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모노

성해나 '혼모노' 단편집

by 김희진

30년간 함께 했던 장수할멈은 밥은 꼭 고두밥으로, 찬은 고춧가루가 섞이지 않은 담백한 것으로, 보양식이라도 비리고 누린 것은 질색한다. 감사 한번 하지 않던 할멈이라도 목단꽃을 바치면 좋아한다. 약과라도 하나 더 놓고, 초도 고급으로 쓰고, 신당을 쓸고 닦는다. 그동안 육고기는 일절 입에 대지 않고 금욕적인 생활을 했다. 그런 할멈이 앞집에 이사 한 신애기에게 들어갔다. 햄버거를 먹고 소스를 듬뿍 바른 너겟을 먹는 신애기에게. 신애기의 신당은 호황이다. 오방기나 간판이 없는 데다 보름밖에 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고 사람들이 찾아온다.


황보 의원에게서서 연락이 왔다. 정치권 근처에서 돌기만 하는 황보가 아내와 다툰 것까지 문수가 맞추자 10년 전부터 그를 따랐다. 그때부터 계속 만나고 있다. 이번에도 당선될 것 같냐고 묻는다. 이 모든 것이 장수할멈 덕이니까 굿 보다 더한 것이라도 해야 한다고 황보가 말한다. 신령이 떠난 문수는 씁쓸한 기분이 든다.

실은, 두 달 전에 이미 신령들이 문수를 떠났다. 재건축을 위해 굿판을 벌이는데 어떤 신탁도 들지 않아서 망신당하고 일감도 끊어졌다.


보현이 전화해서 말한다. 황보가 신애기한테 굿을 맡겼다고. 문수가 상도덕 운운하며 따지러 가서는 신애기한테서 장수할멈을 본다. 할멈이 문수에게 주려고 했던 무형문화재를 신애기한테 준다고 한다. 신애기가 큭큭거리며 조소하는 건 할멈인지 신애기인지,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별이 안 된다. 할멈에게 가졌던 애증과 경외심은 모조리 타버리고 그곳을 뛰쳐나간다. 자신의 신당에 온 그가 화가 나서 할멈상을 들어 올린다. 너무 가벼워서 흠칫 놀란다. 너무 가벼운 할멈상을 집어 던지고 큭큭거리며 웃는다.


굿을 하는 날이 왔다. 장소에 가보니 신애기가 보인다. 황보가 막아서도 물러나지 않는다. 공수를 기다리는 신애기와 마주 선다. 단단한 사과를 토막 낸 날선 칼로 신애기가 혓바닥이며 팔다리를 서슴없이 긋는다. 아무렇지도 않다. 문수도 칼을 휘두른다. 혀가 베이고 팔다리가 베여 피가 흐른다. 드디어 작두를 탄다. 북소리가 거세지고 장단이 빨라진다. 문수가 피를 철철 흘리며 작두를 탄다. 신애기가 놀라서 그만 바닥에 주저앉아 버린다. 휘둥그런 눈으로 올려다보고 황보도 올려다본다. 할멈도 지켜보고 있겠지라고 문수가 생각한다.


다음은 처음 접하는 단어를 정리해 보았다.

공수 : 신령의 뜻을 말·동작·춤·무구 등으로 전달하는 무속의례의 핵심이다. 신령의 뜻을 무당을 통해 인간에게 말로 전달하는 신탁을 뜻한다.




문수는 무당으로 30년을 살았다. 신내림을 받아 젊음도 즐기지 못하고 돈에 눈이 먼 부모의 착취를 받으며 살았다. 까다로운 장수할멈 비위도 맞추며 평생을 보냈다. 하지만 이제 그는 빛 좋은 개살구 같은 보이차가 되었다. 바나나 우유가 아닌 바나나 맛이 나는 우유 같은 신세다. 흉내만 내는 놈이 돼버렸다. 이제 그는 진짜 가짜가 되었다.

진짜는 무엇이고 가짜는 무엇일까? 가진 재능을 잃어버리면 나는 가짜가 되는 것일까? 정리 해고를 당한다든지 회사가 망하면 나는 가짜가 되는 걸까? 직업이나 재능이 진정한 나일까? 직업은 하는 일이다. 내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다. 성과가 내 가치를 결정짓지 않도록 해야 한다. 직업은 내 삶의 일부일 뿐 전체가 아니다. 문수가 생각하는 명예로운 무당이 아니어도 된다. 오늘의 운세를 보며 살아도 자신을 진짜와 가짜로 나눌 수는 없다.

프랑스 소설가 폴 부르제가 '생각하며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주도적인 삶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한 말이다. 나는 누구인지, 내가 어디에 정체성을 두고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자기 생각, 감정, 가치관을 글로 정리하는 것. 내가 추구하고 싶은 가치를 찾아보는 것.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보는 것. 자신을 객관화하여 바라보는 것. 책을 읽으며 나를 알고 책 토론으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듣는 것. 이런 행동들로 자신의 정체성을 구체화해야 한다.

직장 밖에서 다른 정체성을 만들어서 가치관을 실현할 수 있어야 한다. 좋아하고 관심 있는 일을 찾아서 자기 계발을 해야 한다. 직업이 갑자기 사라질지 모르는 인공지능 시대에는 더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닐까?


문수는 공수를 기다리는 신애기와 함께 칼을 휘두르고 작두를 타며 피를 철철 흘린다. 하지만 마음이 가볍고 자유롭다고 한다. 더 이상 무당이 될 수 없음을 자신에게 부정하지 않아도 되어서일까? 신애기를 시기하지 않아도 되니까? 한때 용한 무당이었음을 증명하는 행동일까? 신애기와 장수할멈과 황보 의원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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