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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준 May 29. 2022

교훈 11, 자고 일어났을때 가렵다면 조심하자

말로만 듣던 베드버그의 힘

교환학생 하던 도시를 떠나 베를린으로 가던 날, 전날 부모님과 함께 택시를 타고 버스 정류장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예약해 뒀었다. 아무래도 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기다려야 하고 그러니, 차라리 아침 일찍 일어나서 편하게 셋이서 택시를 타고 가기로 한 것이다. 나는 교환학생 하는 동안 택시를 단 두 번 타 봤을 정도로 택시를 거의 타지 않았지만, 부모님을 모시고 다닐 때는 그만큼 편한 것이 없었다.




전날 저녁 부모님은 기숙사 근처 예약해 둔 숙소에서 주무시고, 나는 기숙사가 더 편한 만큼 기숙사에서 이것저것 정리를 하고 나서 다음날 아침 부모님에게 가기로 했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서 시계를 보니 너무 늦게 일어난 것이었다. 아침에 일어날 때 부모님의 전화를 받고 깨어났던 기억이 난다. 아마 부모님이 카카오톡 전화를 걸어서 나를 깨웠던 것 같다. 분명히 시계를 맞춰 뒀는데 알람으로 정신이 깼다는 기억조차도 없어서, 정말 허겁지겁 챙겨서 밖을 나섰다. 




부리나케 부모님이 계시는 숙소 앞으로 가 보니 택시기사는 도착해 있었고 부모님 포함 세명이 멀뚱하게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개를 몇 번이나 숙이며 죄송하다고 말하고 택시에 올라 버스정류장으로 향한다. 기차역 근처에 있는 버스정류장은 도시 안에서 오가는 시내버스가 다니는 곳은 아니지만, 고속버스 업체가 정류장으로 사용하는 곳이었다. 분명히 시계를 맞춰놓고 잤는데 아예 잠이 깬 기억조차 없다고 말하니, 부모님이 내가 많이 피곤해서 그랬을 것이라고 하셨다. 




여하튼 무사히 버스정류장에 도착해서 짐을 내리고 택시기사에게 요금을 지불했다. 내가 늦느라 조금 더 기다린 것도 있는 것 같아서 잔돈이 몇 유로가 넘게 나왔던 것 같은데 그냥 전부 다 지불하니, 내 손을 움켜쥐고 고맙다고 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영어도 잘 안 통하고 그랬던 것 같지만, 그때 잠깐 눈을 마주치며 짧게 영어로 말했던 고맙다는 그 말이 신기한 느낌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베를린까지 가는데에는 버스를 타고 적어도 세 네 시간은 걸렸는데, 아마 이날 아침을 위해 근처에서 간단히 빵을 샀던 것 같다. 원래는 부모님을 모시고 내가 기숙사에서 먹는 전형적인 아침식사를 같이 먹으면 어떨까 생각했었다. 오븐에 구운 빵과 햄 혹은 치즈, 우유와 시리얼, 과일 같은 것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기억이 좀 묘해서, 한번은 같이 탁자에 둘러앉아 아침밥을 먹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조금 시간이 남은 상황이라 버스 정류장에서 부모님과 함께 버스를 기다렸다. 보통 그 도시에서 다른 곳으로 가는 고속버스가 일반적으로 서는 정류장이었기에, 도시를 떠나는 사람들은 그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같은 날 여행을 가는 친구들을 의도치 않게 마주치기도 하고, 혹은 다른 곳에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을 만나서 간단하게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도 있다. 




평화로운 아침 한적한 시내에서, 잠깐동안 한적한 시간을 기다렸다. 자전거를 타고 길거리 쓰레기통을 슥 보고 지나가며 환불할 수 있는 플라스틱 병을 찾는 할아버지도 봤던 기억이 나고, 바로 앞쪽에 교회 첨탑이 뾰족해서 앞쪽까지 가서 올려다봤던 것 같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버스가 도착했고, 부모님과 함께 올라 베를린으로 향했다.




그렇게 몇 시간 버스를 타고 나서 베를린에 도착하니, 이전에 부모님과 있던 도시와는 다른 대도시의 번잡함이 느껴진다. 일단 가방을 계속 들고 다닐 수는 없으니 예약한 호텔에 가서 가방을 맡겨 두기로 하고 근처의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그런데 어디서 뭘 먹어야 할 지 감이 오지 않아 한참을 헤맸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가 결국 괜찮아 보이는 조용한 음식점에 가서 밥을 먹었다. 




메뉴 중에 곡물이 들어가는 것이 있었는데, 한국의 밥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부모님이 그걸 보고 김자반을 같이 먹어도 되냐고 물어봐서, 김자반이 냄새는 강하지 않고 크게 문제될 것 같지는 않아 직원에게 물어보고 같이 먹었었다. 가게 입장에서는 막고 싶을 수도 있는데, 다행히 이해해 줘서 같이 먹을 수 있었다. 




지금 보니 칠리 콘 카르네 같은 요리 같아 보이기도 하는 오른쪽 아래 메뉴는, 무엇이었는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밥을 먹고 숙소에 체크인 해 보니, 요청한 대로 2인실 객실 안에 임시 침대가 하나 들어가 있었다. 부모님과 함께 세 명이서 방을 써야 하는데 3인실이 많지 않으니, 2인실 적당한 것에 침대를 하나 추가했던 기억이 난다. 부모님이 침대를 하나씩 쓰시고 나는 임시 침대를 썼는데 그렇게 베를린에서 2 박을 해야 했다. 




그런데 임시침대에서 자고 다음날부터 피부가 꽤 가려웠다. 비록 아토피 증상이 약간 있고 알러지도 있긴 하지만, 이건 너무 가려운데 싶은 정도로 생각이 드는 경우가 많지는 않기에 조금 이상했다. 나는 걸어다니다가 무슨 벌레에 물렸나 했었다. 부모님도 나를 보고 뭔가에 물린 것 아니냐고 했지만 그때 우리는 내가 자다가 베드버그에 물렸다는 생각을 상상도 못 해본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두 번을 자고 나서 부모님과 헤어져 다른 곳으로 여행을 갔을 때, 나는 알게 되었다. 나는 단 한번도 베드버그가 어떤 것인지 경험해 본 적이 없었지만 알 수 있었다. 아, 이게 바로 베드버그구나. 이전에 한번도 안 물려 봤는데 어떻게 아냐고? 정말 미친 듯이 가렵다. 알고 있던 느낌과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가려워서, 조금 긁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약이 필요하다고 느낄 정도가 된다. 그 정도로 가렵다면 분명히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한국에서야 베드버그, 빈대는 이미 추억 속에서나 등장하는 해충이지만 유럽에서는 운 없으면 종종 만나는 불쾌한 손님이고, 나도 그런 불쾌한 손님을 만난 것이었다. 나무로 된 침대 프레임 사이에 숨어 있거나 하는 경우가 많아서, 만약 침대에서 자고 일어났는데 이전과 확연히 다를 정도로 몸이 가렵다면 의심해 보는 것이 좋다. 게다가 운이 없다면, 빈대가 몸에 들러붙어서 여기저기 다른 곳까지 빈대를 옮기고 다닐 수도 있으니까. 만약 빈대가 몸에 붙어 있는 상태로 기숙사나 집으로 돌아간다? 상상만 해도 끔찍할 것이다. 




'교훈 11, 자고 일어났을때 가렵다면 조심하자'




여하튼 이때 아직 자고 일어나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던 나는 부모님과 함께 베를린 구경을 나섰다. 날씨가 별로 좋지는 않았지만, 비는 오지 않아서 걸어다니기는 좋았다. 사실 베를린이라고 하면 독일의 수도라는 것만 알지, 유명한 것이 어떤 것이 있는지 잘 몰랐던 나는 기숙사에서 룸메에게 물어보기도 했었다. 그런데도 어디를 가야 할지 감이 잘 잡히지 않아, 숙소에서 멀지 않은 곳들 위주로 돌아보며 구경했던 것 같다. 




딱히 목표를 삼지 않고 계속해서 걷다 보니 중간에 큰 공원인 티어가르텐도 지나가고, 유명한 장소를 지나가기도 했다. 브란덴부르크 문을 지나갈 때는 시위 행렬을 지나기도 했다. 이때 아빠가 어떤 시위 참가자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해서 셋의 사진을 찍었는데, 시위자가 전단을 주는 바람에 같이 받았다. 읽어 보려 했지만 독일어로 적혀 있기도 했고, 번역기 써 가면서 보기엔 부모님 모시고 있는 상황이라 여의치 않아서 전단은 나중에 버렸던 것 같다. 지금 다시 생각하니 그 전단의 내용이 무척 궁금하다. 




베를린의 큰 공원인 티어가르텐에서 찍었던, 부모님의 뒷모습




시위 참가자가 사진을 찍어줬던 브란덴부르크 문




큰 도시 곳곳에 지나가다 보면 다양한 기념품 가게가 있었는데, 그 중에 한 곳에 들러 부모님과 구경을 했었다. 분단 국가 시절 베를린의 인상적인 사진들을 찍어둔 포스터를 팔기도 했는데, 몇몇 인상깊은 사진들은 찍어둬서 나중에 자세히 알아보기도 했었다. 신기한 것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의 장벽 조각을 팔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인증서도 포함되어 있다는데, 아무래도 믿을 수 있는 것은 독일제라는 것 하나뿐인듯 했다.




다시 사진을 보며 그때의 여행을 되새겨 보니, 정말 사진을 거의 찍지 않은 것이 아쉬웠다. 아마 처음으로 해 보는 본격적인 효도 여행에 정신이 없어서 사진을 제대로 못 찍었던 것 같아 아쉽다. 



묘하게 독일스러운 것들이 많았던 기념품 가게




날씨가 화창하진 않았지만 사람들이 밖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던, 베를린 돔 밖




이곳저곳 많이 돌아다니진 못했지만, 베를린 시내를 구경하고 돌아와서 저녁을 먹었다. 호텔 바로 옆에 음식점이 있었는데, 투숙객은 가격을 할인해 준다고 해서 이곳에서 먹었던 기억이 난다. 이런저런 메뉴를 시켜 저녁을 먹다가, 원래 예산 생각해서 필요 없는 것 사먹을 생각은 절대로 하지 않던 나는 무슨 일인지 달달한 디저트류가 하나 먹고 싶어서 부모님께 물어보고 사먹었었다. 




산딸기 무스가 올라간 커스터드 크림 푸딩인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하면 그거 먹는데 부모님에게 물어보고 허락을 맡았던 그때 그 기억이 지금 떠올리면 격세지감이다. 지금의 나와는 너무나도 다른 것 같아서 그 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구나 싶기도 하고, 그때의 나는 그랬구나 싶기도 하다. 




번잡하지 않은 곳에서 먹었던 저녁식사




매번 사진을 볼 떄마다, 더 열심히 찍을걸 하는 생각이 든다




부모님께 먹어도 되냐고 물어보고 주문했던 후식




그렇게 나는 옛날 그때 부모님과 여행을 하며 음식 사진을 찍었고, 지금은 그 음식 사진을 보며 그때를 다시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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