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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준 Jun 11. 2022

가족은 회사가 아니라 집에 있습니다

'가족같은' '분위기의' '회사'

나는 일을 하면서 사적인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다는 말을 듣는다. 전화통화를 할 때도 감정이 별로 없어서 기계같다고 하고, 술 먹으면 어떻게든 간에 조절해서 안 취하고, 업무 하면서도 잡담도 거의 안하고, 일을 할 때도 일하다가 화장실만 갈 뿐 자리도 안 비우고 산책도 안 하고. 그러다 보니, 지난번에는 일 하다가 답답하면 밖에도 다녀오고 일 하면서 잡담도 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가볍게 할 수 있는 이야기인데, 아주 진지하게 하는 것 같은 이야기에 그 부분을 진심으로 걱정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마치 내가 너무 일만 하는 것 같아서 걱정하고 있다는 듯한 느낌에, 하하 무슨말씀이신지 그렇지 않다고 말할수는 없었다. 사실 일 하면서 주위를 돌아다니지 않는 것은 사무실에서 1층까지 내려가려면 너무 귀찮고, 뭐 구경하려고 편의점에 들어갔다가는 뭔가 사 먹고 싶을 것이고, 일 하면서 잠깐 숨 돌리고 그러기에는 굳이 자리를 비우지 않고 인터넷을 조금 검색해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담배도 피우지 않는다. 보통 담배 피우는 사람들은 다 같이 몰려 가서 담배를 피우며 잡담을 나눈다.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으니 그 잡담에 낄 기회가 별로 없으니, 내가 잡담을 하지 않는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일을 오래 하고자 한다면 너무 일만 하지 말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중요하다는 그 말을 듣다 보니 떠올린 것이 있었다. 일하면서 종종 듣는 말이었다. 일 하면서 같이 보는 사람들은 가족보다도 더 오래 보는 사람들이니 가족보다 더 친하게 지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 회사의 조직 문화가 가족간의 관계 같은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처럼 들렸다.




나는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잘 알고 있고 이해한다.  그리고 이해할 뿐 공감하지 않는다. 어쩌면 내가 다른 사람을 혹은 무언가를 쉽게 믿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얼마나 잘 믿는가 와는 별개의 문제로, 가족같은 분위기의 회사는 내 성향과는 정말 맞지 않는 것 같다.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오랜 인간관계의 바탕이 될 친밀감보다는, 좋은게 좋은거지 라고 넘기는 애매모호한 불편함이 먼저 떠오른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가족같은 분위기의 회사다.




가족같은 분위기의 회사 라는 표현은, 나에게 묘한 이질감을 준다. 2018 09, 서울 강남역




가족은 한국의 전통적인 회사를 대변하는 가치 중에 하나이다. 보통 한국에서 가족같은 분위기 라고 하면 좋은 것을 의미하지 나쁜 것을 말하지 않는다. 우리의 인간관계는 이토록 단단하게 결속되어 있다고 말하며 가족같은 분위기는 그 회사의 조직원들에게 좋은 것임을 강조한다. 요즘 들어서 시대가 바뀌면서 가족같은 분위기는 고전적인 칭찬보다는 비아냥에 가까워졌지만, 그래도 아직 많은 회사들이 가족같은 분위기를 긍정적인 요소로 생각한다.




그 문화는 아마 폭발적인 경제성장을 이뤘던 그 때부터 온 것 같다. 가족같은 회사가 모든 것을 해결하며 서울에 집도 살 수 있게 해 주고 사회에서 멀쩡한 1인분으로 대접받을 수 있게 해 주던 때가 있었고, 모든 가족이 한 집 안에 살며 큰 결속력을 가지던 때가 있었다. 자신의 가족을 책임져 주는 회사는 또 하나의 가족이었고, 관계의 결속력을 의미하는 단어는 피로 이어진 가족이라는 것이었다.




지금은 어떠한가? 산술적으로 대부분의 회사가 책임지는 것은 미래가 아니라 다음  생활비다. 가족같이 모든 것을 책임질  있을  같았던 회사의 가능성은 점점 줄어들고 어떤 것도 책임지고 싶어하지 않게 되었다. 가족 간에 긴밀하게 남아있던 인간관계는 갈수록 파편화되면서,  책임을 표현하던 가족이라는 단어가 가진 자체의 의미도 갈수록 가벼워지고 있다.




사실 가족같은 회사 라는 표현을 회의적으로 보는 나에게는, 조직 관리자 측면에서 가족같은 분위기를 강조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종종 생각해 보곤 한다. 두말할 것도 없이 아주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음이다. 조직 구성원이 그 조직에 더이상 매력을 느끼지 않고 굳이 거기에 있을 필요가 없다고 느낄 때, 구성원을 붙잡아 둘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결국 그 조직에 있는 구성원들 간의 인간관계이다. 가족같은 인간관계. 비록 조직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가족같은 구성원들을 생각해서 버틸 수 있게 하는 인간관계.




가족 같은 분위기를 조성하고 강조하는 이유는 어쩌면 그것을 위한 것이 아닐까 싶다. 가족 같은 사이니까 다들 힘들어도 참고 일하고, 불만 있어도 그만둘 생각 안하게 하는 것. 최소한의 투자를 통해 최대한의 효율을 낼 수 있는 인력의 톱니바퀴로 최장 기간 기능하게 할 수 있는 윤활유 같은 역할이 가족 같은 분위기인 것이다. 언제까지? 톱니바퀴의 톱니가 닳아 없어질 때까지.




가족과 같은 인간관계를 강조하는 것보다는, 서로 일면식도 감정도 없는 사이에서 생산성을 낼 수 있는 상황이 되어야만 조직의 효율이 올라간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회사에서 가족같은 분위기를 강조하는 이유는 외부에 보이는 것과 내부의 목적이 다른 것 아닌가 싶다. 밖에 보여줄 때는 우리가 이렇게 사이가 좋아요 겠지만, 내부의 목적으로는 가족같은 분위기로 싫어도 참고 지내자 같은 것 아닐까.




내가 생각하는, 회사가 말하는 가족의 의미란 그것이다.




가족도 회사도 가족같은 회사도, 이전과는 다르다. 2022 04, 서울 여의도




사실 이런 것들과는 별개로, 일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기억에 남는 경험이 있다. 회식 자리였는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나에게 취미로 무엇을 하냐고 물었다. 나는 독서 소모임 활동을 한다고 했고, 어떤 모임인지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을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결국 나는 어플 안에서 모임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화면을 간략하게 보여주었다. 그때 모임 회원들의 이름이 노출되었고, 한 명의 이름을 본 회사 사람 한 명이 말했다. 어 ㅇㅇ? 이 이름, 지난번에 술집 갔을때 본 그 아가씨 이름 아니에요?




한가지 확실히 말하자면 나는 그 표현에 악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저 나와 시대가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다고 생각할 뿐이다. 그 지점까지가 내가 생각할 필요가 있는 부분일 뿐 더 이상은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 다양한 가치관과 세대 차이가 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조직에서 가족이 언급될 때마다 나는 회의적으로 변한다.




그러니까 제발, 가족은 집에서 찾고, 회사에서는 돈을 찾아 줬으면.




가족은 집에 있습니다. 회사가 아니고. 2018 04, 춘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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