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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준 May 14. 2022

남자들은 왜 군대 얘기를 하는걸까

불편한 기억이라도 그리워하는 이유

군대라는 것은 나에게 여러 가지 생각이 들게 하는 공간이다. 고등학교 때 처음으로 입대를 위한 신검을 받으러 갔고, 다른 사람들이 그렇듯이 나도 뭔가 특별한 것을 기대했지만 여지없이 나타나는 입대 판정을 받았다.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군대에 가서 그때 당시에 있었던 복잡한 일들을 거치며 결국 그 모든걸 끝내고 마무리지었다. 나는 군대에서 메모하는 습관을 들여서 그때 상황과 기분을 많이 메모해 남겨뒀는데, 이런 것들을 보면 옛날 생각도 나고 군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한국에서 전역자들이 모이면 나이가 어떻든 시간이 얼마나 지났던 간에 꼭 군대 얘기를 한다는 것이다. 어디서 무슨 일을 했는지 어떤 사건들이 있었는지 같은 것들이다. 심지어는 군대와 연관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군대 이야기를 하곤 한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군대를 갔다온 당사자들에게, 군대의 경험은 결코 좋은 것이 아닐 것이라는 점이다. 군대에 가고싶은 사람은 없는 상황에서, 군대에 대한 기억이란 좋지 않을 수밖에 없다. 군대에서 좋은 경험을 한다고 하지만 그건 군대 밖에서도 할 수 있는 것이고, 그렇게 말해지는 좋은 경험이란 정말 좋은 경험이 아니라 시간을 되돌아 볼 때 뭔가 의미가 있었음을 필사적으로 찾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위로하는 수준에 가까운 것이다. 그런 것이라도 하지 않으면 그렇게 허비된 시간을 받아들일 수가 없으니까.




하지만 사람들은 군대 이야기를 하곤 한다. 군대를 갔다온 사람들과도, 군대를 갔다오지 않은 사람들과도. 군대 관련 컨텐츠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그때 같이 있던 사람들과의 추억이 생각난다고 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특히 나이대가 높은 사람들일수록 더 그런데, 심지어는 그때 군생활을 그리워하는 경우도 있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할까? 그때 참 즐거웠었지 하고 떠올리는 것이 절대 불가능한 군대 기억을, 남자들은 왜 자꾸 떠올리고 그리워하기까지 하는걸까? 




전역자들에게 군대란 결코 좋은 기억이 아닌다. 그런데 왜 자꾸 전역자들은 군대 이야기를 하곤 할까? 2018 09, 서울





왜 남자들이 군대 이야기를 하는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해석을 내놓았는데, 그중에 대표적인 것은 두가지이다. 하나는 피해에 대한 인정욕구와 보상심리 라는 것이고, 다른 것은 그게 정말 재미있다고 생각해서 라는 것이다. 



피해에 대한 인정욕구와 보상심리라는 주장은, 군입대로 손해본 자신의 시간을 상대방에게 부각시키면서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한 것이라고 이야기 하곤 한다. 하지만 아무리 과거에 자신이 겪은 고통을 이야기 한다고 해도 상대가 그걸 알아준다는 보장도 없고, 그렇게 이야기 한다 한들 과거에 버려진 시간이 좀 더 의미있게 바뀌는 것은 아니다. 상식적인 인간관계에서 주고받음을 기반으로 한다면, 그저 인정욕구와 보상심리를 위해 군대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이득이 전혀 없다.




아니면 군대 이야기가 정말 재미있다고 생각해서일까? 군 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일들과 사람들이 재미있었기에 옛날 이야기를 하고 그리워할수도 있다. 그런데 사실 군대 이야기가 재미있다고 하는 것은 시간이 지나서 매우 미화된 기억에 가깝다. 당장 그 한복판에 있었을 때는 매 순간이 끔찍했던 개고생이, 그것이 다 끝나고 나서 떠올리는 과정에서 참 이상하고 재미있었던 기억으로 포장되는 것이다. 정말 재미있다라고 하기보다는, 웃기지만은 않은 웃기면서도 슬픈 그런 기억에 가까울 것이다. 그것이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재미있어야만 슬픈 것을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군대 얘기를 하고 군대 경험을 그리워 하는 것은, 인정욕구와 보상심리라고 하기엔 실질적 소득이 없고 재미있다고 생각하기엔 자기 위안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군대 이야기를 하고, 군대에서 보냈던 시간을 떠올리며 심지어는 그리워하기까지 하는 진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군대 경험의 어떤 특수성이, 결코 좋을 것이 없었던 기억을 포장하여 좋게 만드는 것일까?




군대 이야기는, 보상심리와 인정욕구 치고는 실익이 없고 재미있기엔 자기위안적이다. 그렇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2018 12, 오이도




왜 전역자들이 군대 이야기를 하고 그것을 그리워하기까지 하는가를 생각해 보려면, 사람들이 군대를 언제 가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나는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군대를 갔는데, 일반적으로 군대를 많이 가는 때가 이 때인 듯 보인다. 군대에서 보통 2년 정도의 시간을 쓴다고 생각하니, 일반적으로 군대에서 보내는 시간이란 20대 극초반으로 대략 21세 전후로부터 2년 정도인 것이다.




그리고 이때의 순간은 나중에 다시 떠올릴 때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게 된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들어와서, 제한적인 고등학교 생활을 거쳐 하고 싶은 것을 맘대로 하라면서 성인이라는 지위와 함께 대학교로 던져질 때,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무엇을 해야하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보내던 시간들. 자신이 지금 보내고 있는 시간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정확하게 모르는 상황에서, 의미없게 보냈을 수도 있고 나름 무언가를 하면서 보냈을 수도 있는 시간.




무언가를 했는가 혹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가는 상관이 없다. 다시 돌아보면 정말 중요하고 의미있게 쓸 수 있었던, 아쉬운 시간이라고 생각하는 때가 바로 그때인 것이다.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었지만 그때는 할 수 있다는 것을 몰랐던 때. 시간이 지날수록, 그때 이런 것을 해 보면 좋았을 텐데 하는 기억이 아쉽게 남는 때. 군대는 정확히 그 순간의 전후에 있다. 




결국 군대를 떠올리고 이야기하며 그리워하기까지 하는 것은, 군대 그 자체를 그리워 하는 것이 아니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 떠오르는 것은 그때 자신이 군대에 있었음과 군대 자체가 아니라, 군대에서 시간을 보낸 자신의 청춘인 것이다. 떠올리고 이야기하고 그리워한다고 해서 돌아오지 않음은 너무나 잘 알지만,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계속해서 아쉬워지고 생각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청춘. 




떠오르고, 이야기하고, 그리운 것은 군대가 아니다. 군대에서 시간을 보냈던 자신의 청춘이고, 그런 청춘을 공유했던 사람들에 대한 기억이다. 




이야기하고 그리워하는 것은 군대가 아니다. 군대에서 보낸 자신의 청춘이다 2018 12, 서울 명동




그렇다면 많고 많은 것중 왜 군대일까? 청춘을 보내며 했던 것들은 여러가지가 있을 텐데 말이다. 연애도 있을 것이고, 대학생활도 있을 것이고, 아르바이트 같은 것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아마 군대라는 것이 보편적 경험이 될 수 있기 때문 아닐까. 누구는 연애를 못 해봤을 수도 있고, 대학생활을 경험해 보지 않았을 수도 있고, 아르바이트를 안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 모두는 군대를 갔고 전역을 했다는 공통점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경험한 군대와 그런 군대에서 보냈던 청춘, 그런 청춘에 대해 가지는 아쉬움은, 군대에 다녀온 사람이라면 일반적으로 공유하는 것이라는 믿음이 있을 것이다. 나는 군대를 다녀왔고, 그때의 청춘이 시간이 지나면 그리워지는데, 당신도 그러지 않은가? 그러한 감정의 공유가, 다른 사람과 군대 이야기를 하고 그리워하는 것의 근원 아닐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그리워지는 청춘과, 그런 청춘을 보낸 군대. 그리고 그런 기억을 함께하고 공유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있기에, 사람들은 군대를 되새기고 그리워하는 모양이다.




군대를 그리워함은, 군대가 아니라 그때의 청춘을 그리워함이고, 그 그리움을 가진 사람을 이해함일 것이다. 2018 12, 서울 남대문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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