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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준 Jun 19. 2022

뒤로 타고 앞으로 내리며 돈을 내세요

일본 북알프스 여행기 - 도야마

때는 2018년 8월, 나는 1년에 한 번씩 꼭 일본을 챙겨 갔다. 대도시를 가는 것도 좋아했지만 내 취향은 대도시가 아닌 작은 도시들이었다. 자연 풍경을 구경할 수 있는 그런 곳들. 그러다 우연히 북알프스와 도야마를 알게 되었고, 나중에 가 보기로 하고 몇 개월 전부터 천천히 준비했다. 비행기는 저가 항공, 짐은 최대한 간단히, 숙소는 무조건 게스트하우스.




일본의 중부 지방은 높은 산들이 많은데, 이걸 본 영국인들이 일본의 알프스 같다고 해서 북알프스라고 불리게 되었다나. 화산 지형으로 만들어진 높은 산들을 구경할 수 있다는 생각에 흥미가 생겼던 나는 이번 여름에 꼭 가 보겠다! 하는 생각으로 드디어 떠나게 되었다. 지금은 너무 오래 전 옛날이라 기억도 나지 않을 것 같은, 여행 떠나는 날 아침의 그 기분. 주말에 일하던 곳에서 아침에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 마자, 챙겨둔 짐을 가지고 공항으로 향했다.  




하지만 힘들게 맞춰 둔 휴가를 처음부터 끝까지 알차게 쓰겠다는 생각에 다른 것을 고려하지 못한 것일까. 공항에 와서 출국준비를 마치고 나서야 이것저것 부족한 것이 없나 확인하다 보니, 어댑터를 안 가져왔다. 역시 급하게 여행을 떠나다 보면 한두개씩 빼먹는 것이 있는 모양이다. 집에 가면 멀쩡하게 있는 것을 하나 또 돈주고 산다는 생각에 부들거리며 부득이 하게 어댑터를 하나 또 산다. 비싸다.




비록 비싼 돈 내고 어댑터를 샀지만 비행기 창가자리에서 밖을 구경하다 보면 예상 외 지출의 고통도 서서히 잊혀져 간다. 한국을 떠나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 밖으로, 땅과 바다가 지나가더니 산투성이 땅이 모습을 드러낸다. 항상 여행을 갈 때는 비행기가 내려앉을 때의 날씨를 보면서 기대하거나 실망하거나 한다. 비행기에서 일본 땅을 보고 있을 때는 날씨가 별로 좋지 않았다. 오늘은 어쩔 수 없어도 내일은 또 모르지 하는 생각으로 창밖을 보고 있는데,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갑자기 비행기가 공중에서 빙빙 돌기 시작했다. 원심분리기 안에 있는 액체의 기분이 이런 것일까 싶다.




비행기의 구름 구경은 놓칠 수 없는 묘미이다




흐릿하게 보이는 일본의 날씨




공항에 도착하면서 비행기 밖을 보니, 다행히 공항 근처의 날씨는 나쁘지 않았다. 처음 도착하는 공항에 일본어를 하나도 못한다 해도 걱정할 것이 없다. 그저 우르르 사람들과 함께 나가면 된다. 아무리 봐도 패키지 관광객인 듯한 사람들과 우르르 몰려가서 도야마 시로 가는 버스를 탄다. 주위에서 일본어와 함께 두런두런 한국어가 들리는데, 아무래도 한국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공항에 착륙한 직후라서 더 그런 것 같다. 심지어는 내 옆에 앉은 사람도 한국인이다. 일본에서 유학하는 사람이라 한다.




그 사람과 일본 유학 이야기 같은 이런저런 것들을 이야기해 본다. 내가 관심 있게 알고 있던 북알프스 여행 루트도 한번쯤 가 볼 만한 곳이라면서 이야기 해 준다. 딱히 인상깊은 대화는 없었던 것 같아도, 짧은 시간 버스에서 나눴던 담소가 기억에 남는다. 그렇게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으면, 도야마 시에 도착한다.




아직 밤이 되려면 시간은 많이 남았지만 바로 도시 구경을 할 수는 없다. 게다가 먼저 오는 사람이 편한 자리를 차지하는 게스트하우스 특성상 최대한 빨리 숙소에 가서 짐도 풀어 놓고 편한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 도야마 역 앞에 있는 정거장에서 트램을 타고 먼저 게스트하우스로 가기로 했다. 게스트하우스가 있는 방향으로 가는 트램에 타서 가장 뒤쪽으로 가 캐리어를 세우고 기다린다. 아마 가장 뒤쪽으로 가면 편하게 내릴 수 있지 않을까 했던 것이다.




 트램이 출발하고, 퇴근 시간인지 사람들이 트램 안에 가득 찬다. 정신 없이 붐비는 와중에 어떤 할머니가 트램에 오르는데, 할로윈 복장을 하고 있다. 할로윈 기념으로 나들이를 나왔나 보다. 호박 모양 바구니에 사탕을 담고는 트램에 타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눠준다. 하지만 한국이나 일본이나 퇴근 시간의 사람들은 지친 상태고, 지친 사람들은 사탕에 별로 흥미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할머니가 주는 사탕이 아니다. 어디로 내려야 하는가? 당연히 앞으로 탔으면 뒤로 내리는 것 아닌가? 내릴 때 돈을 낸다고 들었는데, 아무리 봐도 뒤쪽에 돈을 내는 곳이 없다. 게다가 사람들이 앞으로 내리고 있다. 내가 알아본 것과 다르다는 생각에 당황하는 사이, 내려야 하는 역을 트램이 지나친다. 어쩔 수 없이 걸어가야겠다 생각하는 내 표정이 급속도로 안좋아지기 시작했는지, 할로윈 할머니가 나에게 말을 건다. 내가 일본어를 하나도 못하지만, 귀동냥으로 들은 일본어로 뜻을 이해했다. 너 방금 내려야 하는 것 아니니? 괜찮니?




동네 주민이라면 게스트하우스에 가는 외국인들이 자주 트램을 탔으니 어디서 내리는 지도 잘 알고 있어서 그렇게 물어봤을 것 같다. 다음 번에 내리지 못한다면 그땐 돌이킬 수 없다는 생각에, 괜찮아요! 라고 몇 안되는 알고 있는 일본어를 말한 뒤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며 캐리어를 끌고 사람들 사이로 나아간다. 그리고 다음 번 트램이 섰을 때, 앞쪽에 요금을 내고 내렸다. 한적한 주택가 위로 해가 져 가고 있었다.




사람 없는 도야마의 주택가로 해가 저물어 갔다




적막한 골목에 내 캐리어 바퀴 굴러가는 소리만 울렸다




지도 어플을 참고하며 게스트하우스로 천천히 걸어간다. 걸어가면서 왜 뒤로 타서 앞으로 내리는지 생각해 본다. 내릴 때 돈을 내는 것도 이상하다. 앞으로 타면서 편하게 돈을 내고 뒤쪽으로 내리는 것이 좀 더 효율적인 방식 아닐까 싶지만, 한국에서 버스를 그렇게 타서 그것에 익숙해져 있는 것 아닌가 싶다. 만약 도야마 사람이 한국에 와서 버스를 탄다면 정반대의 방식에 내가 겪고 있는 이상한 기분을 똑같이 느끼지 않았을까.




그렇게 조금씩 걷다 보니, 작은 주택을 통째로 쓰고 있는 게스트하우스가 나타난다. 직원을 바로 만나 체크인을 한다.  늦게 도착한 탓인지 아쉽게도 1 침대는 차지할  없었다. 직원을 만나자 마자 트램을 어떻게 타냐고 물어본다. 뒤로 타서 앞으로 내리며 돈을 내는 것이 맞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뭔가  알고 싶었다. 트램에 대해 좀  자세한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영어로 의사소통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영어가 부족한걸까, 아니면 직원이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걸까.   아닐까 싶다.




어쨌든 트램 타는 법을 명확하게 알았으니 괜찮다는 생각에, 고마워! 라고 말하며 생각한다. 역시 일본에 올 때는 일본어를 배워야 한다. 다음 번 일본에 올때는 가장 기초적인 관광 일본어 정도라도 배워 와서 써먹자.




 생각은 내가 일본에서 돌아올 때마다 하는 생각이고, 앞으로도 계속  생각이다. 지키지 못할 자신과의 약속이란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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