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울프
미란다는 과수원의 사과나무 아래 긴 의자에 누워 자고 있었다. 그녀의 책은 풀밭에 떨어졌고, 손가락은 '이 나라는 실로 어린 소녀들이 서슴없이 웃음을 터뜨릴 수 있는 세상의 한구석이다'라는 문장을 계속 가리키고 있는 것 같았다.
…
미란다가 일어서더니 크게 소리쳤다.
이런, 차 마실 시간에 늦겠네!
위와 같은 맥락이 세 번 반복되는 단편 소설 「과수원에서」이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바람은 날카로운 소리, 요란한 소리 등이 파장을 일으켜 아이의 손을 가시에 찔리게 하고 사과나무 우듬지의 작은 이파리들이 교회에서 연주하는 오르간 소리를 만들어 내다가 작은 파편들로 쪼개진다. 교회 탑의 황금색 풍향계가 끽끽거리고 종소리와 기도 소리들이 바람의 방향을 바꾸어 윙윙거리자, 미란다가 일어선다.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땅이 솟아올라 나뭇잎이나 여왕처럼 미란다를 등에 태워 실어 간다고 생각한다. 갈매기가 날카로운 소리를 지른다고 생각하고 술 취한 사람의 고함에서 인생이 내지르는 소리를 느낀다. 쿵 하는 종소리를 듣고 자신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말발굽에 땅이 흔들린다고 생각한다. 사람들과 수레들, 새들, 그리고 말 탄 사람을 따라가 보기도 할 때 바람의 방향이 바뀌었다. 교회 탑의 황금색 풍향계가 끽끽거리자 미란다가 일어선다.
세 번째 에피소드에서 사과나무는 가지들을 넓게 펼쳐서 붉거나 노란 방울들을 만들어낸다. 산들바람이 불자 나뭇가지들이 벽 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어졌다가 돌아온다. 할미새 한 마리가 비스듬히 날아가고 개똥지빠귀 한 마리가 떨어진 사과 쪽으로 다가온다. 나무들이 이런 움직임과 맞물려 있을 때 바람이 바뀌자 미란다가 일어나고 사과들은 담벼락을 가로질러 다시 똑바로 매달린다.
나비의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에서 태풍을 일으킬 수 있다는 ‘나비 효과’가 떠오른다. 1952년 미스터리 작가인 브래드버리가 「천둥소리」라는 작품에서 처음으로 이 용어를 사용했다. 이후 기상학자 로렌즈(Lorenz, E. N)가 1972년에 미국 과학부흥협회에서 ‘예측가능성=브라질에서의 한 나비의 날갯짓이 텍사스에 돌풍을 일으킬 수도 있는가’로 인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사소한 사건 하나가 나중에 커다란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의미로 쓰이지만, 혼돈 이론에서는 초기 조건의 민감한 의존성에 따른 미래 결과의 예측 불가능성을 의미한다. 시공간을 가로질러 어떤 하나의 원인이 다른 결과를 초래하는 과정을 과학적으로 예측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버지니아 울프는 1882~1941년의 생을 살았다. ‘나비 효과’라는 정의가 생겨나기 이전에 이미 그는 소설로 써냈다. 작가의 상상력은 이론에 앞서는 것 같다. 그것도 아주 많이.
1927년 영화 <메트로폴리스>에서는 영상 통화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가 하면,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원작인 1968년 아서 C. 클락의 작품에서는 태블릿이 등장한다. 톰 크루즈가 주연한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는 투명 모니터와 무인 자동차, 홍채인식 등이 나오는데 원작은 1956년에 필립 K. 딕이 발표한 단편 SF 소설에서 등장한다. 작가의 상상력이 시대를 얼마나 앞서는지 보여준다. 인공지능이 세상을 지배할 것이라는 <터미네이터>와 인공지능이 감정을 느낀다는 윌 스미스 주연의 <아이, 로봇>이 나올 때만 해도 영화에서만 가능한 허구에 지나지 않았다.
요즘처럼 AI가 급속도로 발전하는 시대를 보면 영화 같은 일이 생기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매장에서 키오스크를 통한 주문이 편리해서 좋다고 하지만 일자리를 빼앗긴 안타까움이 없어서 두렵다. 임금을 줄인 만큼 가격이 내려가지도 않는다. 사람에게 줄 돈을 기곗값으로 지급하고 수리하는 데 사용한다.
자주 가는 버거킹 키오스크 터치가 요즘 잘 안된다. 이제 바꿀 때가 되자 그 옆에 작은 키오스크가 하나 더 생겼다. 터치도 잘 되고 화면도 빠르다. 어린이와 장애인 용으로 만들어져 높이가 낮다. 이처럼 기계는 우리 삶을 조금씩 정복해 가고 있다.
산업화 시대에 자연과 공존하지 못해서 훼손하고 오염시킨 지구를 아직도 책임지지 않는데 인공지능 시대라고 해서 인간이 AI와 공존할 수 있을까? 현대차는 '아틀라스' 로봇을 투입해서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다. 시위를 제압하기 위해 로봇을 투입한다면 끔찍한 일이 생길 것이다. 미래를 그린 영화들이 대부분 암울한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래도 나는 미래 결과의 예측 불가능성을 기대한다. 아름다운 미래를 희망한다.
또 다른 의미에서 살펴본 <과수원에서>는 동양 철학의 연기론(緣起論)이다. 세상의 모든 존재나 현상은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수많은 원인과 조건들이 서로 관계를 맺고 의존하여 발생하고 소멸한다는 가르침이다. '모든 것이 서로 인과관계'라는 말을 가장 명확하게 설명하는 철학적 관점 중 하나이다.
울산 공항 옆에 타이어 수리점이 있다. 그 옆에는 주유소가 있고 버거킹이 있다. (대개의 경우 맥도널드가 자리 잡아 드라이브 스루를 하는 경우가 많다.) 버거킹 옆에는 장례식장이 있다. 장례식장 옆에는 교육청이 있다. 교육청 옆에는 식당이, 식당 옆에는 병원, 병원 옆에 또 장례식장이 있다. 수리하고 먹고 죽고 교육하고 치료하고 다시 죽는다.
이 거리를 지날 때마다 겸허해진다. 겸허란 스스로 자신을 낮추고 비우는 태도를 말한다. 먹고 교육하는 것뿐 아니라 치료하고 죽는 것에서 더욱 겸허해진다. 누구나 죽는다. 미래 결과가 예측 가능하다. 그러므로 나와 상관없는 미래 따위 망칠 것인가? 아니면 미래를 아름답게 하고자 노력한 과거의 인류 덕분에 현재를 누리는 인과관계를 겸허하게 받아들일 것인가? 미래를 아름답게 만들 것인가?
나비 효과와 연기론을 떠올리며 물을 담고 있는 컵의 조심스러운 행위와 물을 담기 위해 비우는 컵의 비움을 생각한다. 모든 것이 서로 인과관계에 있으므로 생각과 말과 행동을 허투루 하지 않기를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