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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준 May 29. 2022

이래도 회식을 안 와?

젊은 것들 회식 오게 하기

이번주 금요일 저녁 시간들 비워 두세요. 오랜만에 회식 하겠습니다. 나지막히 들려오는 목소리에 드디어 올 것이 왔군 하는 마음이다. 사실 한동안 코로나를 거치며 제대로 밖에서 음식 사 먹기 힘들었던 시절, 사람 만나는 것이 힘든 것도 있었지만 회식 안 하는 것은 좋았다. 그런데 회식을 안 한지 몇달 되긴 했으니, 언젠간 한번 회식을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긴 했다. 




사실 퇴근 시간이 다 되어가서 끝나고 술 한잔 하자는 말을 들었을 때 완곡히 거절한 적이 몇 번 있었다. 있지 않은 약속을 만들어서 약속이 있다고 할 수도 있지만 이상하게 거짓말 하는데에는 입이 떨어지지 않아서, 집에 가서 쉬고 싶다고 이야기 했었다. 부하 직원에게 술 마시자고 하는 것을 컨펌 받아야 하냐고 이야기 하는 것을 듣다 보니 나중에 결국 회식을 피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싫은 것을 싫다고 이야기 못하는 것이 문제인지, 그렇게 느껴야만 하는 상황이 문제인지는 아직도 풀지 못한 미스테리다. 




좌우지간 일이 끝나고 다들 오랜만의 회식을 하기 위해 점찍어 둔 회사 앞 고깃집으로 향한다. 평소에도 일이 넘치고 넘쳐서 제시간에 집에 가는 사람이 없다시피 한 곳에서, 회식 한다고 하니 정시보다 더 빠른 시간에 퇴근을 하는 것이 재미있다. 나를 포함한 아래 직원들이 열심히 자리 세팅을 하고 반찬을 나르는 사이 소맥이 말아진다. 건배를 하고, 윗사람들이 얼마나 먹는지 확인한 뒤, 그것에 맞춰서 먹는다. 먹고 싶은 만큼 마시는 것은 의미가 없다. 어차피 술 받을 때 다 마셔야 한다. 




자신의 연인이 절친에게 깻잎을 떼어주면 어떻게 할 것인가, MBTI 는 무엇인가 같은 대화 주제가 오가다가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요새 젊은 사람들은 회사 사람들하고 먹는 한우보다 친구와 먹는 떡볶이가 더 낫다고. 바로 나에게 질문이 치고 들어온다. ㅇㅇ는 회식이 어떤가? 재미있나? 나는 거짓말을 잘 못하는 성격이다. 몇 초간 생각을 하다가 대답한다. 고기를 먹을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습니다. 




6시가 넘었는데 전화 온 거래처 때문에 어떤 사람은 사무실에 샘플 발송을 하러 올라가고, 어떤 사람은 담배를 피러 나간다. 흔히 회식자리에서 하는 이야기들. 옛날에 같이 다른 곳에서 일할 때 했던 경험들. 소고기 먹는 법. 같이 술 먹는 사람이 술이 비었을 때 따라주는 법. 담배 피는 사람들이 모두 자리를 떴을때 술을 조금씩 정리하는 법. 내가 먹고 싶어서 먹는 술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함께 있기 때문에 먹어야 하는 술들. 회식 자리가 있다면 이런 것이겠고, 이정도면 아주 양반이겠지 싶은 그런 것들. 




고깃집에서 나와 들은 좀 더 마시겠냐는 말에, 몇 초 기다리다가 맥주 오백 하나는 더 먹을 수 있겠습니다 대답한다. 10시도 되지 않은 시간에 집에 보내주려고 하는 것이 의외라 다행이라고 생각하는데, 담번에 한번 죽을 때까지 마시자는 말에 내가 무심코 대답한다. 술을 꼭 죽을 때까지 마셔야 합니까. 물론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라고 대답할 수도 있고 그게 맞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대답한다면 정말 죽을 때까지 먹게 되는 것 아닐까 걱정스럽다. 




그렇게 오래간만의 회식은, 예상한 음식을 먹고, 예상한 대화를 나누고, 예상한 행사를 하며, 예상치 못하게 이른 시간에 끝났다.




회식은 업무의 연장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2020 04, 서울 성북구




세대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는 조직에 어떻게 하면 젊은 사람들의 회식 기피를 해소할 수 있을까 종종 생각해보곤 한다. 하지만 현실은 어떨까? 내가 생각한 회식 기피 해소 방법은, 모두 실현이 불가능한 것들 뿐이었다. 




만약 회식을 정해진 시간에 끝내도록 하면 어떨까? 그날 집에 가서 고양이도 쓰다듬어야 하고 침대 위에서 뒹굴거려야 하는 사람들이, 집에 가서 못다한 것을 어떻게 해야 할 지 계획할 여유를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해진 시간에 끝낼 수 없다. 일단 회식 결정권자들에게 어차피 대리 불러서 차 타고 갈 바에, 최대한 늦게까지 먹는 것이 효율적이다. 게다가 회식을 언제 끝낼지 정해둔다는 것은, 다같이 즐겁게 먹고 마신다는 이상향에 전혀 맞지 않는다. 




그럼 회식 장소를 서울 안 특별한 음식으로 정해 보면 어떨까? 일반적인 고깃집을 선택하는 것보다 특별한 음식점이나 신기한 메뉴를 고른다면 어떨까? 하지만 이 또한 회식 결정권자들에게 매력적인 선택이 아니다. 회식은 음식을 먹기 위한 것이 아니다. 술을 먹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처음 가 보는 음식점과 그곳의 메뉴는 술을 먹기에 적절하지 않다.




회식 자리에서 술을 강권하지 않는다면 어떨까? 자기 앞에 술병을 두고 자기 먹고 싶은 대로만 따라 먹는 것이다. 적당히 속도를 늦춰도 전혀 눈치 주지 않는다면 어떨까? 당연하게도 결정권자 보기에 좋지 않다. 나중에 외부에서 술 먹을 것을 대비해서 주량을 늘려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고, 내가 마시는데 너가 안 마시느냐 생각할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편하게 마시라 한들 편하게 마실 수도 없다. 




결국 무얼 하든 회식을 하고 싶은 사람과 회식에 가야 하는 사람의 방향은 다를 수밖에 없다. 




회식 결정권자의 이상적인 회식이란, 회식을 가야만 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다르다. 2019 01, 서울 동대문



여태까지 회식을 했던 경험을 생각해 보면, 조금 더 편한 사람들과의 회식도 있었고 그냥 그저 그런 사람들과의 회식도 있었다. 그 자리는 가급적 피하고 싶은 회식도 있었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조금 더 편한 사람들과의 회식도 좋지는 않았다. 새로운 곳 가서 무언가를 먹어본다는 것만 제외하면, 나에게는 딱히 즐겁지 않은 경험이었다.




어쩌면 내 본질적 성향이 내향적이라서 그런 것 아닐까 싶기도 하다. 사람과의 만남이 즐거웠던 아니었던 간에 시간이 지나고 나면 피로함을 느낀다. 업무적인 관계의 사람을 업무 외 시간에 본다는 것에 더 피로함을 느끼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인터넷에 있는 수많은 회식 반대론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단순히 그것은 내향적인 것 혹은 외향적인 것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회식을 통해서 조직의 단합을 이끌어 낼 수 있는가, 모두가 솔직해 질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는가,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는가 하면 잘 모르겠다. 회식을 하다 보면 조직 내 구성원간의 가치관 차이를 느끼게 될 것이고, 현대사회에서 결국 개인은 타인에게 솔직할 수 없음을 다시 알게 될 것이며, 새로운 것이 아닌 누군가 누구에게 가르쳐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그러나 결정권자들이 보시기엔 그 모습이 보기 좋더라, 일 것이다.




왜 회식을 안 올까? 이렇게 하면 회식을 올까? 아무래도 먼저 해야 할 질문은, 왜 회식인가? 일 듯 하다. 




어떻게 회식을 할 것인가 가 아니라, 왜 회식을 할 것인가 라는 질문이 더 앞서야 할 듯 하다. 2018 05, 서울 창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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