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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준 Jun 05. 2022

교훈 12, 부모님의 쇼핑은 말릴 수 없다

효도여행은 효도여행 답게


베를린에서의 1박 후, 나는 자고 일어나서 몸이 약간 가렵다고 느꼈다. 맨 처음엔 내가 그저 아토피도 있고 알러지도 있고 하니 충분히 있을 수 있는 그런 증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침대에 베드버그가 있었다. 베를린을 떠나고 나서야, 도저히 내가 알던 그 가려움이 아니라는 느낌에 이게 베드버그구나 하고 알게 되었지만, 어쨌든 첫날을 보내고 나서는 그게 베드버그라고 생각도 못 하고 있었다.




내가 밤사이에 침대에 있는 빈대들에게 만찬을 제공했다는 것도 모르고 아침에 일어나 부모님과 조식을 먹으러 갔다. 이때 챙겨온 보온병에 뜨거운 물을 채워달라고 했었다. 그렇게 말 했더니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뜨뜻한 물을 채워줬던 경험이 많아, 들고 다니다 보면 나중에 커피믹스를 다 녹이지 못할 정도로 물이 식어버리곤 했다. 그래서 뜨거운 물을 달라고 할 때 따뜻한 물 말고 뜨거운 끓는 물을 달라고 했더니, 안쪽에서 전기주전자 끓는 소리가 나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었다.




베를린에서의 둘째 날은 베를린 구경을 하기보다는 부모님들이 사고 싶었던 것을 사기 위해 베를린 근처의 아울렛을 갈 겸 베를린 외각의 상수시 궁전을 가기로 했었다. 사실 상수시 궁전은 아울렛만 가기에는 좀 아쉬우니까 부모님에게 같이 돌아보자고 한 것이니, 이날의 본격적인 일정은 부모님과 베를린 외곽의 아울렛 가서 쇼핑하는 것 도와드리기 였다.




나는 교환학생을 하면서도 딱히 쇼핑이다! 하는 생각으로 이것저것을 샀던 기억이 없고 보통 여행을 다닐 때도 마찬가지였다. 꼭 갖고 싶은 것을 합리적으로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들 때만 구매 결정을 내릴 뿐, 내가 생각하는 쇼핑 느낌으로 물건을 산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부모님과는 세대차이가 나다 보니 아무래도 지구 반대편의 먼 나라에 와서 좋은 물건을 사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셨던 것 같다. 요즘 들어서는 인터넷으로 물건을 사는 것이 매우 쉬워졌기에 외국에서 사는 물건이란 대부분 한국에서도 구할 수 있게 되었지만, 아무래도 여행에서 산 물건이란 두고두고 쓸수록 여행을 되돌아보게 하니 큰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아침에 ATM 에서 현금을 뽑기 위해 들어갔는데, 한국의 그것처럼 건물 안 작은 공간 안에 ATM 이 있었고 중간에 문이 하나 있었다. 아무리 봐도 노숙자인 것 같아 보이는 사람이 거기서 문을 열어줬는데, 노숙자가 문을 열어주고 적선을 요구한다더라 하는 말을 하도 많이 들었던 탓에 그 모습을 보니 갑자기 매우 긴장되었다.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그런 난처한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던 것 같다. 아니면 가족 단위라서 제대로 매달리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현금을 뽑고 나서 마트에 갔던 것 같은데, 이날 아침에 베를린 외곽으로 가면 여기저기 돌아다닐 것 같아서 간식을 좀 사 가려 했다. 마트에서 과일이나 간식 같은 것을 사서 들고 다니면 필요할 때 먹을 수 있어서 식비를 아끼는 데에도 좋았다. 그런데 간식거리를 사서 마트에 줄을 서고 있으니, 우는 아이 두 명을 데리고 있는 외국인이 자연스럽게 길 중간으로 끼어들며 새치기를 했다.


마치 아이가 우니까 먼저 들어가서 새치기 해도 된다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들어가던 그 모습이 시간이 오래 지난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새치기 하던 그 외국인은 내가 알고 있던 독일인의 겉모습이 아니어서 혹은 그 뒤에서 어이가 없다는 듯이 바라보던 두 사람은 내가 알고 있던 독일인의 모습이라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상수시 궁전으로 가기 위해 열차를 기다리던 와중, 사진을 찍던 부모님




베를린 첫째 날보다 날씨가 좋았다




열차를 이용해서 편하게 목적지로 갈 수 있었다




상수시 궁전으로 가기 위해 역에서 내려 조금 걸어가는데, 조금 한산해서 스산하게 느껴지는 골목길을 지나며 걸어가다 보니 상수시 궁전에 도착했다. 엄청나게 넓은 곳에 공원이 펼쳐져 있고 군데군데 궁전 건물이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돌아보지는 못해서, 넓은 궁전을 산책하면서 궁전 안의 기념품 가게를 구경했던 것 같다.




기념품 가게가 그렇듯이 이런저런 잡다한 것들을 많이 팔았는데, 그중에 아빠가 무슨 귀족이 말 타고 있는 모형의 레고 같은 장난감을 샀던 기억이 난다. 왜 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여행을 기념하기 위해 사는 것이 기념품이니, 샀다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 그것이 집 구석에 그대로 있는 것을 보면 사고 나서도 까먹으신 것 아닐까 싶긴 하지만.




넓게 펼쳐진 상수시 궁전 내 부지의 공원




상수시 궁전의 노란 외벽은 얼핏 보면 마치 금처럼 보인다




목가적인 풍경의 궁전을 구경하는 것을 좋아한다면 괜찮겠지만, 사실 궁전과 공원 구경하는 것 외에는 딱히 할것도 없고 다음 일정을 빨리 진행하고 쉬는 것이 좋을 듯 하여, 상수시 궁전을 적당히 둘러보다가 떠났던 기억이 난다. 궁전에서 역으로 돌아와 다음 열차를 기다리기까지 시간이 조금 있어서, 독일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케밥집에서 케밥을 사다가 부모님과 함께 먹었다. 부모님과 함께 케밥을 먹었던 것은 처음이었던 것 같은데, 가격이 저렴한 편이고 야채와 고기가 많이 들어 있어 한끼 식사로 아주 좋아 나도 종종 사먹었었다.




궁전에서 돌아갈 때 봤던 거대한 풍차. 나중에 보니 풍차에 올라가 주위를 둘러볼 수 있었던 모양이다




몇 번 열차를 갈아타고 아울렛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문득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 독일인은 얼마나 될까 궁금해졌다. 사실 아울렛에 와서 사고 싶은 물건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 본토 독일인은 얼마나 있을지 궁금해 한다는 것이, 어찌 보면 나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잘 드러내 주는 것 같다. 물론 부모님은 생각이 달라서 이것저것 사고 싶은 것이 많으셨다. 특히 다음날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탈 예정이기에 사실상 무언가를 사고 싶다면 마지막 기회였고 열심히 찾아다니셨다. 나는 옆에서 부모님이 물건 찾는 것을 도와 드렸다.




구멍 숭숭 뚫린 것으로 유명한 특정 신발을 사시려다가 한국에서도 구할 수 있는 것 아니냐, 하면서 찬물을 끼얹기도 했고, 칼 두 개를 가지고 이거랑 저거랑 뭐가 다르냐는 질문을 계속하다 보니 지친 직원이 전단지를 건네주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많이 지친 상태였고 다시 한다고 해도 지치겠지만, 어쨌든 그렇게 부모님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으니 다음번에 또 그런 기회가 온다면 열심히 하고 싶다. 물론 그때는 나도 내가 원하는 물건을 찾아 열심히 헤메겠지만.




엄마는 아는 사람에게 줄 주방용품도 샀는데, 사실 가족과 여행을 간다고 하니 여행 잘 다녀오라면서 찬조금을 받았다 하셨다. 그 찬조금으로 찬조금보다 비싼 선물을 사서 돌아간다고 하니 아빠는 이해하지 못하고 나는 괜찮은 방법이다 싶었다. 가족 간에 생각이 이렇게 달랐지만, 어쨌든 간에 결국엔 부모님이 원하시는 것을 제대로 사서 돌아갔던 것 같다.




'교훈 12, 부모님의 쇼핑은 말릴 수 없다.'



아울렛 가는 길, 기차역에서




정신 없는 와중에도 남겨둔 아울렛 사진




선물을 한보따리 사 들고 기념사진을 찍는 부모님




베를린으로 돌아오고 나서, 마지막 저녁식사가 될 것 같아 후회없는 곳에서 밥을 먹기 위해 이곳저곳 돌아다녔던 것 같다. 뮌헨에서 갔던 그런 비어홀을 다시 가려 했지만 한 군데 알아봐서 간 곳은 사람이 너무 많아서 적절하지 않은 것 같았다. 게다가 이상하게 이날 밤은 거리에 사람이 별로 없어서, 부모님 모시고 다니기에는 약간 부담스러운 것도 있었다.




결국 골목 구경이나 좀 하다가 돌아왔었다. 돌아오는 길에 엄마가 어떤 패션 브랜드를 보고 저 브랜드 한국에서도 유명하다고, 강남 땅값 비싼 곳에 지점이 있는걸 봤는데 가게 앞에 사람들이 항상 줄을 서 있다고 말하셨었다. 독일에서의 마지막 저녁식사를 어디 근사한 곳에서 먹으면서 이야기 하고 싶었지만, 생각보다 마땅한 장소를 찾지 못해서 숙소 옆에 있는 음식점에서 먹었던 것 같다.




딱히 마음이 가는 음식점을 찾지 못했던, 베를린의 마지막 밤





사실 여행 일정을 마무리 할 때가 되면 언제 다시 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더 맛있는 것을 먹고 좋은 곳에 가 보고 싶어하게 되는 것 같지만, 이때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 아직 어렸을 때고 부모님 모시고 여행 가는 것도 처음이니, 언제 지출을 늘려야 하는지에 대한 감이 전혀 없었던 것 같다. 처음 무언가를 해 보면 잘 모르는 것들 투성이인 상황에서 해 나가면서 배우는 것이지만, 가끔씩 그런 기회들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기에 아쉽다.




찍어놓은 사진조차 별로 없어서, 한참 시간이 지나 다시 떠올리려 해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그때의 순간들. 나는 그 순간을 떠올릴 때마다, 가끔 어떤 기회는 너무 특별하고 희귀해서 가지고 있을 때 그 의미를 모를 수 있음을 느끼곤 한다.



부족한 사진을 찾고 또 찾을 때마다, 더 많은 기록을 남길 걸 하고 아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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