탕으로 한 영화도 나왔을 정도였다. 비록 엄마와 내가 혈액형이 같고 동생과 아빠가 혈액형이 같은 것을 보면서, 혈액형 심리학이라는 것이 정말 사실 아닐까 싶었지만, 어쨌든 간에 이런 부류의 혈액형 심리학은 대중적으로 인기를 잃었다가 얻었다를 반복한 것은 사실이다.




혈액형의 종류나 붕어빵을 어디서부터 먹는지, 좋아하는 음식과 좋아하는 장소로 사람의 심리를 알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얼핏 들으면 속임수 같이 느껴지고 믿을 이유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간단한 심리학에 흥미를 느꼈다. 단순히 심심풀이를 넘어서까지 그 심리학을 믿었던 이유는, 자신이 알 수 없는 것을 알고자 하는 것이 시작이었을 것이다. 자신이 알 수 없는 다른 사람의 마음, 그리고 자신도 알 수 없는 자기 자신의 마음까지.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상대의 혈액형을 알 수 있다면 그것을 통해 상대가 어떤 생각을 할지 알 수 있을까? 상대가 바다가 아니라 하늘을 좋아한다면 다음 번에 어떤 판단을 할지 알 수 있을까? 그러는 사이에 나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가? 자신조차도 모르는 스스로의 마음 속에 숨겨진 것. 사람들이 대중심리학을 통해서 알고 싶은 것은, 그런 것일 것이다. 




그렇게 심리에 대해 알게 되면 인간관계에서 큰 이득이 된다. 상대의 진의를 알고 그것에 맞춰 준비할 수 있으며, 스스로의 진심을 알고 후회없는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심리테스트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그것 때문일 것이다. 심리에 대해 알고, 그것을 통해 인간관계에서 이득을 보기 위해서. 만약 심리테스트가 사람들에게 그저 재미의 의미만 있었더라면, 예나 지금이나 존재하는 몰입은 아마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문제는 옛날 혈액형 심리학이 전부이던 때와, MBTI 가 유명해진 지금의 상황이 너무 달라졌다는 것이다. 그냥 뭔가 알아서 잘 되지 않을까 싶었던, 순진함에 가까운 낙관이 있던 그 옛날. 그때는 인간관계에서 끝없는 이득을 추구하고 필요 없는 것을 버려가는 계산적인 측면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살코기 세대라는 말처럼 필요 없는 인간관계는 과감히 정리해 가며 투자를 끊고, 오직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에만 계속해서 투자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밀려날 수밖에 없고, 상처받을 수밖에 없으니까.




조금이라도 약한 모습 보였다가는 허벅지뼈 골수까지 빨아먹힐 이 각박한 세상에서는, 인간관계에서 조금이라도 손해를 보면 감정적 손해가 막심하고 되돌릴 방법도 없이 피해를 떠안아야만 한다. 결국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어떤 사람인지 알고 그에 맞춰 준비를 해야만 한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것들 말고, 내면적인 것을 어떻게 알아볼 것인가? 이럴 때 MBTI 는 좋은 평가지표가 되어준다. 바다가 좋느냐 산이 좋느냐, 어떤 혈액형이냐 같은 철 지난 질문을 물어볼 필요도 없고, 실제로 좀 더 체계적이기도 하다. 




현대사회의 삶이란 자칫하면 평행대에서 떨어져 추락해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전처럼 낙관적으로 아무 생각 없이 인간관계를 쌓아나가고 투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생산적인 인간관계를 쌓아나가기 위해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하고, 나 또한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그것이 이전 다른 심리 테스트들을 알고 있던 때와 달라진 지금의 현실이고, 그 때의 심리 테스트들이 주지 못하던, 어쩌면 줄 필요가 없었던 답들이다.




기대를 하면 실망하는 요즈음의 세상에, MBTI 는 상대를 판단하는 척도가 되어준다. 2018 11, 서울 청계천




옛날 사람들이 심리학을 소비하는 것은 심심풀이 땅콩에 가까웠다. 이런 것도 있다더라 에서 조금 진지하게 생각하면 정말인가? 하는 정도였고 사람들도 흥미 위주로 소비할 뿐 거기에 몰입하는 경향은 적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사람들은 MBTI 에 몰입하고 있다. 자신과 어떤 성향이 맞고 어떤 성향이 맞지 않는지 같은 것을 확인하며, 만나고 대화하지 않은 사람들의 성향을 판독하고 싶어한다. 혹시라도 있을 수 있는 불협화음과 상처를 피하기 위해서. 




누군가를 만날 때 어떤 사람인지 대화를 통해 알아갈 생각도 없고 여유도 없다. MBTI 를 물어보고, 어떤 사람인지 지레짐작한 다음. 그 사람을 그 지레짐작에 끼워넣는다. 그러면서 나중에 자신이 이 사람의 어떤 부분에 대해 실망하고 힘들 수 있겠다 하는 생각도 해 둔다. 그러면 나중에 덜 고통스러울 수 있으니까. 그 고통을 염두에 두지 않고 투자할 시간과 노력을 방지할 수 있으니까.




살얼음판을 걷는 것과 같은 크고 작은 알력다툼이 가득인 사회 안에서, 인간관계는 더이상 이전처럼 낭만적이지 않다. 먹거나 혹은 먹히거나이고, 짓누르거나 아니면 짓밟히거나 둘중에 하나가 되어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상대의 마음을 아는 것은 충분한 가치가 있다. 그리고 그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면,  몰입하게 되고 맹신하게 된다.




인간관계에서 더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많아지는 요즈음, MBIT 는 한동안 그 명성을 떨칠 예정이다. 




인간관계에 대한 스트레스가 높아지는 요즘 상황에, 사람들은 MBTI 에 기대고 있다. 2018 12, 오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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