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람은 빵에 치즈를 녹여 먹을 생각을 했나.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옛날 빵은 지금 빵과 같지 않다. 하얀 빵을 먹을 수 있는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밀가루를 뜻하는 flour는 불어 fleur에서 빌려 온 단어다. '가장 선별된 것’이란 뜻으로 대부분 역사 속에서 밀가루는 하얗기보단 밀기울이 섞인 탁한 색이었다. 이처럼 같은 단어도 시대에 따라 그 모습과 개념이 다르니 때로는 상상이 필요하다. 특히 오래된 유산을 바라볼 때 그렇다. 그렇기에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피자에 대한 이야기는 꽤 흥미롭다.
피자 역사에 대해 가장 잘 정리한 책은 아마 캐럴 헬스토스키의 『Pizza : A Global History』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선 『피자의 지구사』로 번역했다. 이 책은 피자 시작을 나폴리로 본다. 책에선 피자를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피자는 가난과 필요에 의해 태어난 단순한 이탈리아 음식인 동시에 미국식으로 풍요로움과 부유함을 찬양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피자. 접시에 두고 먹어야 하나 손으로 들고 먹어야 하나
유럽에서 기원한 음식은 단어 어원을 따라가면 과거 음식 모습을 추측할 수 있다. 단어가 불어인지, 그리스어인지 또는 페르시아어인지 따져보는 것이다. 그것으로 태어난 시기를 짐작할 수 있다. 피자에 대해선 옥스퍼드 대학교 중세 및 현대 언어 명예 교수이자 『우리가 이탈리아 음식과 사랑에 빠진 방법』의 저자인 디에고 잔키니는 “피자 단어의 개념은 매우 오래되었다”고 주장한다.
고대 그리스에는 ‘피타’라는 것이 있었다. 납작한 빵을 뜻하는 단어로 지금도 그리스에선 ‘피타 기로스’, ‘티로피타 알로니스’ 등 납작한 빵을 이용한 음식이 존재한다. 특히 피타 기로스는 우리가 아는 타코와 비슷한 형태로 납작한 빵에 고기를 올려 싸 먹는 형태로 파는 길거리 음식이다. 그 위에 치즈만 올리면 피자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사실 이집트에서 오븐을 만들고 이스트를 적극 활용하기 전까진 빵의 일반적 모습은 납작했다. 빵은 잿불이나 돌판 위에 반죽을 펴서 익히는 방식으로 만들었다. 원시적 형태의 빵 중 대표적인 것이 인도 커리에 먹는 난이다. 페르시아어로 난은 빵 자체를 뜻한다.
이러한 납작한 빵은 음식을 담는 접시로 사용되기도 했다. ‘트렌쳐’ 또는 ‘트랑슈와르’라는 단어가 있다. 프랑스어가 어원인 이 단어는 중세 요리에 사용되는 식기다. 이 식기를 오래되고 딱딱한 빵이 대체하기도 했는데 이 위에 음식을 올려 식사하고 마지막엔 접시로 사용한 빵까지 먹기도 했다. 이처럼 빵을 접시로 사용한 문화는 꽤 오랜 시간 지속되어 온 것으로 보인다. 로마 시인이자 역사상 위대한 작가 중 한 명인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드』에선 배고파서 테이블까지 먹을 것 같다는 표현이 나온다. 여기서 말하는 테이블은 바로 음식을 얹어 놓은 빵을 뜻한다. 이러한 접시와 같은 빵 위에 음식을 올린 형태에서 빵과 음식을 함께 먹게 되는 발전은 그리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이 개념대로 생각한다면 접시 위에 피자를 올려놓는 건 접시와 접시를 겹치는 모습일지도 모른다. 마치 ‘역전앞’ 처럼 말이다.
"When you have sailed, son, to an unknown shore And, short of food, are driven to eat your tables, Then, weary though you are, hope you are home.“
피자가 피자라고 불리게 될 때
빵 위에 무엇을 올려야 피자라고 부를 수 있을까? 치즈와 토마토가 들어있으면 피자인 걸까? 그렇다면 나폴리 지방에서 먹었던 초기 피자 모습은 피자라고 불러야 할지 다시 한번 고민해 봐야 할지도 모른다. 피자라는 단어는 고대 그리스를 지나 997년, 나폴리 북쪽 가에타에 있는 집 임대 서류에서 발견할 수 있다. 임대 시 주인에게 돼지고기와 피자를 지불하겠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때도 명칭은 피자이지만 납작한 빵 형태였을 것이다. 그 이후에도 나폴리 지방에선 피자가 등장하는데 그 모습이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나폴리 피자에 대해 피노키오 작가 카를로 콜로디는 이렇게 적었다.
“굽다가 태운 크러스트의 시커먼 색, 마늘과 앤초비의 희끄무레한 광택, 기름에 볶은 허브의 초록빛 도는 누르스름함, 여기저기 뿌려진 토마토 조각의 붉은 빛이 어우러진 피자는 노점상의 더러움에 걸맞은 오물 덩어리처럼 보인다.”
당시 피자 한 조각은 1페니 정도로 싸게 팔았다. 피자 토핑은 쉽게 구할 수 있고 값싼 재료들이었다. 우리가 흔히 피자라 부르는 모습이 되기까진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다. 바로 남미에서 토마토가 유럽으로 들어오는 시점까지 말이다.
토마토 소스에 관한 최초의 요리책은 1692년에 등장한다. 안토니오 라티니가 쓴 요리책으로 그는 나폴리 왕국 총독의 요리사였다. 이것을 근거로 유럽에서 가장 먼저 토마토 소스를 만들고 토마토를 요리에 사용한 곳을 나폴리로 본다. 당시 유럽에선 토마토를 독초로 여기고 있었기에 관상용으론 키워도 먹진 않았다. 그러나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동네였던 나폴리는 온난한 지중해 기후와 먹거리가 부족하다는 현실이 맞아 토마토를 요리에 활용해 먹었다. 값싼 식재료를 올려 먹는 피자에 모두가 꺼리던, 토마토를 올리게 된 것은 나폴리 사람에겐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정통나폴리피자협회는 토마토와 납작한 빵이 결합한 마리나라 피자가 탄생한 시점을 1734년으로 본다. 그리고 빈민들의 음식이 대중들에게 사랑받기 시작한 시점은 1889년으로 정한다. 마르게리타 피자 등장이다. 분열된 이탈리아를 통일한 움베르토 1세와 여왕 마르게리타가 처음 나폴리를 방문한 해다. 이들은 나폴리 특색 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 했고 이때 선보인 음식이 이탈리아 국기 색과 같은 바질, 모차렐라 치즈, 토마토 소스가 들어간 피자를 선보였다고 한다. 이 피자는 다행히 여왕의 마음에 들었고 그의 이름을 따 마르게리타 피자가 대중에 선보이게 되었다. 그 역사를 함께한 피자집은 아직도 나폴리에서 운영 중이다. 1738년에 문을 연 ‘포르트알바’, 1780년에 문을 연 ‘피체리아 브란디’가 그렇다. 200년이 넘는 역사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만을 봐도 나폴리에서 그리고 이탈리아에서 피자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엿볼 수 있다.
피자 위에 파인애플을 넣는다고? 그게 피자야?
우리가 피자를 대중적으로 먹게 된 가장 큰 계기는 피자헛 덕분이다. 미국 프랜차이즈 회사로 몇십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피자 브랜드 부동의 1위였다. 1985년 이태원동에 1호점을 개설했고 피자 전문점이 잘 없던 시절엔 생일 때나 가는 고급 음식이었다. 우리가 피자에 기대하는 대부분 기호는 피자헛에서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불고기 피자는 92년 4월, 치즈 크러스트는 96년 6월, 리치골드는 2003년 5월에 선보였다. 이처럼 우리가 흔히 보는 피자는 미국 스타일에서 변주되어 왔다 볼 수 있을 것이다.
피자의 가장 큰 장점이라 하면 단순함이다. 이는 피자가 지역마다 각자 특색에 맞게 변화했다.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시작한 피자가 전 세계로 퍼지게 된 것은 이탈리아 사람들이 미국으로 이주하면서다. 1900년대 초반, 당시 각 유럽 이주민이 미국으로 몰려들어 미국은 세계 음식을 대중에게 선보이는 커다란 팝업 스토어와 같았다. 이탈리아 이주민은 남부 출신이 많았는데 이는 이탈리아 통일 이후 북부와 남부의 경제 소득 차이가 심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탈리아계 미국인 84%가 이탈리아 남부 출신이다. 당시 이탈리아인들도 미국에선 이방인 취급을 받았는데 이러한 배경에서 영화 <대부>와 같은 모습이 나타나게 된다. 미국 사회를 믿기보단 같은 가족 커뮤니티를 신뢰했다. 마피아 영화에서 피자집이 단골로 등장하는 이유다. 당시 피자는 이탈리아 이주민을 연대하는 정도로 소비되었으나 곧 2차 세계 대전 이후 이탈리아에 주둔했던 미군이 피자에 대한 입소문을 냈고 자동차와 오토바이 보급이 이뤄지며 미국에선 피자 배달이 시작됐다. 개인적으로 여기서 미국과 이탈리아 피자의 차이가 생겨났다고 생각한다. 미국은 큰 한 판 피자를 조각 내 나눠 먹지만 이탈리아에선 1인 1피자다. 개인 접시에 음식을 담아 먹는 개념의 이탈리아 피자가 큰 공동체 속 개인 문화를 존중하는 미국 문화권에 맞춰 발전한 것은 아닐까. 이탈리아 이주민이 많이 있던 뉴욕에선 나폴리 피자와 같은 얇은 도우가, 아일랜드 이주민이 많은 시카고에선 영국 파이와 비슷한 시카고 피자가 탄생한다. 특히 간소화한 토핑으로 각 본연의 맛을 살리는 나폴리 피자와 다르게 다양한 토핑을 잔뜩 넣는 시카고 피자는 이후 프랜차이즈 피자 스타일로 발전한다. 그리고 냉장고의 발명과 대중화에 따라 냉동 피자가 등장하며 누구나 손쉽게 즐길 수 있는 대중적인 음식이 된다.
이에 이탈리아 사람들은 불만이 많다. 애초에 음식은 대중화를 지나 현지화를 거치기 마련이지만 워낙 다양한 변주가 가능한 피자는 나중 빵 위에 치즈만 있으면 피자라 부르게 될지도 모른다. 어쩌다 파인애플이 들어간 피자까지 나온 것인가. (하와이안 피자란 이름과 다르게 그 출신은 캐나다. 파인애플 통조림 이름이 ‘하와이안’이었다고) 그런 짜증 때문인지 이탈리아에선 베라체 피자 나폴리타나 협회(AVPN)가 탄생했다. 이 협회는 진짜 나폴리 피자를 추구하는데 그 피자 매뉴얼은 29페이지에 달한다. 그 내용 중 살펴보자면 직경은 35cm를 초과해서는 안 되고 가장자리는 솟아 있어야 하며 부드럽고 향이 나야 한다. 손으로 으깬 껍질을 벗긴 토마토는 조각이 존재해야 하며 반죽 두께는 중앙이 0.25cm를 넘지 않고 허용 오차는 ± 10%이다. 이처럼 친절히 레시피는 다 공개되어 있으니 나폴리 피자를 먹고 싶다면 한번 레시피를 다운받아 보자. (물론 다양한 기준 중 하나는 장작 화덕을 필수로 요구한다는 것이다)
동네에서 즐기는 피자의 역사
놀랍게도 이 전통 나폴리 피자를 동네에서 만날 수 있다. 지족동에 위치한 곳이다. 전국 6개 매장이 AVPN 인증을 받았고 그 중 하나다. 다른 지역 가게를 찾고 싶다면 AVPN 공식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이름은 피자리아 다 알리다.
늦은 점심에 가게를 방문했다. 런치 세트로 마르게리타 피자와 파스타 하나를 선택해 먹을 수 있게 구성했다. 모든 피자는 주문과 동시에 오너 세프가 직접 만든다. 나폴리 피자 특징 중 하나인 화덕도 구경할 수 있다. 마르게리타 피자 만드는 법은 어렵지 않다. 반죽을 잘 펴고 그 위에 올리브유와 토마토 소스를 잘 바른다. 그리고 생 모짜렐라 치즈를 놓고 신선한 바질을 올린다. 한 입 베어 물면 신선한 토마토 소스와 올리브유가 흐른다. 그리고 쫄깃한 도우. 그 모든 것이 화덕 속 장작의 향과 함께 목 넘어로 사라진다. 가게는 오직 한 자리에서 11년을 지켰다. 497번째로 AVPN 인증을 받았다는 인증서도 가게 한 가운데에 놓였다. 200년을 넘게 지켜온, 현재는 무형유산으로 자리한 나폴리 피자를 이처럼 쉽게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또 하나의 기쁨이다. 그리고 29페이지에 달하는 피자 매뉴얼을 보고 가면 어느부분에서 맛의 포인트를 느껴야 하는지 찾아가며 먹을 수 있으니 그 또한 즐거움이 된다.
전통적 피자를 즐겼다면 가장 피자의 근본 정신을 즐길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지하상가 피자가게다. 다양한 사람이 북적이는 지하상가 내 조각 피자를 파는 곳이 두 곳 있다. 우숩게도 둘 다 서로 붙어 경쟁하듯 같은 메뉴를 판매 중이다. 피자 한 조각은 2,000원이다. 피자 한 조각은 종이컵에 구겨 넣어 준다. 전형적인 미국 피자로 두꺼운 도우에 다양한 토핑을 올렸다. 양파, 햄, 옥수수, 고기다. 과거 나폴리에서 값싸게 배 채우기 위해 한 조각씩 팔았다던 시절처럼, 간편하고 단순한 피자의 정신이 먼 동양 어느 도시 지하길 속에도 스며들어 있단걸 이탈리아 사람들이 알게 된다면 이런 미국 피자쯤이야 웃으며 넘어가주지 않을까.
본 글은 대전문화예술잡지 <월간토마토>에도 동시에 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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