뭣하러 그리 힘들게 만드는겨.
대체 뭐가 파스타?
가장 간편히 먹기 좋은 칼국수도 최근 4년 동안 가격이 75% 상승했다(한국소비자원 ‘참가격’ 기준. 24년 대전 칼국수 평균가 8,000원). 물가가 비싸니 가벼운 음식으로 배를 채우는 일이 많아졌다. 그러면서 생기는 의문은 파스타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2022년 ≪외식업체 식재료 구매 현황 보고서≫를 참고하면 파스타 평균 가격은 12,256원. 대체 파스타와 칼국수 차이는 뭘까? 지갑이 얇아지니 비슷한 면인데 가격 차이가 나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이 질문에 답을 찾기란 간단하지 않았다. 파스타 정의를 찾기 위해 여러 나라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각 나라별 관점 차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한국, 미국, 이탈리아어를 사용해 파스타 정의를 찾았다. 먼저 한국어로 ‘파스타와 국수의 차이’를 검색했다. 파스타와 국수 맛집 비교 글이 대부분이었다. 대부분 사람은 파스타와 국수 구별에 어려움이 없는 듯했는데 서양 면 요리를 파스타라 부르는 듯 했다. 우리나라는 제례용으로도 면을 쓸 만큼 국수 문화가 오래되었기에 친숙하지 않은 국수를 파스타로 보는 것이다. 이에 따라 파스타가 칼국수보다 가격이 높은 이유도 ‘문화적 인식 차이’ 영향이 있는 듯 했다. 외국 음식이라는 인식이 높은 가격도 수용하게 하는 것이다. 물론 그 가격엔 고급스럽게 가게 외관을 꾸민 인테리어 비용도 포함되어 있을 테지만.
그렇다면 모든 문화의 융합로인 미국은 어떨까? 영어로 파스타에 대한 정의를 찾다 ‘전국 파스타 협회(National Pasta Association)’를 발견했다. 미국 파스타 산업 전문가들이 모인 가장 오래된 무역 협회다. 이들은 5.5% 이상의 달걀 함량을 포함해야 국수로 정의하며 파스타는 듀럼밀을 통해 만드는 것으로 정의했다. 이와는 별개로 2023년, 미국 정부는 식품 정체성을 현대화하기 위한 프로젝트에 착수하며 전국 파스타 협회와 함께 파스타 정의도 새롭게 준비한다고 밝혔다. 다양한 문화가 섞이는 용광로지만 서로 정체성을 지키는 샐러드 그릇으로 불리기도 하는 만큼 미국은 식품 정의에 신경 쓰는 모습이었다.
마지막으로 이탈리아. 이곳에선 파스타에 대한 사전적 정의만 6개가 된다. 그들은 밀가루 반죽으로 만든 대부분 면을 파스타라 부르는 듯했다. 그들 입장에선 동양적 느낌의 파스타를 국수라 부를지도 모른다. 파스타 본 고장이라 자부하는 이탈리아인만큼 300개가 넘는 파스타 종류가 있다는 것을 자부하는 글도 다수 찾아볼 수 있었다. 이들은 파스타 역사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설명했는데 특히 마르코 폴로가 중국으로부터 국수를 가져와 파스타가 되었다는 이야기에 전격 부인했다. 이탈리아와 중국은 예전부터 서로 면의 발상지라 자존심 대결을 해왔다. 그렇다면 이탈리아에서 찾은 파스타의 정리를 마지막으로 파스타의 기원에 대해 한번 알아보자. 왜 인류는 만들기 쉬운 빵을 두고 수고스럽게 면을 만들기 시작했을까?
파스타는 부드러운 밀가루 또는 듀럼밀 세몰리나와 물 또는 다른 액체 물질을 섞어 만든 반죽으로 만든 면을 말한다. 이 면은 작고 규칙적인 모양으로 자르거나 끓는 물에 익힐 수 있다 (S. 서번티, F. 사반, 『파스타. 보편적인 음식의 역사와 문화』).
왜 밀은 밥을 짓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다. 도구도 변변치 않아 갈돌로 곡식을 빻던 시절에 왜 밥 대신 빵을 만들었을까. 심지어 면을 만든다는 건 더 번거롭다. 이는 KBS에서 2008년에 방영한 ≪누들로드≫ 다큐멘터리에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우선 밀은 밥을 만들기가 더 힘들다. 쌀은 비교적 껍질을 까기 쉬워 그대로 찌거나 끓여 먹을 수 있지만 밀은 그렇지 못했기에 제분 기술이 꼭 필요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밀알은 쌀알에 비해 강도도 낮아 껍질을 벗기는 기술보단 같이 부수고 밀기울을 걸러내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이 제분 기술과 유럽 사회 발전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다면 하인리히 E. 야콥의 『빵의 역사』란 책을 추천한다. 곡식을 빻고 반죽해야만 했던 환경 속에서 인류 기술의 발전과 문화에 대해 엿볼 수 있다.
파스타의 기원에 대해 많은 이탈리아 문헌은 그리스 시대를 그 시작으로 둔다. 원시적 넓적한 빵이 나오는 시기와 비슷한 연대에 면을 만들었을 거로 추정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기원전 5세기 그리스 극작가 아라스토파네스의 코미디 중 현재 라비올라와 비슷한 모습의 파스타를 묘사한 것이 있다. 라비올라는 흔히 이탈리아 만두라고도 표현하는 얇은 반죽 사이에 속을 채운 파스타다. 그 모습은 현대 라자냐 모습과 닮았는데 온도가 일정하지 않은 원시 오븐에 빵을 빠르게 굽기 위해 밀가루 반죽을 얇게 펴고 그 위에 어떤 음식을 함께 올려 조리하기까진 그리 어려운 발전은 아니었을 거다.
우리가 파스타 역사에서 의미 있게 봐야 하는 것은 바로 건면의 등장이다.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섬에선 1154년에 듀럼밀로 만든 건조 파스타를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오래된 요리책 중 하나인 『De arte coquinaria』(라틴어로 '요리의 예술')에서는 시칠리아에서 수입된 파스타를 이용한 레시피가 있다. 또한 1154년, 아랍인 학자 쓴 지리서에 시칠리아는 ‘이트리야’를 만들고 수출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 ‘이트리야’ 원형을 발견할 수 있는 단어는 중동에서 찾을 수 있다. ‘이트리야’는 많은 중세 책에서 리시타, 리슈타라고 적었는데 그 뜻은 페르시아어로 실을 뜻한다. 이에 학자들은 시칠리아가 902~1091년 이슬람의 지배를 받는 동안 아랍식 건면을 받아들였고 이 ‘이트리아’가 파스타 일종으로 보고 있다. 이는 중국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국수 화석과도 이야기가 이어진다. 국수 원조를 두고 신장 지역에서 발견된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국수 화석을 들어 중국이 면을 최초로 발명했단 주장도 있지만 식기에서 발견된 곡물 원산지를 분석한 결과 카스피해 남쪽지역, 즉 인류 최초 밀 경작지인 메소포타미아 지역 일대였다. 실제 유목민들은 먼 길을 떠날 때 면을 만들어 말린 후 가지고 다녔다고 한다. 보존 기간이 길며 조리 시간도 짧기 때문이다. 빵에서 면으로 발전한 것은 최소한의 생존 조건에서 무수한 사람들을 먹일 수 있는 적합함에 따른 필연이었다. 반죽을 말리기엔 표면적을 넓혀야 했고, 빠르게 요리하기 위해선 반죽이 얇아야 했다. 이에 코라도 바르베리스가 2004년 출판한 『파스타 백과사전』엔 파스타 출생에 대해 적절한 표현을 기술했다.
“파스타의 기원은 이탈리아어도, 그리스어도, 유대인도, 아랍어도 아니다. 그것은 풍토병으로 정의될 수 있는 단계에서 지중해 지역 전역에 널리 퍼져 있다.”
파스타를 사랑한 이탈리아. 그리고 면에 진심인 미국
아랍식 건면이 전파된 시칠리아는 파스타 원재료인 듀럼밀이 잘 자라는 곳이다. 또한 건조한 기후와 통풍이 잘되는 나폴리 지방은 파스타 건면을 제조하기 좋은 조건이었다. 이에 나폴리 지방엔 많은 파스타 공장이 생겼지만 파스타가 대중 문화로 자리잡긴까진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다. 17세기. 나폴리 지방에서 파스타에 대한 인식을 잘 보여주는 것이 ‘풀치넬라’다. 17세기 나폴리 지방 연극에서 자주 나타나는 풀치넬라는 나폴리 평민, 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람을 대표하는 캐릭터로 그 특징 중 하나는 마카로니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굶주리고 마카로니를 먹기 위해 여러 고생을 당하는 연극 내용이 주를 이뤘다. 한때는 손이 많이 가 귀족층이 고기를 쌓아 먹는 라쟈냐 형식으로 유행했던 파스타는 건면 대량생산과 함께 나폴리 가난한 지방에서 길거리 행인들이 급히 먹는 음식이 되었다. 포크를 전 유럽에서 사용한 것은 18세기로 보고 있으니 당시 유럽에서 가난했던 동네 나폴리 길거리에서 손으로 파스타 먹는 모습이 그리 멋져 보이진 않았을 거다. 그리고 17세기 중반, 나폴리 지방에 드디어 토마토가 도착한다. 그 후엔 피자 역사와 같이 토마토 소스를 파스타에 사용하기 시작했고 이탈리아 이민자가 미국으로 넘어가게 되며 파스타에 대한 인식은 변하기 시작했다.
NPA(National Pasta Association) 홈페이지에 따르면 미국은 매년 44억 파운드의 파스타를 생산하여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파스타 생산국이다(물론 1위는 이탈리아다). 평균 가격은 1파운드 당 1.45달러로 미국에서 가장 저렴한 식사 메뉴 중 하나이며, 매년 59억 5천만 파운드의 파스타를 소비한다고 한다. 파스타가 미국에 진출한 건 이주민에 의해서다. 당연히 이주민의 음식이니 그 평가는 좋지 못했는데 실제 이탈리아에서도 19세기 말부터 1920년대까지 미래주의 사상자들은 파스타 먹는 문화를 없애려 하기도 했다. 미국에서도 파스타가 몸에 좋지 않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는데 그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NPA 홈페이지에선 왜 파스타가 몸에 좋은지 꽤 열심히 기술한 기록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그럼에도 파스타가 미국에서 사랑받게 된 큰 이유는 간편성과 다양성에서 찾을 수 있다. 미트볼 스파게티, 치즈오픈스파게티는 미국에서 발전한 파스타 문화다. 건면을 삶고 토마토 소스 캔을 부어 만드는 이 요리들은 요리를 손쉽게 끝낼 수 있게 했다. 실제 코로나 기간동안 미국에선 면 소비가 늘었는데 재택근무를 해야 하는 봉쇄 기간 번거로움 없는 요리를 선호했고 면에 두부, 채소 등을 넣으면 훌륭한 건강식이 되기 때문이다.
다시 돌아온 생면 파스타
우리가 이해하는 파스타 대부분은 건면이었다. 그러나 최근 고급화 전략을 꽤하는 파스타집에선 심심치 않게 생면 파스타 요리를 선보인다. 생면 파스타는 이탈리아인에겐 추억과 고향의 맛이다. 우리는 파스타 한 접시 비우고 “그래도 우리 엄마가 만들어 준 파스타가 더 맛있어”라고 할만한 추억도 없는데 갑자기 생면 파스타집이 많아지는 이유는 뭘까?
생면 파스타가 생기는 이유는 고급화와 차별화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조리 시간 단축 영향이 크지 않을까 싶다. 주방에서 쏟아지는 주문을 처리하기엔 건면을 8분 동안 삶는 것은 빠듯한 일이다. 대부분 4~5분 삶아 둔 파스타 면을 올리브유를 바른 후 냉동 보관하여 주문과 동시에 소스에 면을 넣고 푸는 방식으로 조리한다. 하지만 생면은 3분만 익혀도 충분하기에 가게 회전율에서 유리하단 평가다.
대전에 가장 유명한 생면 파스타 집 중 하나인 ‘카라멜’을 방문했다. 본래 선화동에 위치했던 카라멜은 24년 2월 성심당 근처로 이전했다. 19년 6월부터 운영한 생면 파스타집으로 최근 리뉴얼하면서 잔 와인 판매도 함께한다. 모든 면은 당일 아침에 만들며 ‘파스타바’라고 공간을 정의한 만큼 모든 요리 퍼포먼스는 테이블바에서 감상 가능하다. 평균 조리 시간은 8분 내외. 면을 삶고 소스에 여러 재료를 넣어 익히는 쉐프와 만테카레 및 플레이팅을 담당하는 쉐프로 나눠 일한다. 뇨끼도 유명하지만 파스타 면 차이와 토마토소스 맛을 느끼기 위해 까르보나라 파스타와 라구 파스타를 시켰다. 이탈리아 까르보나라 파스타는 우유와 생크림이 아닌 계란 노른자와 페코리노 로마노 치즈로 소스를 만든다. 라구 소스는 이탈리아풍 소고기 비빔장이다. 집집마다 라구 소스 만드는 방법은 조금씩 다르다. 그래도 보편적인 방법은 고기 수분을 모두 날릴 정도로 퍽퍽하게 볶아 폰드(fond)를 만들고 그 위에 토마토소스와 여러 향신료를 넣어 소스를 끓인다. 이곳은 생면 파스타 장점을 부각하기 위해 소스는 강하지 않고 면 식감을 돋보일 수 있을 정도의 감칠맛을 준다.
미식으로 초대
생면 파스타라고 더 고급진 것도 아니고 건면 파스타라고 쉬운 것도 아니다. 미식 취향에 따라 좋은 것을 선택하면 된다. 생면 파스타집이라고 무작정 비싼 가격을 지불할 필요는 없다. 다만 다양한 미식 체험을 위해서 한 번 정도 방문해 인류의 장거리 이동을 가능하게 했던 강력한 식재료에서 이탈리아 할머니 주방에서 먹을 법한 생면 파스타까지 온 역사를 떠올려보면 이 한 그릇을 온전히 즐기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