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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훈주 Dec 02. 2024

기묘한 책방의 책 처방 레시피

올리밴더의 책방에 몰래 다녀온 이야기

문은 항상 열려 있지 않는다.

적당한 타이밍과

적절한 용기와

그리고 문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

이 이야기는 내가 운 좋게 다녀온 어느 책방의 이야기다.




책방은 희미하게 우리 곁 어딘가에 남아 또 다른 차원의 문을 열고 있다.

나는 한 때 마치 다른 차원의 문들을 모두 여닫아 볼 요량으로 이곳저곳을 기울이고 있었다.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그때, 아직 젊은 시절 만난 한 책방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한 것이다.


책방을 방문하는 건 가끔 이세계를 건너온 듯한 느낌을 받곤 하는데

그때 갔던 책방이 며칠이 지나지 않아 사라지기 일쑤기 때문이다.

차원의 문은 쉽게 열리고 또 그만큼 빠르게 사라지는 편이다.

이렇게 하나둘씩 사라지다 보면 다른 세계로 통하는 문이 조만간 모두 닫히게 되는 건 아닐까 

고민스럽기도 했다.


책방이 또 다른 차원의 문을 여는 것이라면 나는 그 문을 지켜야겠네.



한 책방 주인에게 내 고민을 털어놓으니 재밌는 이야기라며 웃었다.

자신은 오래도록 이 문을 지킬 테니 걱정 말라고 했다.


"너는 헌책방의 신에 대해 들어본 적 있니?"

"네?"


그 책방 주인은 헌책방의 신에 대해 말을 했다.

책을 필요로 한 자에게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하는, 말하자면 책방계의 삼신할매 같은 신이 있다는 것이다.


"그 신이 가끔은 스스로 책방 문을 열기도 한다고."

"사장님은 그 책방을 방문하게 되면 뭘 가지고 오고 싶어요?"

"나야 그 헌책방의 신이 가지고 있는 책 명부. 각자 어떤 책을 필요로 하는지 적혀 있는 명부가 있다면 말이지."


그 이야기를 끝으로 한동안 헌책방의 신에 대한 이야기는 잊고 지냈다.

그러다 우연히 한 서점을 만났다. 꽤 삶에 지쳤던 순간이었고, 모든 것에 싫증이 나던 순간이었다.





대부분이 그렇지만 

내가 정말 바라던 순간은 항상 그 순간이 지나고 나서야 깨닫곤 한다.


책방 이름은 '올리밴더스'. <해리포터>에 나오는 마법 지팡이 가게 이름과 같았다.

현존하는 최고의 마법 지팡이 제작자. 게릭 올리밴더가 운영한다는 그 '올리밴더스'.

지팡이는 마법사를 선택한다. 

그의 가게에서 지팡이를 선택하는 과정은 흥미로운데  

지팡이를 추천하고 다시 바꾸고, 또다시 바꾸면서 몇 초가 지나지 않아 가게에 지팡이 박스가 수북이 쌓인다.

마법사가 지팡이를 선택하는 것이 아닌 지팡이가 마법사를 선택한다는 것.


내가 방문한 책방도 그와 같았다.

어쩌면 그곳이 바로 헌책방의 신이 그의 변덕으로 만들고 사라진 책방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가 잠시 카운터에 자리를 비운 사이 바닥에 나뒹구는 이상한 종이 뭉치들을 나는 홀린 듯 가방에 넣어 왔으니

그것이 바로 책방 주인이 말했던 명부였음을 알게 된 건 나중 일이다.


정확히는 책 처방전. 올리밴더 스는 책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오직 단 한 권의 책을 팔았는데

모두 손님에게 가장 필요한 책을 건넸다. 내가 가져온 것은 그 처방전 내용이었다.

나는 그때 가져온 것들을 한동안 책장 밑에 넣어두었다가 이제 하나씩 꺼내보려 한다.

그 기묘했던 경험이 누군가에겐 위로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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