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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구 Oct 05. 2022

평범한 이들에게 건네는 낯선 위로

<거북이는 의외로 빠르게 헤엄친다> - 3.5


일본 영화는 어쩐지 웹소설을 닮았다 생각하는데 이게 일본 영화를 좋아하기도  싫어하기도 하는 이유입니다. 뭐랄까 매번 그럴싸한 변명을 늘어놓는 감독을 보면서 '. 그래. 충분히 그럴  있겠군' 하면서 설득 당하는  자신이 그리 싫지만은 않은 느낌이랄까.


아무래도 웹소설의 장점이라면 '그래. 그 정도는 넘어가 줄 수 있지'라는 미덕입니다. 왕과 궁녀가 사랑에 빠지던, 백작이 평민과 사랑에 빠지던 또는 남자가 남자와 사랑에 빠져도 '그래. 그 정도는 넘어가 줄 수 있지'라는 미덕을 유지해야 합니다. 몇 가지 설정이 낯설다 할지라도 중요한 건 이 이야기가 나를 어디로 데려다 줄 지 궁금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 영화 또한 웹소설의 미덕을 갖추고 본다면 꽤 즐거운 위로를 받게 됩니다.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영화 전반에 깔린 일본 영화 특유의 과장된 모습만 ‘음. 그래. 그럴 수 있지’하고 넘어가면 꽤 괜찮은 영화입니다. 오히려 재밌기까지 합니다. 늦은 저녁에 혼술을 곁들여 보기 좋은 영화입니다.


남편이 있다곤 하지만 남편 얼굴은 영화 내내 보이지 않습니다. 그나마 그와 전화하는 장면을 통해 '아. 남편이 있다는 것이 거짓말은 아니였구나'하는 정도입니다. 해외 출장에 가 있는 그는 그저 전화로 자신이 키우던 거북이 밥은 잘 줬는지를 물어볼 뿐입니다. 한번의 사랑은 지나고 그저 전화 통화로 서로의 안부보단 거북이 안부를 이야기하는 사이. 그 정도로 여 주인공 스즈메는 평범합니다.


그녀의 평범함을 더욱 돋보이게 해주는 것은 그녀의 고등학교 동창, 아오이 유우 입니다. 매사에 돋보이는 그녀는 언젠가 프랑스 파리에서 연에를 하고 싶다는 꿈을 가진 친구입니다.


평범함이란  언제나 상대적인 것이라, 나의 평범함이 누군가에겐 특별함이  수도 진부함이  수도 있습니다. 저는 오늘 오랜만에 아침에 일어나 아침밥을 챙겨 먹었는데, 그건 오늘 회사 대표님이 오전 출장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아침밥과 출장의 상관관계가 무엇인지 묻는다면 '당당한 지각'이라   있습니다. 아침밥을 먹기 위해  일찍 일어나며 잠을 포기할  없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아침밥 먹는  뭐가 그리 특별한 일이냐   있지만 제겐 아침밥을 먹는다는  이처럼 평범한 일이 아닙니다.


스즈메는 계단을 오르다 넘어지고 계단 바닥에 바짝 엎드린 순간 작은 스티커로 '스파이 모집' 공고를 보게 됩니다. 평범함의 끝을 달리는 그녀는 '이정도 평범함이라면 한번 쯤은 새로운 삶을 살고 싶다'라는 생각으로 스파이 모집하는 곳에 가지만 그곳에서 받은 지령은 '평범하게 살기'입니다. 생각해보면 맞는 말입니다. 총을 쏘고, 폭탄을 터트리고, 수많은 벤츠 차량을 부수며 도로를 달리는 스파이는 세상에 몇 명이나 있을까요? 사실 누구보다 조용하게 살아야 하는 게 스파이니 그럴싸한 이야기 입니다.


이후 영화는 평범하게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설득하는 과정입니다. 평범한 주부의 장보기, 맛있지도 않고 맛없지도 않은 평범한 라면집 장사하기, 평범하게 가게에서 주문하기, 평범하게, 평범하게, 또 평범하게. 관우가 잘때 수염을 옷 속에 넣고 자는지 빼고 자는지 따지려다 잠을 못 자서 싸움에서 졌다는 이야기가 괜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평범함이 누군가에겐 배우려해도 배울 수 없는 이야기라는 것을 마구 설득하려하는 이 영화는 마치 자기계발 강연회에 가서 '여러분은 모두 특별해요!'라는 말을 한 시간 내내 듣고 오는 느낌입니다.





영화 후반부에 가면 대부분 웹소설을 읽으면서 느끼는 감정을 낯선 영화에서 느끼게 됩니다. '과연 이 많은 떡밥을 어떻게 회수하시려고!' 사실 작가의 기량은 떡밥 회수라고 생각합니다. 낚시 잘하는 사람도 얼마나 떡밥을 멀리 던지냐가 아니라 어떻게 떡밥을 회수하고 물고기를 낚는지에 있는 것과 같습니다. 수많은 이야기는 누구나 뿌릴 수 있지만 참된 작가는 그 이야기를 어떻게든 다시 주섬주섬 주머니에 넣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의 떡밥 회수는 조금 아쉽긴 합니다. 뭐랄까. 극적인 모습이라고도 할 순 있지만 마치 갑자기 우주선이 내려와 '너의 모든 고민을 가지고 우주로 떠나줄게'라는 느낌입니다.


영화에서 라면집을 운영하는 스파이는 임무 마지막 날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가장 맛있는 라면을 만들어 냅니다. 지금까지 평범함을 유지하기 위해 만들 수 없었던, 라면이 너무 맛있어서 많은 사람이 놀러오면 안되니 참았던, 궁극의 레시피로 라면을 끓입니다. 다른 것보단 라면집 사장님이 <고독한 미식가>에 나오는 마츠시게 유타카 입니다. 괜히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라면 한 봉지를 끓였습니다.



일본 영화는 보통 혼밥을 먹는 저녁에 보곤 합니다. 일본 영화는 '소품 영화'입니다. 네. 그냥 제가 만든 단어입니다. 영화 큰 주제도 있지만 그런 주제 다 무시하고 영화 작은 요소, 요소를 보는 재미가 있다고요. 영화를 다 보고나니 적절한 위로와 함께 스즈메를 연기한 우에노 주리의 특이한 웃음 소리가 머리를 맴돕니다.


'훼훼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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