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공 May 12. 2021

내돈내산 상담, 더 힘든데 정상인가요?

힘들어서 받는 상담 때문에 더 힘든 당신에게

잠에서 깨는 순간 온몸이 뻐근하다. 침대에서 일어나니 엉덩이부터 무릎 위까지 당기는 기분이다. 한 걸음 내디디니 아파서 걷기가 힘들다. ‘아 이래서 오늘 어떻게 출근하지?’ 고민과 걱정이 싹트는 와중에 기분이 좋다. 이 근육통이 어제 헬스장에서 스쿼트랑 런지를 각각 100개씩 한 결과물이란 걸 알아서다. 운동한 다음 날 안 아프면 운동이 제대로 안 됐나 싶어 서운하고 섭섭하다. PT 받은 다음날 멀쩡하면 돈 날렸다 싶은 마음까지 들기도 한다.


운동을 열심히 해 근육이 많이 사용되면 근육에 미세한 상처가 생기게 된다. 그러면 근육 세포핵은 단백질을 만들어내라는 신호를 보내고 그 결과 근육은 비대해진다. 운동러에게 괴로운 근육통이 반가운 이유다.물론 근육통이 있다고 해서 당장 일주일 만에 없던 근육이 불끈 생겨나진 않는다. 하지만 운동러는 참고 기다린다. 근육이란 시간을 두고 통증을 이겨낼 때 생기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다림과 아픔은 고통이 아니라 희망이고 행복이다.


그런데 상담은 다르다. 내담자는 PT처럼 상담 전문가에게 시간당 돈을 내고 상담 서비스를 받는다. 심리적 고통을 해결하고자 갔는데 어째 상처를 더 후벼 파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상담받지 않으면 대충 술 먹고 잊을 수 있을 것 같은 일(하지만 술을 먹었음에도 잘 잊히지 않기에 상담실까지 왔을 것이다. 아마도!)을 굳이 상기시켜 상담사에게 얘기하고 있자니 돈 내고 벌 받는 기분도 든다. 게다가 심리적 어려움과 이로 인한 증상이 당장 해결되지도 않는다. 상담사는 뭔가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단 그저 끄덕이며 듣기만 하는 것 같다. 얘기를 잘 들어주니 감사하지만 어쩐지 속은 느낌도 약~간 드는 것 같다. 상담으로 인한 아픔과 기다림은 운동으로 인한 그것과 다르다. 돈 낭비 같고 답답하다. 희망이나 행복과는 거리가 먼 것 같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도 근육과 비슷하다. 내담자가 상담에서 힘들었던 경험을 얘기하고 상처를 헤집는 느낌이 드는 건 당연하다. 상처가 상처가 아닌 게 아니라, 상처가 난 줄도 모르고 못 본 채로 누구에게도 얘기하지 못하고 숨기고 살았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내담자의 고통 경험에 대해 Grondin(1994)은 드러내 경험하기에는 너무 고통스러워 무의식 속에 잠겨 있고 그래서 자각되지 않고 있는, "한 번도 입 밖으로 내어 본 적은 없으나 내담자가 말하는 모든 것에 묻어나고 있는 그 무엇"이라고 말했다(유성경, 2018). 당사자는 몰랐지만 그 상처가 깊을수록, 상처가 난 지 오래됐을수록 이 상처를 바라보는 건 더 충격적이고 더 많이 아프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럴수록 새살이 나는 데엔 더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상담 초반 5회기 정도까지 답답함을 호소하는 내담자의 마음을 백번 이해한다. (상담 첫 회기 구조화 작업에서 오히려 우울감이 커지거나 불편한 마음이 들 수도 있다고 미리 말씀드린다.) 왜 내가 내 비싼 돈을 내고 해결되지도 않는 문제를 혼자 얘기하며 고통받아야 하나. 10년도 더 지난 중학교 때 엄마에게 서운했던 일을 왜 상기시키며 화를 키워야 하나. 그러나 그래야 낫는다. PT와 비슷하다. 돈 내고 고통을 받아야 근육이 커지듯 상담을 하며 과거 나의 힘듦을 세세히 살펴야 과거를 훌훌 털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스피노자는 "감정, 고통스러운 감정은 우리가 그것을 명확하고 확실하게 묘사하는 순간 고통이기를 멈춘다"고 했다.


상담자는 왜 해결책을 제시해주지 않는가. 전문가는 그저 끄덕이며 얘기를 듣는 게 역할의 다인가. 이게 10만 원이 넘는 서비스인가. 그런 의구심도 들 수밖에 없다. 상담자가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안)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렇게 쉽게 해결될 일이었다면 내담자는 상담을 올 생각도 하지 않았을 거다. 상담자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이가 아니라 당사자조차 너무나 괴로워 혼자 보지 못하는 상처를 '같이' 보고 다시 현재에서 경험하는 사람이다. 내 상처는 돈을 내고 상담에 와야만 얘기할 수 있을 만큼 혼자서 보기엔 너무 괴로울 수 있다. 하지만 이 과정을 같이 하는 사람이 있다면 당장 해결은 안 되더라도 그 과정의 괴로움을 견딜 힘이 생긴다. 상담에서 얘기하는 심리적 상처는 대부분 가까운 사람에게 받았을 가능성이 높아 심리 치료 과정을 함께 해주지 못한다. 안전한 상담 공간이 필요한 이유다.


상담 자체에서 오는 고통과 기다림도 당연하지만, 그 아픈 상처를 그동안 못 보고 없는 척하느라 나 스스로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생각해주면 좋겠다. 아프면 아픈 만큼 내가 그 당시엔 아픈 줄도 모르고 얼마나 고생이 많았나 셀프 쓰다듬을 해주면 좋을 것 같다. 아픈 만큼 낫기까지 시간은 오래 걸릴 수 있지만 이 과정이 있어야 이제 그만 아플 수 있다. 그동안 상처를 가리느라 써온 불필요한 에너지를 이제 내가 행복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를 위해 온전히 쓸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건 생각보다 꽤 후련한 경험이다.


더 큰 근육을 위해 근육통을 견디듯 상담 과정의 답답함과 속상함도 당연하고 필수적인 과정이다. (이 답답하고 속상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상담사에게 전한다면 상담에서 더 빠른 진전이 생길 수 있다. “선생님, 상담을 받았더니 더 괴롭고 화나고 슬퍼요!!!”라고.) 이를 '내 돈 내고' 기꺼이 견뎌내는 내담자는 매일 헬스장을 다니며 건강을 챙기는 사람만큼, 아니 그 이상의 지지와 칭찬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요즘

유행하는 운동 인증샷처럼 상담 1회기, 5회기, 10회기, 20회기 인증샷도 SNS에 올라오는 날이 오면 좋겠다.


유성경(2018). 상담 및 심리치료의 핵심 원리. 서울: 학지사.

Grondin, J. (1994). Gadamer and Augustine: On the Origin of the Hermeneutical Claim to Universality. In Hermeneutical and Truth (edited by Brice Wachterhauser). Evanston: Northwestern University Press.
매거진의 이전글 고작 이걸로 상담받아도 될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