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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준 May 14. 2022

교훈 9, 호스텔 방 안은 잠 자는 공간이다

전화통화는 공용공간에서 하자

프라하를 떠나는 날 아침, 아침에 일어나기 전 엄마가 침대에 누워서 전화통화하는 소리를 들었다. 한국에 있는 동생과 전화통화를 하신 모양이었는데, 시차가 있다 보니 통화가 가능할 때 전화통화를 해야 했다. 그런데 호스텔 방 안에는 우리 말고도 미국에서 온 여자 두 명이 있었는데 다들 잠을 자고 있는 중이었다. 내가 목소리를 듣고 깼으니 그 사람들도 깼을 것임이 분명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느낌에 전화통화는 나가서 하라고 말씀드리고, 체크아웃 준비를 마친 뒤 혹시 불편하게 했냐고 물어보았다. 응 아주 불편하게annoying 했어 하고 딱 잘라 말하는 것이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나가기 전에 미안하다고 하고 나왔지만, 여태까지 외국인을 만나면서 부정적인 감정을 그렇게 직면한 것은 처음이었기에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다.




호스텔에서 숙박하다 보면 침대가 있는 공간에서 잠을 자기 때문에 그곳이 자신이 편하게 쓸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그 공간은 여럿이서 같이 쓰는 공용공간에 가깝고, 통화를 하거나 떠드는 등의 문제는 그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불편을 줄 수 있다. 특히 다른 사람들이 자고 있는 시간대에는 더욱 그렇다. 시간이 오래 지났는데도, 그때 그 방을 떠나면서 미안하다고 하던 내 모습이 종종 무안한 모습으로 남아 떠오른다.




'교훈 9, 호스텔 방 안은 잠 자는 공간이다'




체크아웃을 하고 나서 버스를 타기 위해 프라하 기차역으로 갔다. 혼자서 프라하를 오고간 적은 있었지만, 기차역 근처에서 버스를 타 본 적은 없었기에 조금 긴장이 되었다. 지금이야 정보를 잘 찾아 보고 가서 크게 긴장하지 않는 편이지만, 그때는 아직 맨 처음 어딘가를 간다는 것에 대해 꽤 많이 긴장하고 다니던 때였다. 큰 기차역 어딘가에서 버스를 타야 하는데 어디서 버스를 타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사실 인터넷을 잘 찾으면 너무나도 쉽게 알 수 있는 것이지만 그때는 꽤 많은 경험을 했음에도 아직 모르는 것이 많았다.




여하튼 그때 부모님에게 여기 잠깐 서 계시라고, 혼자 돌아보고 찾아서 다시 올 테니 아무데도 가지 말라고 말씀드렸다. 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위층으로 올라가야 한다는 것을 안 뒤 다시 부모님이 계시는 곳으로 돌아갔는데, 부모님이 자리에 안 계시는 것이었다. 순간 머리가 하얘져서 어디에 계신건지 해서 주위를 둘러 보니,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 계셨다. 부모님은 자리를 바꿔서 나를 찾고 계셨다.




왜 그 자리에 가만히 안 계시냐고 했더니, 엄마가 지나가는 외국인에게 버스를 어디서 타냐고 물어봤다고 했다. 간단한 영어 단어만 이용하면서 물어보셨다는데, 그랬더니 지나가는 외국인이 버스를 어디서 타는지 알려줬다고 했다. 위 층에서 버스를 타면 된다고 하니 위에 올라가면 된다길래, 다 좋은데 앞으로는 그 자리에 계속 계셔야 한다고 말씀드렸다.




부모님 세대는 정규 영어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들이 더 많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인과 대화해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것 아닐까 생각했다. 결국 외국어를 한다는 것은 그 외국어를 얼마나 알고 있느냐가 아니라, 그 외국어를 얼마나 어떻게 말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닌가 하고 그때 느꼈다. 대단하시다고, 앞으로 혼자서 여행도 가셔도 되겠다고 말씀드렸었다. 물론, 혼자서 여행 가신다고 하면 뜯어말릴 테지만.




독일로 가는 버스는 신기하게도 독일 기차 회사인 DB 에서 운영하는 버스였는데, 재미있는 것은 마치 기차처럼 버스 안에 승무원이 두 명 정도가 타서 승객들을 도와준다는 것이었다. 수익구조가 매우 궁금해지는 그런 버스였다. 버스에 타서 프라하를 떠나는데, 인터넷으로 비투스 대성당을 검색하다 보니 나도 몰랐던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내가 인상깊게 봤던 알폰스 무하의 스테인드글라스가 비투스 대성당 안에 있다는 것이었다. 대성당에 가기 전 미리 봤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아쉬워했지만,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그렇게 4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가니, 드디어 내가 지내는 독일의 도시에 도착했다. 당시 그곳에서 교환학생을 하던 나는 그래도 그때 머물던 도시 구경을 시켜 드리면 좋을  같아 중간에 예약을 잡았다. 도시는 작고 소박해서 익숙한 프랜차이즈란 버거킹 에 맥도날드 정도밖에 없는 곳이었지만, 그래도 돌아보기 좋은 장소들이 많은 평화로운 도시였다.




나는 어떻게 기숙사에서 잔다 해도 부모님 잘 곳이 필요했기에 숙소 근처에 있는 호스텔을 예약했는데, 사실 내가 있던 도시에는 특정 때를 제외하고는 관광객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래서 호스텔에도 직원이 상주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업무 시간에만 사람이 있고 그 이후에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불이 꺼져 있는 건물에 문은 열려 있고, 안에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어디에다가 짐을 놓고 가야할지 알 수 없었는데, 어찌어찌 알아보다 결국 가장 안쪽에 여기다 두면 아마 아무도 못 찾겠지 할 만한 그런 곳에 캐리어를 두고 나왔다.




체크인 시간 때 룸메이트가 도와주기로 했기에, 몇 시간 정도 시간이 남은 상태에서 도시 구경을 했다. 날씨는 흐린 편이었지만 우리가 날씨를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도시가 작아서 걸어서 이곳저곳을 구경할 수 있기에, 숙소부터 출발해 부모님을 모시고 일단 도시 한가운데의 공원으로 갔다. 이름도 정원이라는 뜻인 hofgarten 에는 길다란 물웅덩이와 벤치, 산책로가 펼쳐져 있다. 공원을 걷다 보니 아빠가 산책하기 좋아 보인다면서 좋은 곳에서 지내고 있어 다행이라고 말씀하셨다.




종종 거닐었던, 교환학생 하던 도시의 공원




공원에서 바로 앞쪽은 sternplatz 라는 번화가인데, 사실 한국에서 생각하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그런 번화가는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있던 도시에서는 꽤 사람이 많은 곳이었다. 울퉁불퉁한 돌들로 마감한 길거리 양쪽으로는 비슷한 형태의 낮은 건물이 줄지어 있지만, 색이 조금씩 다양해서 다른 느낌을 준다. 도시가 크지 않다 보니 묘하게 낮이 익은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었는데, 좀 익숙한 얼굴의 어느 아시아인 아저씨가 우리 가족을 보고 말을 걸었던 기억이 난다. 그 아저씨는 우리에게 도시에 온 것을 환영한다고 영어로 말해주었다.




도시에서 불판에 구운 소세지와 빵을 쉽게 볼 수 있었는데, 부모님께 맛보여 드리고 싶어서 하나 사서 나눠 먹으려 했었다. 그런데 사려고 한 노점이 마감을 해서 다른 노점에서 샀는데, 그 노점도 마감을 하고 있었는지 소세지가 약간 차갑게 느껴졌다. 어쩌면 우중충한 날씨로 인해 여름이 조금 지난 상황임에도 날씨가 꽤 쌀쌀하게 느껴져서 그랬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내가 생각한 최고의 맛은 아니어서 아쉬웠다.




 도시에 온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찍었던 번화가, Sternplatz



도시 구경을 조금 하니 체크인 시간이 되어서 체크인을 하러 갔다. 숙소 정문에서 룸메이트였던 Lisa 를 만났는데, 부모님은 룸메이트가 여자라는 것에 약간 놀라는 눈치였다. 룸메이트가 여자라니 신기하죠? 저도 맨 처음에 기숙사 들어갈때 그랬어요 하하 하면서 웃어 넘긴 뒤 부모님 체크인을 도와 드렸다.


원래 호스텔에서 남자 방과 여자 방을 나눠야 하기에 엄마가 따로 자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Lisa  호스텔에 확인해  덕에 비어 있는 객실  곳에서 엄마와 아빠가 함께 방을   있었다. 아빠는 나중에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도,  소식을 전하러 계단을 걸어 올라오는 Lisa  반짝이는 눈빛이 아직도 기억난다고 하셨다.




체크인을 무사히 마치고 짐정리를 한 뒤 장을 보러 갔다. 이날은 기숙사에 있는 주방에서 같이 음식을 해서 부모님과 먹을 예정이었는데, Lisa 가 장 보는 것을 도와주었다. 나와 함께 앞에서 걷고 부모님은 조금 뒤에서 따라왔는데, 마트에 장 보러 가는 길 중간에 작은 호수를 거쳤다. 왜 이런 이야기가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호수를 지나가면서 Lisa 가 우리는 길 가면서 만난 사람들과 인사를 해! 하고 말했다. 실제로 교환학생 하면서 잘 모르는 사이에서도 마주치면 인사를 나누는 일이 많아서 한국과 문화가 정말 다르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한 Lisa 는 맞은편에서 오고 있는 할머니에게 반갑게 인사를 했고 할머니는 들은 척도 안하고 그냥 지나가버렸다. 물론 아닌 사람도 있지! 하고 덧붙였던 그 말이 종종 생각난다.




함께 장을 봤던 독일의 마트




장을 보고 나서 정육점에서 고기를 사는데, 구체적으로 스테이크용 부위 단어의 영어 이름을 알지 못했던 Lisa 가 정육점 직원과 이야기해서 신체 부위를 이용해 적당한 고기를 설명해 줬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해서 산 것이 채끝 부위였던 것 같다. 장을 한가득 봐서 기숙사로 돌아왔는데, 그날 부모님 스테이크를 구워 드리고 룸메들과 함께 먹었다. 룸메와 룸메의 남자친구, Lisa, 거기다 부모님에다 나까지 여섯 명이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어디든 간에 소중한 사람에게 쌈을 싸 주는 것은 한국식 문화인 것 같아서, 엄마가 Lisa 에게 쌈을 싸 먹이려는 것을 아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 생각했지만 정작 Lisa 본인은 크게 거부감 없이 잘 받아 먹었다. 내 식습관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셨을 것이 뻔한, 왜 가져오셨는지 도저히 모를, 아빠가 나 먹으라고 가져오신 견과류 멸치볶음도 있었는데 이것도 잘 먹었다. 너무 많이 먹어서 임신했어요! 같은 정말 한국에서나 들어볼 법한 유머를 보여주는 것이 세계는 어디가나 비슷하구나 생각하기도 했다.




그날 밥을 먹으면서 부모님이 궁금한 것을 룸메들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그 대답을 부모님에게 들려주기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내가 관상을 룸메들에게 보여주었다는 이야기를 하니 아빠가 소감을 궁금해해서 룸메들의 의견을 말해주기도 했다. 나중에 이야기 하면서 안 것이지만, 내가 교환학생 하면서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부모님이 걱정 많이 하신 것 같은데, 그래도 룸메들과 같이 밥 먹고 이야기 하는 것을 보면서 멀리서 잘 지내고 있구나 생각하셨다 한다.




룸메들과 어울려 부모님과 함께 먹었던, 잊을 수 없을 저녁식사




다만 그날 다 먹고 나서 설겆이는 어쩌다 보니 나와 엄마가 했는데, 이건 시간이 지나도 묘한 기분으로 남아있다. 한국이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유러피안 스타일이라 그럴까? 하지만 그걸 깊게 생각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는 것 같다. 나는 내가 설겆이를 하기로 결정했고, 엄마는 나를 도와주셨다. 나는 그걸 오래 생각하곤 한다.




부모님은 호스텔로 돌아가시고, 나는 기숙사에서 뒷정리를 하고 쉬려 했다. 그런데 뒷정리 할 것이 많아서 생각보다 바쁘게 이것저것 정리했던 것 같다. 그렇게 짧은 시간 무언가를 바쁘게 하고 잠에 들었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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