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남편
나의 아버지와 남편은 서로 닮은 구석이 많다. 일단 딸들에게 자상하다. 내 아버지는 내가 중학생이 되기 전까지 손수 뜨개질한 분홍 스웨터를 입히셨고 졸업식에 입으라며 새벽 장배를 타고 마산까지 가셔서는 그 시절 골프웨어였던가 아주 값비싼 MIZUNO잠바를 분홍색으로 사주신분이다. 여고 1학년 자취시절에는 온갖 부엌살림도 사다 놓으시고 잠금장치 점검에 커튼까지 분홍원단을 사다 달아주신 아버지.
아버지의 첫 딸인 내가 첫 딸을 낳고서 조리원에서 집으로 온 날에는 새벽 4시 일어나 채비를 하고는 두 시간을 들여 걷고 배 타고 택시 타고 딸을 보러 오신 분이다. 미역국 두 통에 국간장 참기름을 이고 지고 날라주신 정성에 감복했던 순간이 지금도 생생하다.
아버지 나이 서른일곱에 나를 보셨으니 얼마나 이뻤을까 싶다.
위로 아들 둘을 보고 첫딸이었으니
세상에 예쁜 것 좋은 것 귀한 것 다 주고 싶었다고 하신다. 부산에서 사다 주신 감색 물방울무늬 원피스, 노란 프릴 블라우스를 지금도 생생하게 떠올려본다. 짜장면도 아마 칠천도 열 동네 다 통틀어 내가 제일 처음 맛봤을 것이다.
아버지 손잡고 처음 타 본 부산 가는 배 신진호, 진해 사촌언니집 가던 세길호, 마산으로 진학해 매주 오가던 영진호를 기억한다. 아버지는 나의 처음을 같이 해주려 애쓰셨다. 배를 타고 내리는데 시퍼런 바닷물에 두려움을 느낄까 혹시 발을 헛디딜까 손잡아주던 온기를, 사랑을 잊지 못한다. 그 시절에는 접안시설이 없어 바다 한가운데서 잠시 엔진을 멈추고 작은 나룻배를 향해 밧줄로 엮은 사다리를 내리고는 사람이 타고 내렸다. 한 눈 팔거나 손잡이를 놓으면 바로 망망대해에 빠지는 거다.
1980년까지 칠천도에는 마땅한 가게가 없고 금순할머니가 마산서 물건을 떼 와 파는 구멍가게 수준의 군것질거리뿐이었는데
배를 타고 통영 부산 다니던 아버지 덕분에 딸기산도, 껌바를 먹는 유일한 아이가 바로 나였다. 이렇게 아버지의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자랐다.
(단걸 너무 먹어서 충치는 덤으로 생겼지만 )
남편의 딸사랑도 만만치 않은데
남자형제만 있는 집에서 자랐음에도 말씨가 부드럽고 큰소리 내는 법이 없다. 큰 딸이 엄마인 나를 더 무서워하고 아빠의 퇴근시간만 손꼽아 기다렸다가 하루 일과를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하는 걸 보면 좋은 아빠임에 틀림없다. 퇴근길 내 아버지가 산도를 양손에 들고 왔듯이 남편은 365 마트에 꼭 들러 젤리와 (무뚝뚝)을 사 들고 온다.
스물 하고도 세 살인 딸과 허물없이 남자 친구얘기 야구얘기를 퇴근 후 잠들기 전까지 꼭 붙어서 나누는 50넘은 아빠는 몇 안될 것 같다. 오죽하면 옆에 있다 지쳐서 나는 소파에서 먼저 잠들곤 한다.
아내에게 각자 잘하는 것도 아버지와 남편의 공통점이다. 파킨슨 13년 차 엄마를 재택간병해온 아버지. 3년 전까지는 부산동아대병원 진료를 엄마와 둘이 버스 타고 택시 타고 다니셨다. 남편도 두 달에 한 번씩 약 타러 가는 나를 태우고(걸어서 20분 거리) 병원동행 에스코트를 한다.
남자는 엄마를 닮은 배우자를 선택하고
여자는 아버지를 닮은 남편감을 고른다더니 그 말이 꼭 맞나 보다.
자주 드리는 문안 전화지만 오늘은 더 사랑을 담아 말씀드려야겠다.
"아부지~ 아부지 덕분에 자상한 권스방 만났어예 고맙습니대이~ 내 아부지로 오래오래 계셔주이소.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