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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훈주 Nov 20. 2024

여유가 생기면 글을 쓴다 했지만 그건 핑계였다

여유가 없어야 글을 쓴다

올해 4월, 예술인 신청을 넣었고 느지막한 10월이 되어서야 작가 신청이 완료되었다.

적어도 나라에선 작가로 인정해 준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꼈다.

여유가 생긴 시점에 단편 소설 5개 이상은 써 보자는 다짐은 그 늦은 작가 신청 동안 지키지 못했다.

여유가 생기면 글을 쓰겠다 다짐했지만 결국 노트북을 켠 건 돈이 궁해지는 시점이었다.





글로 돈을 번 다는 건 내가 원하는 창작 글쓰기가 아닌

시장이 원하는 답이 있는 글쓰기란 사실.



4년간 잡지 에디터로 살다 홀로 작가 살이를 시작한 지도 6개월이 지나간다.

6개월은 딱 실업급여 기간. 그동안 뭐라도 써야지 했지만


      처음 한 달은 야근에 지쳐 못 잔 잠을 자겠단 핑계로,

      또 한 달은 새로운 취미를 가지겠단 핑계로,

      나머지 두 달은 팔자에 없던 웹 소설을 쓰겠다 무작정 달려들었다가 좌절감에 빠졌고,

      그나마 남은 시간 동안 정신 차리고 몇 편을 썼지만 그렇다 할 성과는 없었다.


그리고 돈이 똑 떨어질 시점이 되어서 정신이 번뜩 든다.

이대로 가다간 조만간 길바닥에 나앉게 될 것이다.


일자리 어플을 통해 작가 구하는 일자리를 찾아보았지만 마땅치 않았다.

마땅치 않은 것은 무엇보다 나였다.

내가 정의한 작가와 세상이 원하는 작가는 개념이 다르기 때문이다.


세상이 원하는 작가란 온라인 마케터에 가까웠다.

가장 큰 시장은 병원 블로그 마케터였다.

몇 군데 이력서를 넣고 한 곳에 2번이나 원고 면접을 본 후 합격했다.


처음엔 피부과 병원 시술 광고를 위한 블로그 글 업무가 주어졌다.

나름 신나게 쓴 원고는 다음날 시뻘건 줄로 가득하게 돌아왔다.


“문장이 너무 길어요.”

“두괄식으로 써야 해요.”

“자연스럽게 병원으로 유도할 수 있게 해 주세요.”


등등 시뻘건 줄엔 각자 이유가 있었다. 차라리 글을 처음 쓰는 입장이라면 달랐을까.

내 개성과 내 스킬과 관련 없이 마케팅 회사에 맞는 글을 쓰기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내 느낌을 없애고 양산형 글을 쓰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원고 하나에 2만 원. 처음엔 하루에 적어도 하나씩은 문제없겠다 싶었는데

첨삭이 길어지고 시간이 지나면서 초초해졌다. 이 속도라면 한 주에 원고 하나 통과하기도 어렵겠다 싶었다.


이 사건 이후, 매일 생긴 버릇은 일자리 어플에 들어가 하루에 적어도 세 군데 이상 이력서를 넣는다.

처음엔 회사와 내 라이프스타일 그리고 내 커리어가 연결될 수 있는지 고심하면서 넣었지만

생각보다 내 글이 상업적 글쓰기 시장에선 그리 환영받는 글이 아니란 뼈저린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생각보다 내 이력서를 반갑게 맞이하는 곳도 그리 많지 않단 걸 알았다.


돈이 되는 글쓰기는 작가 글쓰기가 아닌 알고리즘에 맞춘 답이 있는 글쓰기다.

창작이 아닌 원하는 답을 내놓아야 하는 글쓰기인 것이다.


과거 편집실에서 머리 싸매며 썼던 글이 막상 잡지사 밖 세상에선 당장 쓸데없는 글이 돼버린 것 같았지만

처참함보단 막막함이 앞섰다.


한때 편집장이 말했던 것이 있다.

내가 원하는 일을 위해 하기 싫은 것도 해야 한다고.

이때 하고 싶은 것은 잡지 만드는 일이었고 하기 싫은 것은 외주 작업이었다.

편집장은 외주로 번 돈으로 돈이 안 되는 잡지를 만들었다.

이 일을 떠올리니 그때와 지금 달라진 것은 없구나 싶었다.

그리고 이 사실을 깨닫고 나니 그리 슬플 것도 없었다.

글로서 살아 남겠다는 건 낭만적인 일이 아니라 치열한 생존인 것이다.




인플루언서가 되기로 결심했다.

결국 글쓰기는 내가 얼마나 하고 싶은 말을 많이 집어넣을 수 있는지

그 퍼센트 싸움이었다.

인플루언서는 하고 싶은 말을 조금 더 넣을 수 있었고

상업적 글쓰기 작가는 해야 할 말을 반복해야 했다.

나는 인플루언서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 시작점을 내 도시에서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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