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가 아니어도 괜찮아 최선을 다하면 돼 "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최선을 다했는데 최고가 아니면 실망하는 사람들이 많다. 최고가 되면 남이 알아주지만 최선을 다한 과정은 내가 알고 있기에 나는 최고보다 최선이 좋다.
국민학교4학년 봄 방학이 끝난 어느 날 ,그날도 점심을 먹고 운동장에서 뛰어놀았다. 오징어 달구지를 하는 아이들, 술래잡기를 하는 아이들, 한쪽에서 축구를 하느라 학교 운동장에는 아이들 함성이 가득 울려 퍼지고 있었다.
"전교 회장 선거가 있으니 강당으로 모여 주세요" 교무 주임 선생님 목소리보다 '삐~~'하는 잡음이 더 크게 들렸다. 더 놀고 싶은 마음을 뒤로하고 각자 교실로 들어섰다. 4학년부터 6학년까지 투표를 했다. 아이들이 나를 돌아 보며 웃어 보였다. 예감이 좋다 . 우리 오빠가 가장 많은 표를 받았다. 활동적이고 공부도 잘하고 의리가 있어서 늘 약자 편에 서는 성격 덕분에 인기가 많은 오빠여서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했다. 스피커 소리가 났다 . 반가운 마음의 귀를 기울였다.
"전교 회장 선거를 다시 합니다. 재투표에 참여해 주세요" 내가 잘못들은 건가? 심지어 왜 다시 투푠를 하는지 이유도 설명해 주지 않았다. 재투표에서는 더 큰 표 차이로 오빠가 이겼다. 선생님들의 당황한 표정이란?작은 섬 작은 학교이기에 학생수도 적고 학년 별로 한 반뿐이어서 입학 때부터 6학년까지 같은 반인 전교생은 서로를 속속들이 잘 알았다 .
'몸이 불편한 아이를 전교회장으로 세울 수 없다' 교장 선생님의 편견을 깬 통쾌한 결과였다. 아침 조회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오빠의 우렁찬 목소리가 자랑스러웠다.
군 학예회가 있었다. 학교에서 여 선생님은 딱 한 사람뿐이어서 그 선생님의 지도로 혜정이와 나 둘이서 갑돌이와 갑순이 춤을 추게 되었다 .지금도 기억이 난다. '갑돌이와 갑순이는 한 마을에 살았더래요~~둘이는 서로 서로 사랑을 했더래요' 연습하고 또 연습했는데 막상 무대에 서니 심장이 쿵쾅거리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수많은 눈과 귀가 나를 향해 있다. 잘해야 하는데...... 갑돌이 역을 맡은 나를 위해 손수 한복을 지어 주신 이모와 잘하고 오라던 엄마의 얼굴이 스쳐갔다. 점심에 억지로 먹은 자장면과 돼지고기 냄새가 아직도 남아 속이 울렁거렸다. 참고 해내야 했다. 당장 쓰러질 것 같았지만 끝까지 했다. 결과는 예선 탈락이었지만 그 자리에 주저앉지 않은 내가 자랑스러웠다.
세 딸에게 최선을 다하라고 말하면서 어떤 때는 무조건 최고가 되라고 말할 때도 있다. 특히 둘째는 공부에 대한 목표가 뚜렷해서 중학생인 자기 일은 알아서 하는 편이다. 중간고사 시험이 끝난 후 저녁을 먹는 중에 성적표를 내밀었다 국어 성적이 기대보다 조금 낮게 나와서 "국어가 왜 이래?" 엄마인 내가 논술을 가르치다 보니 국어는 잘해야 한다는 강박이 어느 정도 있었나 보다. 나도 모르게 퉁명스럽게 말이 나왔다." 나는 내가 노력한 만큼 나온 이 점수에 만족해 " 둘째가 대답하는 순간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말로만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하고 최고를 바라는 엄마의 민낯을 다 드러낸 것 같아서. 요즘도 엄마로서 욕심이 앞서서 학년 전체에서 상위권이길 바라는 마음이 든다. 그럴 때마다 생각한다. '노력하는 과정을 인정해 주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예쁘다, 매일 공부하는 모습이 기특하다고 여기자.'
남편은 아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딸들과 밥상머리 대화도 잘 된다. 항상 아이들을 지지해 주고 결과보다 과정을 칭찬해 준다. 직업상 평소에 많은 아이들을 대하다 보니 요즘 아이들이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어떤 아이돌을 좋아하는지 엄마인 나보다 더 잘 이해하고 있다. 남편이 늦게 귀가한 날 아빠 옆에서 미주알고주알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함께 웃고 있는 딸들을 보며 내가 물었다." 야 너희들은 왜 엄마한테는 아무 말 안 하다가 아빠 오면 다 모여서 이야기해?"" 엄마는 우리 말을 아빠만큼 재밌게 안 들어주잖아" 맞는 말이어서 대꾸를 할 수 없었다. 친구와 있었던 일, 선생님과 부딪힌 일, 수업 시간에 칭찬받았던 일, 심지어 남자친구 이야기까지 아빠한테는 아주 신이 나서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 남편도 수저를 놓고 맞장구도 쳐 주고 넋을 잃고 들어줄 때가 많다. 나는 옆에서 드라마를 보고 있는데 말이다. 아이들을 위해 부모가 해야 할 일은 아이들의 말에 귀 기울여 주고 응원해 주는 것이 최고이자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바쁜 엄마를 둔 덕분에 나의 유년 시절이 행복하지 못했다고 생각할 때가 많았다. 아픈 오빠를 둔 탓에 오빠보다 사랑받지 못했다고 투덜거리고 원망했다. 내 안에 아직도 그 어린 자아가 남아서 괴로울 때가 많다. 멋진 엄마가 되고 싶었다. 내 아이에게는 사랑 한다고 마음껏 안아 주고 잘하고 있다고 지지해 줄 자신이 있었다. 최고의 엄마는 아니어도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가끔 나 자신에게 물어본다.' 넌 잘하고 있니?' 내 아이들에게도 물어본다. '엄마가 이 정도면 잘하고 있는 거지?' 여전히 서툴고 부족하지만 노력하는 엄마이고 싶다.
내가 엄마에게서 그토록 듣고 싶었던 ' 사랑한다' '고맙다'는 말을 내 아이에게 실컷 해주고 있다. 어버이날 딸이 쓴 편지에 울컥한 적이 많다.'엄마가 내 엄마여서 감사해 사랑해 오래오래 건강하게 함께 있자. '
부모가 들을 수 있는 가장 큰 칭찬이다.사실은 이렇게 예쁘게 잘 커주어서 내가 더 감사한데 말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 아이가 하는 이런 예쁜 말을 내가 부모님께 그대로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내 아이를 바라보는 고운 눈빛을 하루가 다르게 약해지는 내 부모에게 보낼 수 있다면 그보다 큰 효도는 없을텐데. 입안에서 맴도는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는 언제쯤 말이 되어 나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