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해나 '혼모노' 단편집
「길티 클럽 : 호랑이 만지기」는 성해나 소설집 「혼모노」에 있는 단편이다.
일본어인 '혼모노'는 한국에서 다른 의미로 쓰인다.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모호한 민폐형 극성 오타쿠를 가리키는 비하어다. 특히 2016년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 개봉 당시 일부 관객들이 극장에서 과도하게 소리를 지르거나, 일본 애니 캐릭터 코스프레를 하고 행사장에서 방해하는 등 비상식적인 행동으로 주변에 불편을 주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로 굳어졌다.
다음은 처음 접하는 단어가 많아서 정리해 보았다.
17p. 필리스틴 : 예술적 감성이나 교양이 없는 속물.
17p. 시네필 : 영화를 사랑해서 능통한 시선을 가진 사람. 블록버스터보다 작가주의 영화를 선호하는 사람.
17p. 심미안 : 아름다움을 찾는 안목.
17p. 모럴 : 인생이나 사회에 대한 정신적 태도. 어떤 행위의 옳고 그름의 구분에 대한 태도.
41p. 포커스 풀러 : 영화 촬영 팀에서 제1카메라 조수, 촬영 시 렌즈의 초점을 맞추는 일을 하는 중요한 사람.
51p. GV : 상영 후 감독·배우 등이 무대에 올라 관객과 대화하는 시간으로 Guset Visit를 줄인 말.
주인공은 김곤 영화감독에게 푹 빠져있다. 무던한 성격인 남편이 화를 낼 정도다. 촬영장에서 일곱 살 어린아이를 심하게 다뤘다는 김곤을 감싸다가 친구들과도 멀어진다. 김곤을 좋아하는 모임 게시판에서 알게 된 오영이라는 사람이 '길티 클럽'을 쪽지로 알려준다. 촬영까지 갔다가 엎어진 김곤의 「길티 플레저」 길티에 클럽을 붙인 이름이다. 길티 클럽 오픈 채팅방에서는 모두 김곤을 추앙한다. 그의 윤리적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두둔하며 편든다. 주인공은 궂즈를 사고 후기도 올리며 길티 클럽에서 열심히 활동한다. 김곤을 향한 애정을 소비로 입증한다.
어느 날 공지가 떴다. 「안타고니스트」 2019년 베를린 시상식 생중계 단체 관람을 하고 감독님과 영상통화 할 예정이라고 한다. 오프 모임에 가고는 싶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다. 분명 시네필이 많을 것이다. 주인공은 시네필인 전 애인 때문에 반감이 있다. 심미안이 없다. 지루하고 모럴이 없다며 취향을 강요당했었다.
오프 모임에서 자기소개를 하는데 닉네임뿐 아니라 이름, 나이, 학벌까지 밝힌다. 심지어 모두 시네필 같다. 주인공이 지난 영화 「인간 불신」 이야기를 한다며 귀엽다고 빈정댄다. 대화도 잘 끼워주지 않는다. 마음 상한 주인공에게 오영이 말한다. 길티 클럽은 사람들 모아서 김곤과 관련한 일을 해보고 싶어서 만든 거라고. 실은 아카데미 출신 중에 김곤만큼 잘 된 사람이 없어 질투하는 거라고. 우리는 그들과 다르고 언제든 믿을 수 있고 믿어야 한다고 한다. 사실 주인공은 '김곤이 고딩 때 일진이었다'는 글을 보고 마음이 흔들렸다. 하지만 '의심을 지우고 싶다. 작품에 대한 애정을 떳떳하게 드러내고 싶다. 순수한 사랑을 죄의식 없이 드러내고 싶다.'는 사랑으로 윤리적 결함에 맞선다. 잠깐 친했던 미지가 감독의 윤리적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자 공격적으로 대한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우리는 믿어야 한다며 다그친다.
드디어 김곤이 시상식에 나왔지만 영상통화는 하지 못했다. 모두 GV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헤어진다.
GV에 참석하기로 한 사람들이 오지 않는다. 늦었다며 주인공에게 꽃다발을 사 달라고 부탁하고서는 아무도 나타나지 않는다. 주인공은 김곤을 가까이에서 보며 꽃도 주고 마치 시네필처럼 영화평도 한다. 시네필처럼!
마칠 때가 다 되어가자 김곤이 죄송합니다를 거듭 말하며 허리 숙여 사과한다. 객석에서는 박수가 터져 나온다. 김곤은 계속 허리를 숙이고 있고 암전이 된다. 영화 같다. 주인공은 허무감을 느끼고 김곤을 향한 관심과 애정이 사라진다.
결혼 삼 주년에 주인공이 치앙마이에 간다. 발톱과 송곳니를 다 빼고 살기 없이 허공을 쳐다보는 호랑이를 쓰다듬는다. 죄의식을 동반한 저릿한 쾌감을 느끼며 기시감의 정체를 깨닫는다.
의심하지 않는 신념은 위험하다. 의심은 독립적으로 사고하게 한다.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으므로 주체성을 가지게 한다. 합리적 의심은 자신을 보호한다. 사기나 위험한 상황을 바라보게 한다.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을 의심할 때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고 지식을 확장하게 된다.
주인공도 처음엔 윤리적 의심을 했다. 고딩 때 일진이었다는 글을 보고 마음이 흔들렸다. 이전에 감지하지 못했던 폭력의 전조나 코드를 보게 되었고, 감독의 모럴이 투영된 건 아닐지 의심했다. 하지만 맹목적인 신념을 가지는 순간 현실을 왜곡한다. 자신의 믿음만 고집하여 현실을 제대로 바라볼 수 없게 된다. 잠시나마 마음을 터놓았던 미지에게 믿음을 강요하는 비인격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타인의 견해를 배척하여 다양한 의견을 내놓을 수 없는 폭력적인 분위기에 앞장선다.
한국 사회는 군대 조직과 비슷하다. 다양한 의견을 내놓기가 어렵다. 나와 달라서 틀린 게 된다. 맹목적인 신념과 자기 합리화에 빠지기 더욱 쉽다.
주인공이 호랑이를 만지며 윤리적 불편함을 인식하면서도 쾌감을 느낀다. 김곤의 윤리적 결함에 맞서며 작품을 소비하고 느끼던 쾌락과 동일하다. 김곤이 사과했을 때 자신의 소비행위가 더 이상 정당화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허무감이 든다.
가성비에 대해 생각해 본다.
가성비는 '가격 대비 성능'을 뜻한다. 가성비는 쉽게 사고 쉽게 버리게 한다. 소비가 빠르고 쉽다. 폐기물이 증가하면서 환경이 파괴된다.
저임금으로 노동을 착취한다.
제품의 가치를 무시하게 된다. '소유' 자체가 목적이 된다. 꼭 필요해서 사는 게 아닌 경우가 많다.
'가격 대비 성능'이 이득을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환경 파괴, 노동 착취, 장기적인 경제적 지출이 증가하는 모순을 경험한다. 가성비는 윤리적 불편과 쾌락이라는 모순을 동시에 보여주는 단어다.
가십에 대해 생각해 본다.
최근에 본 영화 '파반느'에서 함께 일하던 사람이 자살 시도를 하자 점심을 먹으며 온갖 이야기를 하며 즐긴다. '알고 보니 일하던 곳 회장 아들이었다. 혼외자다. 나 같으면 돈만 챙겨가면 되는데 왜 자살하냐' 등등. 흥미로운 이야기가 주는 쾌락에 빠져 사생활이 주는 관음적 재미를 즐긴다. 주인공은 그런 사람들을 향해 화를 낸다. 동료를 소비하는 불쾌감을 드러낸 것이다. 사람들이 조용해지는 건 윤리적 불편함과 쾌락이 주는 모순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Last Christmas'를 부른 조지 마이클이 사망하자 크리스마스에 사망했다며 뉴스에서 하루 종일 보도한다. 신기하면서도 즐거워하는 표정이다. 뉴스는 종종 윤리적 불편함을 무감각하게 만든다. 즉각적 만족으로 쾌락을 즐기게 한다. 뉴스에서 저렇게 떠드니 나도 가십을 즐길 수 있다는 자기 합리화에 빠진다.
헤어진 사람을 SNS로 엿보며 죄책감과 호기심을 즐긴다든지, 타인의 불행을 보며 연민과 동시에 비교에서 오는 안도감을 즐긴다든지, 부적절한 사랑을 하며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것을 알지만 흥분과 몰입을 즐긴다든지, 권력이나 부를 과시하는 것에 비판하면서 동시에 동경한다든지. 내 안에 있는 윤리적 불편함과 쾌락을 동시에 느끼는 모순에 대해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