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다정 씨
내 안의 다정 씨
다정을 받고 자란 다정이.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는 다정한 사람이다. 누군가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는 일이 어렵지 않고, 작은 배려를 습관처럼 내어놓을 수 있는 건 아마도 내가 '다정함'을 받고 자란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부모님이나 주변 사람들이 건네주던 사소한 친절이 내 안에 쌓여 지금의 내가 되었음을 깨닫는다.
어제는 좋아하는 가수가 진행하는 토크 프로그램을 보았다. 몇몇 패널이 나와 ‘다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다정'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왜 그것을 필요로 하는가. 대화는 자연스럽게 흘러갔지만, 내 마음에 오래 머무는 질문을 남겼다. 그러다 선우정아라는 가수가 ‘나에게 다정하기’를 인생의 목표라 말하는 장면이 특히 와닿았다. 그녀의 노래 lovemyself를 들으며 나는 가슴이 시리다 가도 따뜻해지고, 어쩐지 묘한 울림을 느꼈다.
사실 우리는 어려서부터 늘 상대방에게 친절하라고 배운다. 친구에게 양보하라, 어른을 공경하라, 낯선 이를 도울 줄 아는 사람이 돼라. 물론 소중한 가르침이지만 정작 "나 자신에게 친절하는 법"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오히려 스스로를 다그치고 몰아붙이는 것이 미덕처럼 여겨졌다. '더 열심히 해야 한다', '네가 부족하다'는 목소리는 익숙하지만, '너 참 잘하고 있어', '괜찮아, 쉬어도 돼'라는 말은 스스로에게조차 쉽게 건네지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행복지수가 세계 최하위 수준이라는 뉴스는 더 이상 놀랍지 않다. 아이들이 '다정'에 굶주려 있는 것이다. 부모와 교사, 사회가 아이들에게 성적과 성취만을 강조하며, 정작 ‘너 자신에게도 다정해야 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가르침을 빼놓고 있다. 나 또한 부모님과 떨어져 여고시절을 보내며 '가족으로부터 오는 다정함'에서 멀어지면서 나 스스로 다정함을 챙기지 못해 힘든 청소년기를 보냈다. 나 자신에게 친절하게 하는 법, 나를 스스로 보살피는 법을 배운 적이 없었으니까. 오히려 나보다 학교생활 적응에 힘들어하는 친구를 돕는 일에 보람을 느끼면서도, 내 마음이 지쳐 있는지는 돌아보지 못했다. 1학년 시기 1년 동안은 거의 투명인간처럼 지냈으니까. 그러다 학교도서관에서 (제인에어)(폭풍의 언덕)(빨간 머리 앤)을 읽으며 그나마 버틸 수 있었다. 2, 3학년이 되었을 때는 단짝 친구가 생길 정도로 마음의 안정을 찾아나간 셈이다.
내가 나를 다정하게 대할 줄 알아야, 남에게 베푸는 친절도 지치지 않고 오래간다. 하루의 끝에서 수고한 나를 쓰다듬어 주고, 작은 성취에도 스스로 칭찬을 아끼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다정함의 출발점이 아닐까. 타인에게 향하는 따뜻함이 결국은 자신에게로부터 비롯되듯,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다정하게 가꾸는 것이 행복의 첫걸음이라 믿는다.
나는 다정함을 먹고 자란 덕분에 다정한 사람이 되었다. 그렇다면 이제는 나 스스로에게도 다정한 어른이 되고 싶다. ‘나에게 다정하기’라는 문장은 어쩌면 평생의 숙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숙제를 풀어가는 과정이야말로 삶을 덜 아프게, 더 따뜻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나의 다정함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전해진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삶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