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만큼 찾아오는 것들이 있다. 계절이 그렇다. 벚꽃이 그렇고, 첫눈이 그렇다. 또다시 내리는 눈을 보며 나이만큼 얼마나 더 이것들을 볼 수 있나 가늠하곤 한다. 계절에 있는 것을 모두 즐겨야 마음이 풀리는 이유를 조금이나마 설명하자면 그렇다.
붕어빵은 눈꽃처럼 산다. 어느 순간 생겼다가 사라진다. 그럴 때면 괜히 타코야키가 밉다. 겨울철 음식 같았던 것이 작은 가게를 차린 걸 바라볼 때면 너마저 계절의 기다림을 잊어버리고 영존의 삶을 꿈꾸는구나 싶다. 비슷한 밀가루 음식인데 그 둘의 운명 갈림길을 무엇이었는지 궁금했다. 겨울에 대한 변명을 듣고 싶다. 요즘 길거리에 붕어빵집이 없어도 너무 없다.
붕어빵과 타코야키는 어디서 왔나
마치 겨울 길거리 간식 한일전 같지만, 붕어빵도 기원은 일본이다. 도미빵, 타이야키가 그것이다. 도미빵은 이마가와야키, 오방떡이라도 불리는 팥빵에서 발전했다. 또 팥빵은 1896년에 지금도 유명한 기무라야에서 처음 만들었다. 일본에 빵이 처음 들어온 시기는 1543년, 당시 보관이 용이한 건빵과 같은 빵으로 해안 도시에서나 볼 수 있던 것을 일본 사람 기호에 맞춰 만든 것이 팥빵이라고 한다. 붕어빵의 기원이 빵과 같은 간식이었다면 타코야키 기원은 식사에 가깝다. 타코야키 기원은 아카시야키로 아카시 동네에서 먹던 음식이다. 밀가루와 밀 전분을 섞고 계란 반죽을 만들어 둥글게 굽는데 전분 덕에 폭식한 식감을 자랑한다. 보통 국물에 찍어 먹는다. 지금도 아카시에 가면 식사 대용으로 아카시야키를 먹는 곳이 많다고 한다. 여기에 노점상 엔도 토메키치가 문어를 넣고 만들어 판 것이 지금의 타코야키다. 아무래도 노점상이였고 바닷가 근처였기에 밀전분이나 계란은 빼고 좀 더 단단한 형태를 만든 것은 아닐까? 일본 도미빵과 타코야키가 탄생한 시점은 1900년도 초다.
타코야키를 팔아 건물을 세울 수 있을까
어은동 타코야키집을 찾았다. 가게 이름이 정말 타코야키집이다. 타코야키를 팔아 건물을 세웠단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유성구에서 타코야키집을 가고 싶다 말하면 고유명사인지 대명사인지 헷갈릴 거 같단 생각에 웃음이 났다.
타코야키집 맞은편엔 ‘나나히카리’라는 이자카야가 있다. 김우진 대표가 타코야키집을 하며 5개월 전에 새롭게 문을 연 가게다. 그는 괴정동에도 타코야키집을 하나 더 만들 계획도 있다. 대전에선 매출이 가장 좋은 편이라고 한다. 정말 타코야키만 구워서 가게를 세울 수 있는 정도인 것인가?
“타코야키 점포가 늘고 있어요. 타코야키를 매장에서도 드시지만 사실 홀 매출은 부수익이예요. 배달 매출이 많죠.”
15년 전, 23살에 돈을 벌고 싶어 무작정 푸드트럭을 끌기 시작해 지금까지 다양한 음식을 팔았다. 수제 소시지, 치킨, 호떡 등등. 그런 그가 타코야키, 나아가 일식집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저는 로컬을 넘어 전국 프렌차이즈를 만들고 싶어요. 치킨과 돈가스는 오래 했지만 메이저 브랜드와 격차가 커요. 새로운 아이템을 찾다 타코야키를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잘 먹혔죠.”
김우진 대표는 현재 타코야키집 옆 건물에서 운영하는 돈가스, 치킨 배달집도 새롭게 바꿀 예정이다. 오뎅바와 수제 꼬치집으로 말이다. 일식은 같은 메뉴라도 가게마다 특색 만들기를 좋아한다. ‘특제 소스’, ‘특제 비법’ 등이 그렇다. 그가 말한 메이저 브랜드와 격차를 줄일 수 있는 아이템이 일식이었다. 특색 있고 개성 있는 식당은 멀리서도 찾아오는 법이다. 일식이라는 브랜드 이미지가 타코야키를 멀리서도 찾아오게 만들었다.
“우리집 타코야키 반죽은 직접 만들어요. 식감은 부드럽고 알은 크게 만드는 게 특징이죠. 이자카야엔 대전에선 보기 힘든 사케들을 싼 가격에 들여왔어요. 요즘 거리에 이자캬야가 많이 생기고 있죠. 이건 몰랐는데 업계 이야기론 한동안 있던 일본 불매 운동의 보복 소비로 일식집이 많이 생긴다 하더라고요.”
그가 아는 지인도 청주에서 타코야키를 판다고 했다. 청주 지인은 타코야키와 함께 호떡과 붕어빵도 배달 음식으로 만들어 볼 계획이라지만 청주 지인 사업 아이템에 그는 갸우뚱했다. 과연 붕어빵도 타코야키처럼 새로운 도약을 맞이할 수 있을까?
그 많던 붕어빵은 어디로 갔나
SNS엔 대중의 욕망이 그대로 반영된다. SNS를 보면 타코야키와 붕어빵을 소비하는 관점도 파악할 수 있다. 타코야키는 대전 맛집 지도를 정리한 표와 사진이 많지만 붕어빵은 ‘1천 원에 5개 파는 곳 있음’과 같이 가성비를 찾는 글이 많았다. 가격이 비싸도 특색 있는 타코야키는 선택받지만 붕어빵이 이슈가 되는 건 오직 가격이었다.
1천 원에 붕어빵 다섯 마리를 파는 곳은 대전역 근처였다. 한걸음에 달려간 날은 한파였다. 포장마차는 노끈으로 묶어 놓았다. 날이 너무 추운 탓이었을거라 생각하며 길을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포장마차를 하나 더 발견했지면 역사나 영업은 하지 않았다. 이후에도 길을 찾아 떠났지만 붕어빵 파는 집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붕어빵이 사라지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원자재 상승과 고급화 전략 실패다. 붕어빵은 타코야키보다 들어가는 속 재료 원가가 높다. 가문어로도 대체되어 원가를 낮출 수 있는 타코야키에 비해 팥앙금, 슈크림은 곡물과 설탕 물가 상승에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다. 원가가 높아지면 판매가격도 올라야 하지만 붕어빵은 고급화 전략엔 실패했다. 여러 붕어빵 가맹점 홈페이지에 가맹주 모집 시 핵심 단어는 ‘겨울 부업’, ‘가게 제품군 다양화’였다. 붕어빵 자체가 핵심 상품이 되지 못했다.
붕어빵과 도미빵의 가장 큰 차이는 식감이다. 붕어빵은 식으면 눅눅하지만 도미빵은 계속 바삭한 식감을 유지한다. 개인적으로 이 식감의 차이가 고급화 전략에 큰 차이를 주었다 생각한다. 일본 찻집 중엔 차와 함께 도미빵을 내놓는 곳이 종종 있다. 이와 반대로 외부에서 빠르고 쉽게 먹기 좋은 붕어빵 천천히 분위기를 즐길 수 있는 디저트가 되어 가게 식탁에 오르기엔 식감 유지가 어렵다. 길거리 음식이 고급화되기 위해선 가게 안 식탁 위로 올라와야 한다. 떡볶이처럼 말이다.
음식의 형태
여담이지만 타코야키는 왜 둥근 모양이 되었을까? 어릴땐 단순히 문어 대가리를 표현한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 음식 기원은 문어와 상관이 없단 사실을 깨달으며 다시 고민에 빠진다. 타코야키 기원을 찾다 발견한 것은 네덜란드의 포퍼체스와 덴마크의 에이블스키버란 음식이다. 각 나라 특색있는 팬케이크다. 둘다 반구형 철판에 밀가루 반죽을 넣어 동그랗게 만들어 먹는 음식이다. 특히 덴마크 에이블스키버는 만들기 위해 뾰족한 꼬챙이를 이용하는 것까지 타코야키 만드는 모습과 동일하다. 물론 그 안에 들어가는 것은 사과쨈. 과거엔 정말 사과 한 조각씩 넣었다고 한다. 좀더 과거로 올라가면 이 모든 음식의 원형은 코프타가 된다. 페르시아어로 부수다, 갈리다란 뜻을 가진 음식으로 다진 고기에 양파, 향신료를 넣고 계란과 함께 섞어 동글게 만들어 먹는다. 그 이름의 뜻처럼 여러 식자재를 섞고 뭉친 가장 본능적 형태는 둥근 모양이다. 처음엔 고기를 다졌을 것이고 이후 밀가루가 나왔을때도 비슷한 요리법을 취한 것은 아닐까? 퍼지는 밀 반죽을 굳이 반구 형태의 틀을 만들어 붓고, 꼬챙이로 살살 돌리며 익히는 고된 과정을 설명하기 위한 방법은 이것 뿐이지 않을까 싶다.
타코야키 형태는 본질적이고 붕어빵은 동그랗던 오방떡에 모양을 넣어 변형한 것이다. 본능적 형태는 어떤 환경에서도 적응할 수 있지만 관심을 끌기 위했던 것은 환경이 변하면 의미도 퇴색된다. 역시 시대가 지나도 돌고 돌아 다시 클래식으로 오는 것이 아닌가 싶다. 수많은 시간을 지나 우리에게 전해진 음식들이 그렇듯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