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로 산다는 것
그를 처음 만난 건 1996년 5월 27일이다. 주말도 없는 국어 학원 강사 일에 지쳐 진주에서 마산으로 돌아와 아이들에게 한자를 가르치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겨자색 정장을 입고 뽀얀 피부에 아주 서글서글한 인상을 한 사수를 만나게 되는데 자꾸만 그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집에 가서도 문득문득 생각이 나는 거였다.
당시 나에게는 호주에 어학연수 나가있는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자꾸만 그 사람이 눈에 들어오더니 언젠가부터 마음에 들어와 앉아 한자리를 차지하고 나갈 생각이 없었다.
친한 선생님의 집들이에 모든 동료들이 참석한 날, "너희 둘 사귀어라." 한 마디에 그날부터 그와 공식적으로 사귀는 사이가 돼버렸고
군대 갔을 때도 거꾸로 신지 않은 신발을 결국 아예 벗어던져버리고 만 것이다.
세월은 흘러 5년 연애결혼생활 24년 차 아직도 매일 아침 출근길에 따스한 포옹을 나누고 하루 두세 번 통화를 하며 카톡은 수시로 나누는 금슬 좋은 부부로 살고 있다.
딸 셋을 낳은 게 신의 한 수다. 사이가 벌어질 틈이 없다. 작은 다툼이라도 생기면 딸들이 나서서 화해를 시켜주고 둘이 마주 앉아 꼭 풀고, 아무리 크게 마음이 상했더라도 각자 들어가 잘 방이 없기에 한 방을 쓸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딸아이들 각자 방 한 칸씩 차지하고 있고 거실은 책장과 10인용 테이블이 놓여 잘 곳이 없다)
경상도 남자인데 경상도 같지 않게 부드러운 말투와 배려심이 장착된 사람, 설거지와 분리수거는 당연히 스스로 하고 손맛이 좋아 요리솜씨도 백종원이 울고 갈 정도다.(백종원처럼 설탕을 많이 쓰기에)
술을 못하는 나 대신 매일 저녁식사 때마다 냉장고에 든 맥주와 소주를 잘 비워주고(술을 못하는데 장 보러 가면 새로 나온, 병이나 캔이 예쁜 술을 사 오는 버릇이 있어 집에 늘 술이 구비되어 있다) 대학생이 된 딸들과 정치 사회 역사 스포츠 이야기도 얇고 넓게 잘 나눠준다.
부부는 서로 닮는다는데 결혼식 버진로드를 걸을 때부터 "둘이 많이 닮았노"소리를 들었고 지금은 내가 몸집이 더 커져서 형님 같지만 어쨌든 더 많이 닮아가고 있다.
한자 '사람 인'을 풀면 서로 기대 사는 존재라고 하는데 우리 부부가 그런 사이다. '성격이 급하고 일을 벌이고 보는 나'와 '조심성이 많고 안빈낙도를 즐기는 남편'은 서로 보완이 되고 일을 처리하는데도 각자 역할이 있어 지금껏 큰 사고 없이 잘 살아가고 있다.
물론 남편에게 물으면 '참을 인'자가 심장에 100개쯤 박혀있다고 하소연을 하겠지만 1년 365일 중 30일쯤은 활짝 웃고 애교도 피우니까 그만하면 된 거라고 우기고 싶다.
"또 시작이네"
우리 부부가 애정행각을 벌이면 딸들이 하는 말이다. 지금처럼 서로 아껴주고 보듬어주고 사랑하는 마음도 자주자주 표현하면서 결혼 70주년까지 잘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