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아지 세 쌍둥이
우리 엄마는 집에 키우는 동물을 사람처럼 대하는 습관이 있었다. 특히 소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여름날 해가 지고 소를 몰고 마당으로 들어서면 하루 종일 엄마만 기다린 우리들 밥보다 소 물 먹이고 소죽 챙기는 게 우선일정도로.
그래서일까? 작은 섬 칠천도에서 마산에 있는 제일여고에 진학할 당시 유일하게 교복을 입는 학교여서
목돈이 들어가게 생겼는데 우리 소가 떡하니 쌍둥이를 낳아 , 그것도 수송아지로 턱 하니 안겨주니 자취방 보증금에 살림살이 교복까지 다 장만하고도 돈이 남았다.
이 정도면 뭐 우연일 수 있지? 하겠지만 세월이 흘러 내가 대학에 입학할 때 다시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다. 당시 대학등록금이 68만 원이었고 (그나마 국립이어서) 기숙사비 60만 원 입학금이 또 16만 원 따로 있던 시절이라 도합 150여만 원 목돈이 필요했던 때다. 기다렸다는 듯 우리 소가 세 쌍둥이를 낳았는데 이번에도 수송아지 3마리를 안겨주었다.(160만 원 ×3) 고모는 말했다.
"우리 정아 공부복이 있네. 조상이 도우시는갑다"
그렇게 우리 소 덕분에 대학 4년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몇 해 전까지도 친정에는 6마리 소가 있었다. 빗질을 곱게 한 우리 소는 멀리서도 윤이 났다. 눈망울은 또 어찌나 크고 맑은지 송아지까지 다 예뻤다.
결혼을 하고 엄마에게 좀 다녀가시라 하면 "소는 누가 돌보니? 말 못 하는 짐승 밥 굶기는 거 아이다"했다. 첫째를 낳고 산후조리해 준다고 처음으로 마산에 와 계실 때 일이다. 온갖 과일이 든 과일바구니가 선물로 들어와 그날은 엄마가 과일을 깎아 온 식구가 먹고 빌라 이웃에게도 과일을 나눠주고 했다. 가만히 과일을 깎다가 사과껍질 배껍질 들여다보던 엄마가
"아이고 이거 우리 소 갖다 주면 참 좋아할낀데" 한다.
"장모님, 다음에는 소도 같이 몰고 오시지요" 대뜸 남편이 한마디 거든다.
"아니 그냥 하는 소리가 아이고 우리 소가 사과 껍질 배 껍질 진짜 좋아한다"
엄마는 진짜 당장이라도 그 껍질을 모아 들고 칠천도에라도 뛰어갈 기세다.
소에 대한 지극한 사랑은 칠천도 사람이라면 다 알 정도로 소문이 자자했다. 지금 생각하니 소에 대해 그러한데 자식인 우리들에게는 더 애틋했지 싶다. 표현은 안 했지만 새벽 장독대위에 정화수 떠놓고 부산 간 큰 아들 잘되라고 , 마산 있는 큰 딸 만사 무사하라고 , 서울 간 작은 아들 사업 잘되라고 얼마나 비셨을까?
소는 0.01 % 확률인 세 쌍둥이까지 낳아 그 정성에 보답하는데 정작 자식들은 그 사랑 그 정성 당연하다 여기며 살았다. 이제 와 내가 세 쌍둥이를 낳아 드릴 순 없으니 매일 자주 전화드리고 자주 찾아뵐 수밖에.
그럼 또 우리 엄마 이렇게 말하겠지?
"인자 소보다 낫네"
(예전에는 살림밑천인 소보다 못한, 도박에 빠져 집안살림 말아먹는 사람들이 있어 실제로 우리 섬에는 '소가 낫네'란 말이 있었다.)
(세쌍둥이 사진이 안보여서 거제도 소낭구펜션 사진 대신합니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