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구초심
지난 어버이주간에 울산에 사시는 당숙이 전화를 해 고향에 오고 싶어 했다. 아버지 사촌 중 정이 많고 유독 형제애도 좋은 분이고 경우가 바른 분이다. 우리도 진섭이 삼춘이면 오시라고 기꺼이 맞이할 마음이었는데 결국 해가 다 지도록 감감무소식이라 연휴는 우리 가족끼리 지내다 넘어갔다.
장곶마을은 임 씨 집성촌이자 종갓집이 있는 곳이며 우리 큰집이 곧 종갓집이고 할아버지 6형제와 왕고모, 아버지 4형제, 우리 사촌 15명 모두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어러서부터 6촌 나아가 8촌까지도 왕래가 잦고 사이도 돈독해서 설날이면 큰집을 시작으로 제사를 차례대로 모시는데 하루 종일 친척집을 돌아야 제사가 끝이 날 만큼 집안이 컸다.
이상하게 할아버지 중 첫째인 우리 할아버지의 셋째 아들인 내 아버지와 둘째 할아버지(방깨할부지) 둘째 아들인 진섭이 삼춘, 셋째 할아버지(고무실할부지) 둘째 아들인 주섭이 삼춘 빼고 다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형님 아우를 먼저 보내며 마음이 크게 상해 그때마다 며칠 식사도 제대로 못하셨는데 오늘 또 부고장이 날아들었으니 울산에 계신 진섭이 삼춘이 돌아가셨다한다.
아버지와 통화를 하는데 마음이 영 불편하고 아버지 목소리에 슬픔이 안개처럼 자욱하였다. 자연스레 내가 대학에 입학하자 사촌들 중 유일하게 금일봉으로 축하를 전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는데 그도 그럴 것이 내가 고향에서 대학생 10호 안에 들었으니 축하받을 만했다.
"사람이 하늘문이 열리면 고향땅을 밟고 싶어 하는 거라."
아버지의 목소리는 잠긴 듯 까슬거리고
"삼춘이 정이 제일 많아서 형님 보고 싶었나 봐요."
나도 한마디 거들고는 내일 조문 다녀오겠다 하고 전화를 끊는데 마음에 싸아~하고 파도가 일렁인다.
여우도 고향땅을 향해 머리를 두고 숨을 거둔다는데 삼춘의 그리움은 어떠했을까? 더 공손히 정겹게" 삼춘 다녀가셔요"할 것을... 한 치 앞을 모르는 삶과 죽음의 경계가 아쉽다.
내일 숙모와 선경이 동현이를 크게 안아주고 와야겠다. 오늘은 조용히 진섭이 삼춘의 영면을 기원하며 기도를 드렸다. 고향 그리는 삼춘의 마음이 기도하는 내내 내 마음에 일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