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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준 May 22. 2022

교훈 10, 사전조사를 잘해서 문제를 해결하자

길에서 버리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

내가 교환학생 하던 도시에서 머물기로 한 다음날, 부모님과 함께 뮌헨에 가 보기로 했다. 그때 뮌헨에서 옥토버페스트가 열리고 있었다. 언제 또 이런 행사를 가 보겠냐는 생각에, 부모님과 함께 가 보기로 한 것이다. 사실 이 계획에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일단 도시에서 뮌헨까지 가려면 기차를 한 번 갈아타고 편도 3시간이나 걸렸다. 하루 중 6시간을, 어딘가를 왔다갔다 하는데에만 쓴다는 것은 굉장히 비효율적인 일정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때 다 같이 옥토버페스트를 보러 가면 재밌을거야!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문제점은, 내가 생각보다 사전조사를 잘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옥토버페스트 행사장은 뮌헨 중앙역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거대한 부지에 여러 개의 천막을 두고 펼쳐져 있다. 그런데 나는 옥토버페스트 행사장을 그저 뮌헨에 가서 북적이는 인파를 따라가다 보면 갈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너무 안일하게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문제는 내가 뮌헨에 도착하고 나서, 좋지 않은 날씨와 함께 불거지게 되었다.




여하튼 아직 그것을 몰랐을 때, 기숙사에 있는 내 방에서 잔 나는 아침에 숙소에서 나오는 부모님 마중을 나갔다. 멀리서도 등산복 패션으로 걸어오는 부모님이 돋보였다. 부모님과 함께 기차역에 가서 기차를 타기 전에, 카페에서 간단한 빵들을 샀다. 빵 위에 녹인 치즈가 딱딱하게 올라간 것, 샌드위치 같은 것들을 샀다. 




날씨가 맑지 않아 비가 오다 말다 했고, 하늘은 흐려서 파란 색이라고는 볼 수가 없었다.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흐린 풍경을 보면서 기차를 타니, 3시간이 지나고 나서 뮌헨에 도착했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이, 나는 구체적으로 어디가 옥토버페스트 행사장인지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 검색을 하고, 구글 지도에 표기를 하고, 여기로 가면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안 하고 간다고? 부모님을 모시고 말도 안되지만 그때는 그랬다. 




그렇게 비가 오다 말다 하는 뮌헨 거리를 부모님과 함께 걸었다. 그냥 어디론가 걸어가다 보면 행사장이 나올거라고 생각을 하고, 부모님을 모시고 그 궂은 날씨에 걷고 있다는 것 자체가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을까 싶다. 조금 걸어다니다가 다시 역으로 돌아갔었는데, 걸어다니는 와중에 재미있는 것들을 봤던 기억이 난다. 바이에른 전통 복장을 한 사람들이 발코니를 활짝 열어놓고 시간을 보내고 있다던가, 여러 명이서 페달을 돌려 움직이는 거대한 자전거 같은 것에 사람들이 둘러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다던가 하는 것들. 




비록 재미있는 것들을 구경하긴 했지만 길도 제대로 찾지 못하고 서성이며 부모님을 고생시킨다는 것은 결코 좋은 경험이 아니었다. 결국 나는 그 중간에서, 부모님에게 고백했던 것 같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행사장을 못 찾겠으니, 역으로 돌아가서 다시 한번 찾아 보겠다, 라고 말했고 부모님은 알겠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한 시간쯤 아무런 성과도 없이 뮌헨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다시 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역으로 돌아오고 나서야 발견했다. 바닥에 옥토버페스트 행사장으로 가는 길이 그려져 있음을.




길을 따라가니 너무나도 쉽게 그리고 금방 옥토버페스트 행사장에 닿았다. 그런데 문제가 또 있었다. 미리 검색해 봐서 알고 있었던 것이긴 한데, 안전 관리의 문제로 큰 가방은 가지고 들어갈 수 없었다. 내 가방은 아주 작은 사이즈였지만 부모님이 가지고 다니는 가방은 사이즈가 조금 컸기에, 보관소에 맡겨야만 했다. 보관소는 정문에서 조금 걸어가야 있었다. 결국 비 오는 날 부모님과 함께 또 보관소까지 걸어가서 가방을 맡기고 나서야, 입장할 수 있었다. 




몇 번 씩이나 헤메고 시간을 허비하며 도착했던, 비오는 옥토버페스트 행사장




도시에서 뮌헨까지 오는 데 기차로 3시간이 조금 넘고, 뮌헨에서 족히 시간을 2 시간은 쓴 것 같으니, 아침에 일어나서 5시간은 걸려서 옥토버페스트 행사장에 도착한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도착한 옥토버페스트 행사장은, 추적추적 내리는 비로 우중충한 날씨였다. 길거리에 재미있는 간식을 파는 곳들은 많았지만, 사람들은 우의를 걸치거나 우산을 쓰고 다녔다. 저 멀리서는 사람이 타고 있는지 알 수 없는 회전관람차가 돌아갔다. 




흔히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것처럼, 내가 생각했던 흥겹고 활발한 축제 분위기와는 전혀 맞지 않았기에 오늘 하루는 별로 부모님께 좋은 구경을 못 시켜드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큰 행사장 부지 안에, 거대한 천막이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모르는 것이 많지만, 그 천막 위에 있는 것이 유명한 맥주 양조장의 것이라고는 알고 있었다.




옥토버페스트에 가면 맥주 양조장이 각자 자기 천막을 가지고 그 안에서 장사를 한다고 들어서, 거기 들어가면 재미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 같아 부모님과 들어가 보았다. 거대한 창고 크기의 웅장한 천막 안으로 들어가니, 빼곡하게 채워진 탁자를 사람들이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 탁자들 한 가운데에는 무대가 설치되어 있고 그 위에서는 밴드가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사람들로 가득한 그곳에서, 밴드가 음악을 연주하면 사람들이 그 곡에 가사를 따라 불렀다. 유행하는 곡조를 사람들이 선창하면 밴드가 사람들의 요청에 호응해서 음악을 조금 연주해 주기도 했는데, 그러면 사람들이 더 기분이 좋아져서 더 큰 소리로 음악을 흥얼거렸다. 넓은 공간에서 밴드의 음악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사람들의 환호성이 차오르고, 그 사이로 직원들이 바쁘게 음식과 술을 날랐다. 흥겨운 분위기가 인상깊어서 사진을 찍고 있으니, 바로 앞에 있는 얼굴도 모르는 외국인 일행이 자세를 취해 줘서 사진으로도 남겨 놨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먼 길을 기차 타고 와서 길거리에서 시간을 허비한 것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누그러들었다. 뒤쪽에 부모님이 잘 따라 오시고 있는지 보기 위해 뒤를 돌아봤는데, 그때 내 뒤에서 천막으로 들어오던 엄마의 얼굴을 보았다. 눈이 둥그래져서 정말 무언가를 세상에서 처음 봤을 때 짓는 표정이었다. 그때 부모님의 그런 표정을 처음 봤던 것 같다. 그 표정을 보는 순간 그래도 그날 옥토버페스트에 오길 잘했다, 고 생각했었다.




그 뒤로 효도여행에서는 온갖 일들이 있었고 고생도 많이 했지만, 그래도 나중에 또 비슷한 기회가 있다면 반드시 가야겠지 생각하곤 한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그때 봤던 그 부모님의 표정이었다. 무언가 한번도 보지 못한 것을 구경하고 있는 부모님의 그 반응을 보는 것은 정말 잊을 수 없는 경험이고, 나는 앞으로도 그 모습을 보고 싶기 때문이다.




사람들로 가득했던 옥토버페스트 행사장




옆에서 사진을 찍는 부모님




행사장 안에서는 워낙 사람이 많고 옆 사람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시끄러워서 부모님을 모시고 뭘 먹기에는 적당하지 않아 보였다. 밖은 비가 내리고 있어서 뭐를 먹을 수가 없었다. 옥토버페스트에 와서 맥주 한잔 못 마시고 간다니 아쉬웠지만, 도저히 뭘 먹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간단한 간식만 조금 사 먹었던 것 같다. 




구경을 마치고 다시 짐을 찾은 뒤 뮌헨역으로 돌아왔다. 올 때 3시간이 넘게 걸렸으니, 돌아갈 때도 3시간이 넘게 걸린다. 혼자 어디를 다니는 것이라면 몰라도 부모님을 모시고 왕복 교통에 긴 시간을 소비하는 것은 좋지 않은 것이라는 것을 다시 느꼈다. 저녁 먹을 시간이 애매해서, 중간에 환승하는 뉘른베르크 버거킹에서 저녁을 먹었다. 버거를 받았는데 빵 변두리에 작은 곰팡이가 있어서,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고 떼어서 버리는 사이 아빠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말했고, 실제로 별일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너무 피곤했다. 




결국 갖은 고생을 하며 옥토버페스트 구경을 하고 다시 도시로 돌아왔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버스정류장이 있는데, 그 앞에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었다. 내가 도시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 중 하나였는데, 1,500 원 정도면 작은 아이스크림 하나를 먹을 수 있었다. 어둑한 밤에 세 명이서 아이스크림 하나씩 먹는데 버스가 생각보다 빨리 와 먹던 것을 급하게 마무리 하고 버스에 올라 숙소로 돌아갔다.




부모님은 숙소에 들어가시고, 나는 기숙사에서 못다한 일을 정리할 생각이었다. 이날은 숙소에 조금 일찍 들어와서 부모님도 쉴 수 있고 나도 다른 일을 할 수 있었다. 나는 다시 기숙사를 떠나면 한참 있다가 다시 들어올 예정이었기에, 빨래나 이런저런 것들을 했다. 기숙사와 빨래방을 오가는 와중에 고양이를 보았다. 목줄이 있는 고양이는 들고양이인건 아닌 것 같았는데, 문 앞에서 기다리다가 내가 문을 열어 주니 아주 자연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기숙사에서 동물을 키울 수 있다는 이야기는 못 들어보았지만 어찌된 것인지 이 고양이는 아주 자연스럽게 기숙사를 드나들었다.



기숙사를 제 집처럼 드나들던 고양이




아빠가 내 생각을 해서 멸치볶음을 준비해 오셨는데, 내 식습관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고 나는 기숙사에서 그것을 먹을 일이 전혀 없어서 기숙사에 남아 있는 룸메들에게 그것을 줄 생각이었다. 그때 독일 생활에 잔뼈가 굵은 중국인 룸메가 있었는데, 그 룸메와 룸메의 남자친구에게 멸치볶음을 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나는 먹을 일이 없을 것 같고, 너가 먹는 것이 나을 것 같아 먹겠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룸메가 고마워하면서 사실 남자친구는 너가 그 말을 하기 전부터 멸치볶음을 보고 있었어, 하고 말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다음날 기숙사를 떠나면 적어도 보름 이후에는 들어올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사진과 글을 정리할 것이 많았다. 일찍 잠에 들고 싶었는데, 결국 빨래도 하고 정리도 하며 다음 여행을 준비하다가 생각한 것보단 좀 늦게 잠들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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