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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준 Jun 11. 2022

교훈 13, 언제 다시 올지 모른다

거쳐가는 매 순간이 소중하다는 것

부모님을 모시고 짧은 시간 유럽여행을 하고 마지막 날. 맨 처음 독일에서부터 시작해 스위스, 독일, 체코 등등 여러 곳을 돌아다니다가 마지막 날이 되었다. 처음 경험하는 효도 여행의 압박에 나는 많이 지쳐서, 최대한 빨리 다음 일정으로 가서 혼자 여행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쨌든 간에 부모님을 잘 공항으로 모셔다 드려야 한국으로 돌아가실 수 있었다.




마지막 마무리를 잘 짓기 위해, 부모님을 모시고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마지막 여정으로 길을 나섰다. 밤 사이 베드버그에게 수도 없이 뜯겼다는 것을 아직 모르는 상태였다. 2일 정도 지나고 나서 간지러움과 함께 피로함을 느끼며 내가 베드버그에 물렸던 것이구나, 하고 깨닫게 될 것이지만 그때는 아직 그걸 몰랐다.




기차는 베를린 중앙역에서 출발해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고속열차였다. 호텔에서 베를린 중앙역으로 가려면 충분히 걸어갈 수 있는 거리였지만, 체크아웃 하고 나서 한 명이 캐리어 하나씩 끌고 걸어가기엔 전혀 적절하지 않았다. 짧은 거리이지만 노면전차를 타기로 하고, 노면전차 안에 있는 표 자판기에서 표를 사려 했다. 그런데 표 자판기가 작동이 되지 않아 표를 살 수가 없었다. 어버버 하다 보니 열차가 중앙역에 도착했고 우리는 열차에서 내렸다. 무임승차를 한 것이다.




나는 중앙역 안에 있는 표 자판기에 가서 표를 세 장 끊었다. 부모님이 이제 탈 일도 없는데 표는 뭐하러 사냐고 하셨고 나는 대중교통을 탔으니 표를 사야 한다고 하면서 표를 끊었다. 그리고 방금 전에 돈 내고 나온 표를 찢어서 쓰레기통에 버렸다. 부모님은 그게 무슨 돈 낭비냐고, 무임승차 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하셨고, 나는 대중교통을 탔으니 당연히 표를 사는거고 표를 썼고 쓸 일이 없으니 버리는 거라고 말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총체적 난국이지만, 나는 비슷한 상황이 와도 또 비슷하게 행동할 것 같다.




베를린에서의 마지막 순간 찍었던, 베를린 중앙역




첫날 독일에 도착하고 나서 아무것도 모를 때, 열차 예약에 자리를 지정하지 않았었다. 자리 지정에 추가 요금이 들기에 돈을 아끼려고 한 것인데, 푼돈 아끼면서 열차 한 객차 안에 세 명이 군데군데 떨어져서 외국인들 사이에 낑겨 앉는 것을 경험하고 나니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걸 예상했는지 아니면 마지막 일정이라 그랬는지, 베를린에서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기차에는 자리를 미리 지정했다. 부모님과 함께 세 명이서 자리를 잡고 프랑크푸르트로 향했다.




오후 비행기를 타기 전 프랑크푸르트에서 조금 시간이 있었는데, 프랑크푸르트 구경을 하기엔 시간이 많지 않았고 밥을 먹을 시간 정도는 되었다.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보관함에 캐리어를 넣어두고 나서 밥을 먹으러 갔다. 부모님은 한국으로 돌아가시고 나는 아직 교환학생 기간이 남았기에, 앞으로 또 한동안 볼 수 없는 상황에서의 마지막 식사였다. 부모님과 함께 짧게나마 돌아본 여행의 마무리를 짓는 식사이기도 했다.




프랑크푸르트 역 앞의 번화가는 바로 역 앞임에도 불구하고 약간 기묘한 분위기가 인상적인데, 바로 옆에 홍등가가 있는 이상한 분위기는 한국의 서울역이나 용산역 근처와는 느낌이 아주 다르다. 낮에 부모님과 함께 방문한 앞쪽 번화가는 소세지 굽는 노점상과 작은 시장으로 부산스러웠다. 조금 걸어가서 인터넷으로 미리 알아본 음식점에 도착했다. 스테이크를 파는 곳이었다.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스테이크를 좋아하는 나는 여행 동안 이렇다 할 스테이크를 못 먹어본 것 같아서 부모님과 함께 먹자고 했었다. 세 명이서 각각 다른 스테이크를 하나씩 먹으면서 지나간 여행 이야기를 했다. 아빠가 나 먹으라고 멸치볶음을 가져오셨는데 엄마가 그걸 보면서 내가 절대 그걸 먹을 일이 없을 거라고 이야기 했는데도 꼭 가져와야겠다고 하셨었다 한다. 결국 엄마 말대로 내가 그 멸치볶음을 먹는 일은 없었지만, 여하튼 나는 아빠가 그걸 직접 만들었는지가 궁금했다. 나중에 상황을 살펴보니 아마 아니었던 것 같다.




아빠는 유럽에 오면서 달러 지폐를 들고 와서 심지어는 계산을 하려고 하시기도 했는데, 유럽에 오시면 유로를 챙기셔야지 왜 달러를 챙기셨냐는 말에 당연히 달러를 쓸 수 있을줄 알았다고 하셨다. 아마 달러가 잘 쓰이는 국가들을 갔던 때의 기억 때문인 것 같다. 그 외에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았다. 유럽 여행 계획을 짜기 전에 어차피 독일 가는 김에 캐나다도 가자면서, 어차피 먼 곳에서 먼 곳 가는데 거기서 가는게 낫지 않겠냐 하는 말을 하시기도 했고.




음식은 많았지만 시간은 적었다. 그래도 천천히 여행 이야기를 하면서 열심히 음식을 먹었다. 고기를 썰면서 아빠가 하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아들 덕택에 유럽에 와서 스테이크를 썰어본다고. 내가 뭐를 딱히 대단하게 했던가? 하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부모님이 멀리 와서 좋은 구경 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고 생각했다.




여행의 마지막 식사, 프랑크푸르트의 스테이크




식사를 마치고 프랑크푸르트 공항으로 향했다. 부모님은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고, 나는 그리스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 했다. 금액이 얼마나 클지 알 수는 없지만 부모님이 꼭 세금 환급을 받고 싶어했지만, 신청하는데 필요한 영수증을 캐리어에 넣어 수화물 신청해버리는 바람에 신청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그냥 출국하기로 했다.




적어도 두 분이 한국 가는 비행기 타는 탑승구 앞까지 가는 것은 봐야겠다 싶었는데, 공항 구조가 맞지 않아서 나는 다른 곳에 가서 비행기를 타야 했다. 결국 나는 부모님께 조심히 돌아가시고 한국 돌아가서 연락 달라고 한 뒤 짧은 포옹을 마쳤다.




모노레일 문 너머로 두분이 멀어져 가는 것을 보면서 나는 손을 흔들었다. 간만에 얼굴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는 다행스러움, 드디어 효도 여행이 끝나고 혼자서 편하게 여행 할 수 있다는 후련함. 더이상 얼굴이 보이지 않아 창에서 눈을 돌릴때, 마음 속에 그것이 남았었다.








모노레일 문 너머로 멀어져 가던 부모님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내 인생 첫 효도 여행이 끝나고 나서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 뒤로 다시 효도 여행을 가기도 했고, 수도 없이 그때의 여행을 떠올리기도 했다. 그 때 이후로 시간이 갈 때마다 느껴지는 것은, 여행이란 새로운 경험의 연속이라는 점이다. 익숙하지 않은 경험하는 모든 과정이 여행의 순간이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이란 모든 것에 빠르게 익숙해지기에, 여행의 순간도 적응하여 익숙해진다. 새로운 음식과 언어, 생활양식과 같은 문화들. 처음의 새로움은 사람에게 신선한 느낌을 주겠지만, 그 신선한 느낌이 이어지다 보면 결국 그것에 적응하여 전혀 새롭게 느껴지지 않게 된다. 분명히 새로운 경험의 연속이지만, 모든 것이 새로운 경험의 연속이기에 그다지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여행의 새로운 경험은, 비록 자신이 익숙해져서 그 새로움을 모르고 있다 하더라도 쉽게 할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이다. 여행을 마치고 자신이 있던 일상으로 돌아갈 때, 특별하지 않게 느껴졌던 새로운 경험이 사실은 매우 특별한 것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쩌면 진짜 특별하지 않는 것이란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야만 하는 일상일지도 모른다.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날 때마다 매번 강렬하게 느끼는 한 가지 사실이 있다. 여행을 하고 있는 순간에는 문득 잊게 되는 그 매 순간의 특별함이,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언제 다시 돌아가고 언제 다시 느낄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여행을 가지 못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났고, 언젠가 나는 또다시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때가 된다면, 내가 첫 효도여행을 지금까지 떠올릴 때마다 느꼈던 마지막 교훈을 되새기고 싶다.




'교훈 13, 언제 다시 올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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