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매일 보고 싶다

그때는 몰랐다

by 도로시

여든넷의 엄마가 생일날 엄마가 보고 싶다 했었다. 7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는데도 엄마가 보고 싶다고. 열두 살에 여읜 엄마가 여전히 보고 싶다고. 사진이 한 장도 남아 있지 않아 얼굴마저 흐려지는 엄마가 보고 싶다고. 그때부터였을까? 엄마와 셀카를 찍고 엄마의 목소리를 녹음하고 엄마와 영상을 담기 시작한 게.


2주 전 목요일. 그날따라 회사에서 일이 잘 풀려서 기분 좋게 퇴근을 하고 목금토 저녁에만 논술 수업을 하는 본캐로 돌아와 중학생 아이와 수업을 하고는 저녁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가장 좋아하는 참크래커와 커피를 앞에 두고 요즘 시작한 주식 공부를 어떻게 할까? ETF에 관한 책을 펼쳐놓고 반쯤 졸린 느낌으로... 휴대폰 진동이 울리고 '큰오빠'라는 글자가 떴다. '엄마 요양병원에 뭐 필요한 게 있나?' 하고 '여보세요?' 하는데 "엄마가 저녁 드시다 기도가 막혔단다. 위급상황이라니 얼른 와봐라" 전화기를 든 손이 덜덜 떨렸다.

우리 차가 거가대교 중간쯤 갔을까? 이번에는 아버지의 전화다.

"엄마 방금 세상 버렸다"



그렇게 엄마가 세상에서 사라졌다. 파킨슨환자로 10년이 되었을 때 위암환자로 3년을 더 더했어도 늘 깔끔하고 정신이 말짱했던 우리 엄마. 아픈 와중에도 틈틈이 장독대를 살피고 욕실 타일 줄 눈을 솔로 닦던 엄마. 동네에서도 '서판사'라 불릴 만큼 경우 바르고 새마을지도자도 10년 넘게 하고 버스 두 번 갈아타고 노인대학을 다니던... 어떤 세상 풍파 앞에서도 늘 슬기롭게 헤쳐나가던 우리 엄마가 이제 세상에 없다.


수선화가 핀 거제도 소식이 SNS에 연일 올라오는데 보기가 싫다. 엄마와 내가 나고 자란 거제도. 꽃은 피고 봄은 왔는데 그곳에 엄마가 없다. 저녁 8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사랑해"라고 말해주고 싶은데 엄마의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면 전화기는 꺼져있다.


창원대로에는 목련이 곱게 피고 벚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휴대전화를 들고 팔을 있는 힘껏 뻗어 하늘을 배경으로 꽃을 담으면 그 사진을 '참 잘 찍었네'하며 한참 바라보던 우리 엄마. 목련처럼 하얗고 곱던 우리 엄마. 벚꽃처럼 화사하게 웃던 엄마는 지금 어디쯤 가고 있을까?


시답잖은 농담을 하고 우스갯소리를 잘하는 나에게 '철 좀 들어라'하던 엄마는 몸이 아프면서는 '그 이야기 좀 해봐라'하며 잘 웃어주었다. 3주에 한 번 꼴로 거제도에 가면 아프다거나 힘들다는 말대신 나를 보고 웃어주고 '노래 한 곡 시원하게 큰 소리로 불러보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해서 '고장 난 벽시계' '찔레꽃''섬마을 선생님'을 같이 부르곤 했다.


요즘 '눈이 부시게' 드라마를 다시 보고 있다. 나에게도 시간을 돌릴 수 있는 시계가 있다면 엄마가 "엄마가 보고 싶다" 말하던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다. "엄마는 그 나이에도 엄마가 보고 싶나?" 했던 말 대신 "외할머니가 해주시던 음식 먹고 싶은 거 있어?"하고 물어봐줄걸, "외할머니 진짜 미인이셨지?"하고 말해줄걸.., 그때 엄마가 했던 말이 이렇게 가슴에 박힐 줄 알았더라면...


"엄마는 매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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