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조금 느려도 괜찮아.

두려워하지 말고 나를 믿자.

by 김희진

'책방 카페 바이허니'에서 집과 가까운 책방을 소개해 주신다. 전시할 그림과 그림책을 가지고 간 날, 그곳 책방 회원님께서 어반스케치를 가르쳐달라고 한다. 어반스케치는 해본 적 없다며 거절했다.

한 달 반쯤 뒤 그림을 찾으러 갔다가 나오는데 '그 회원님'과 또 마주쳤다. 이런 우연이! 어반스케치 수업해 달라고 2시간이나 설득한다. 2시간이나! 어떻게 거절할 수 있겠는가?

사실, 쉽게 승낙하지 못한 이유는 대인 기피증 때문이다. 10년 넘게 성경 동화를 그리며 아무도 만나지 않았더니 세상과 철저하게 분리된 기분이다. 거리에 나가면 그렇게 외로울 수가 없다. 나 혼자만 풍선 안에 갇혀있다. 세상이 너무 낯설다. 낮에는 절대 나가지 않는다. 밤에 마트만 간다. 대인 기피증을 넘어 대인 공포증에 가깝다.


용기를 내어 책방에서 강의하는 날. 응? 너무 즐겁잖아? 너무 신나잖아?



도서관에 이력서를 제출해 보자. 어떤 곳은 일주일에 한 번. 어떤 곳은 일주일에 두 번도 찾아간다. (너무 절실하던 그때는 아무런 눈치도 살피지 않았다. 요즘 이러면 쌀쌀맞게 거절당한다. 안 좋은 이미지로 굳어진다) 거울을 보면 내 눈빛과 몸짓과 태도에 간절함이 선명하게 빛난다. 마치 야생적으로 보일 정도다. 곧 죽을 것 같은 간절한 마음이 전해졌나 보다. 두 달 만에 강의를 허락한다. 이런 행운이! 도서관 강의는 더욱 재밌다. 강의할 때 비로소 살아 숨 쉰다. 너무 즐겁고 행복하다. 오랜 기간 그림 그려온 덕분일까? 강사를 오랫동안 한 것처럼 강의 잘하는 것도 신기하다. 게다가 섬세하고 친절하게 강의한다며 대부분 회원님들께서 말한다. 대인 기피증이나 대인 공포증이 뭐야? 마치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사람 같다. 10년 넘게 고생했던 마음이 연기처럼 사라진다. 사람 만나는 것이 너무 좋다. 강의는 예민함을 극복하고 섬세함에 이르게 했다.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세상을 좀 더 밝게 비추는 섬세함까지는 아니더라도 내가 바라던 마음(6화. 물에 잠겨 숨 쉬며 걷는다)이 이뤄졌다!



특강이 많을 때 제법 벌기도 하지만 대출 원금 포함해서 매달 이자 갚을 정도밖에 안 된다. 생활비는 대출로 감당한다. 언제 강의가 끊어질지 알 수 없는 불안함도 있다. 그래도 이게 어디야? 내게 이건 기적이다. 매일 기적을 체험하고 있으니, 얼굴이 활짝 핀다. 낮에도 잘 다닌다.




내 마음은 아직 차가운 흙냄새로 가득하다. 따뜻한 이곳이 낯설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래도 분명한 건 싹을 피웠다는 것이다. 그러니 아름다운 나무와 화려한 꽃들을 보며 비교하지 말자. 조금씩 조금씩 자라 가자. 언젠가 꽃 피우게 될 거야. 두려워하지 말고 나를 믿자. 조금 느려도 괜찮아.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