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드

성해나 '혼모노' 단편집

by 김희진

'인종 할당제'로 입사한 듀이는 회사에서 유일한 동양인이다. 그는 제프의 작품을 전시하기 위해 한국에 간다. 미술관은 아파트 한 층을 모두 쓰고 있으며 외부와 철저히 분리된 공간이다. 전시 감상 또한 입주민만 할 수 있다. 대단히 차별적인 나라라고 생각한다.

제프의 작품은 언제나 분노도 불안도 결핍도 없는 매끈한 세계다. 그래서 사람들이 좋아한다. 이번에 전시하는 광택이 도는 검은색의 구 '스무드' 또한 의도나 동기가 없다. 하지만 모두 뭔가 의미를 찾으려고 한다. 듀이도 매끈한 구 같은 세계를 추앙한다.


게스트 하우스에 묵으며 아버지를 떠올린다. 우리는 미국인이라고 주입하는 그는 자신이 한국계라는 사실을 철저히 숨긴다. 할아버지 사진을 발견한 듀이를 혼내며 사진을 찢어버리기까지 하는 아버지다.


다음 날, 종로로 향한다. 처음 접하는 낯선 풍경에 허둥거린다. 햇볕은 뜨겁고 땀 냄새도 난다. 아파트의 산뜻한 공기와 완벽한 시설이 그리워진다. 더위와 인파에 어지럼증을 느낄 즈음에 성조기를 발견한다. 조국의 국기가 보이자, 정신이 맑아진다. 중년의 여성에게 왜 성조기를 들고 있으며 어디로 가는지 묻는다. 그녀는 '축제'라고 알려준다. 미국 독립기념일과 같은 축제가 아닐까 듀이는 생각한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혐오스러운 눈으로 쳐다보자, 자신이 외국인이라서 그런 걸까 생각한다.

동양인과 노인만 가득한 축제 장소에서 핸드폰이 꺼져버린다. 배터리 충전을 해야 한다. 듀이에게 다가온 대구에 산다는 남성이 친절하게 대한다. 핸드폰 충전하는 동안 음식도 권하고 말도 건다. 한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대구에서 미군에게 프라이드치킨을 팔았다고 한다. 지금 서울에 있지만 아들이 만나주지 않는다고 슬퍼한다.

휴대폰 충전이 다 되었다. 메시지를 확인하니 제프가 오기까지 여유가 있다. 대구에서 온 남자와 함께 축제장을 누비며 구경한다. 방명록을 작성하라며 떡을 건네주는 그녀가 말한다. 무척 고맙고 당신이 아주 소중하다고 한다. 가족에게 들은 적도 없는, 타인에게 그런 말을 듣는 건 처음이다. 뜨거운 무언가가 울컥 밀려 들어온다. 방명록을 쓰고 나자, 그녀가 두 손을 꼭 부여잡는다. 듀이도 그 손을 오래 잡고 있는다.

사람들의 친절함에 마음을 열고 할아버지 이야기도 꺼낸다. 배지도 달고 태극기도 함께 흔들며 사진을 찍는다. 이승만 광장에서 아주 좋은 사람들과 함께 있다고 아버지에게 메시지와 사진을 전송한다.


다음은 처음 접하는 단어를 정리해 보았다.

성큰 가든 (sunken garden)은 지하나 지하로 통하는 개방된 공간에 꾸민 정원을 뜻한다.

의뭉스럽다 : 보기에 겉으로는 어리석어 보이나 속으로는 엉큼한 데가 있다.




제프는 한국에 세 번째 가는데 듀이는 어떻게 한 번도 가보지 않았냐고 묻는다. 듀이가 '미국인이니까요'라고 말하자 회의에 참석한 이들 모두 가볍게 웃는다. 듀이는 '인종할당제'로 입사한 유일한 동양인이다. 요즘 흔히 말하는 '자기 객관화'가 부족한 인물이다. 그가 백인이어도 웃었을까? 상황 판단을 잘하지 못하는 것 같다.


차별에 대해 생각한다.

백인만 사는 동네에서 한국계를 철저하게 감추는 부모님과 사는 듀이는 너무나도 매끄럽게 미국인이라고 생각한다. 차별받지 않기 위한 부모님의 몸부림에서, '인종할당제'덕분에 입사한 동양인 듀이의 처지에서 차별을 본다. 그의 처지와 다를 바 없는 한국의 고급 아파트에서 그는 의외로 차별을 느낀다. 사람은 처지가 바뀔 때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것 같다. 자신의 정체성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것이라는 작가의 암시가 보인다.


정체성에 대해 생각한다.

정체성이란 무엇인가? 먼저 내가 나를 어떻게 인식하는가. 그리고 타인이 나를 어떻게 부르는가. 다음은 내가 나를 어떻게 소개하는가이다.

내가 나를 어떻게 인식하는가?

동양인밖에 없는 행렬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자, 자신이 외국인이어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한국계 동양인인 그를 어느 나라 사람이라고 생각할까? 듀이는 자신을 백인이라고 인식하는 것은 아닐까?

타인이 나를 어떻게 부르는가?

나보다도 더 미국인 같다는 제프의 말이 듀이에게 어떻게 들렸을까? 만약 당신에게 나보다 더 한국인 같다고 말하면 어떤 기분이 들까? 한국인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지 않을까? 외국인에게 말해도 외모, 행동을 특정 기준에 맞춘 것이어서 기분 나쁠 수 있다. 듀이는 기분 나빠야 했다. 자신을 어떻게 부르는지 깨닫지 못한다.

내가 나를 어떻게 소개하는가?

당신이 아주 소중하다는 말이 듀이의 마음에 균열을 일으킨다. 성조기를 들고 있는 광장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미국인의 이름이 방명록에 중요하다. 철저히 미국인으로 대하며 한국을 소개한다. 반면 듀이는 당신이 아주 소중하다는 말에 감동을 받아서 할아버지의 나라, 아니 우리의 나라라고 생각한다. 공항에서 듀이는 나와 다른, 나와 닮은 사람들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앞으로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며 살지 궁금해진다.


매끈한 구 같은 세계에 대해 생각한다.

영화 '매트릭스'는 힘겨운 현실을 지켜내려는 사람과 매끄러운 가상에 안주하려는 사람과의 대결 구조다. 영화 '이퀄리브리엄'에서는 기쁨, 분노, 사랑, 슬픔 등의 감정이 없는 매끄러운 사회 질서를 지켜내려 한다. 나치 독일이 주장한 매끄러운 아리아(백인) 우월주의는 학살·인종청소·인종 분리 등 극단적 폭력과 억압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활용되었다. 내가 추구하는 매끄러움은 무엇인가? 내가 속해있는 집단, 사회에서 추구하는 매끄러움은 무엇인가? 그것이 옳은 것인지, 나는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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