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해나 '혼모노' 단편집
갈월동에 들어선 '국제해양연구소'는 터가 좋은 금싸라기 땅에 들어선 흉물스러운 건물이다. 3년 뒤 1980년에는 '경동수련원'이 그 옆에 지어진다. 하지만 알 만한 사람들은 그곳을 '구의 집'이라고 부른다.
당시 건축계는 암흑기다. 국책을 비판했다고 타국으로 추방당하거나 목소리를 함께 했다고 반체제 인사로 분류되고 있다. 하지만 처세에 능한 여재화에게는 황금기다. 국가산업훈장도 받고 대통령 사저 개축과 대학에서 수업과 연구를 겸하고 있다. 석 달 내로 수련원까지 설계하라며 내무부 장관에게 요구받는다.
보조자가 필요한 상황이다. 구보승은 목표 지향적이거나 야망적이지 않다. 지극히 합리적이고 도식적일 뿐이다. 사회에도 관심이 없다. 자신의 성과를 가로채거나 발상과 사고를 할 인물이 아니다. 건축가로서는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이 일에는 적합하다.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인간이다. 우리가 설계한 공간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다. 세심한 자네에게서 가능성이 본다는 말에 구보승은 눈시울까지 붉히며 열심히 하겠다고 한다.
일이 시작되자, 꼼꼼하고 성실하며 친화력도 좋다. 여재화가 점심으로 빵만 먹어서 속이 더부룩하다고 하니 도시락까지 챙겨 온다. 풍수지리로 땅을 보는 지관인 아버지를 따라 많이 다녔던 구보승은 이곳의 터가 좋다고 한다.
왠지 믿어도 좋다는 마음이 든 여재화가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털어놓는다. '불온세력'을 잡아들여 고문하기 위해 증설하는 시설이라고 말한다. 이런 기밀을 말했는데도 구보승은 무덤덤하다. 지금이라도 손 떼고 싶으면 그렇게 하라고 한다. 잠시 생각에 잠긴 구보승이 확신에 찬 어조로 말한다.
인간을 위한 공간이긴 하니까요. 저는 끝까지 함께하겠습니다. 오늘 선생님께 들은 말은 이 자리에서 다 잊고요.
구보승은 성실하고 열심히 설계한다. 창문이 있으면 밖으로 나가거나 비명이 새어나갈 수도 있으니, 창문을 만들지 말자고 한다. 무엇보다 희망이 생길 것이라고 한다. 복도 천장을 높여 비명이 복도를 울리게 하자고 한다. 그 소리에 다른 이들의 공포가 극대화될 것이라고 한다. 3층 설계를 맡기자, 죽을힘을 다하겠다고 한다.
며칠 뒤 구보승이 수정한 설계를 보여준다. 여재화의 설계에는 공포가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보여준 설계에는 철재로 된 나선형 계단이 있다. 폭이 좁은 수직창을 만들었다며 인간에게는 희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빛이 희망을 가지게 하지만 공간의 형태를 드러내 조사자에게 두려움을 심고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해 무력감을 안길 거라고 한다. 희망이 인간을 잠식시키는 가장 위험한 고문이라고 한다. 철저히 인간을 위해 이 공간을 설계했다고 한다.
다음은 처음 접하는 단어를 정리해 보았다.
도식적 : 사물의 구조·관계·변화 상태 등을 그림이나 양식으로 나타내는 성격이며, 사물의 본질을 밝히려는 창조적 태도 없이 일정한 형식이나 틀에 기계적으로 맞추려는 경향을 의미한다.
구보승이 말하는 인간을 위한 공간이란 무엇인가? 그는 조사자가 두려움을 최대한 느끼고 도망치지 못하게 설계한다. 창문을 설계해서 희망으로까지 인간을 잠식시키게 한다. 고문하는 인간, 가해자를 위한 공간이다. 따라서 구보승도 가해자다.
시간이 흘러 건축물을 찾은 구보승이 정초석에 새겨진 자기 이름을 조심스레 손바닥으로 쓸어내린다. 간밤에 좋은 꿈을 꾸었다고 한다. 이쯤 되니 저절로 '이런 미친'이라며 욕설이 쏟아져 나온다. 최근에 '고문 기술자' 이근안이 사망했다. 그는 10여 년간 도피 생활을 하다 자수해서 7년간 복역했다. 출소 이후 목사로 활동했다고 한다. 나중에 목사직을 박탈당했다. 스스로 물러난 게 아니다. 기가 찬다. 구보승과 이근안 둘 다 자신이 가해자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욕망이 인간을 지배하면 맹목적으로 추구하고 도덕적으로 무감각해진다. 사회적 통념이나 일반적인 상식에서 벗어난 무개념한 인간이 된다. 구보승은 설계자로서, 이근안은 경감으로서 자기 능력과 자기 효능감을 발휘하고 만족감을 느낀다. 욕망에 적극적이고 열정적이다. 다른 사람의 처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여재화 또한 욕망에서 자유롭지 않다. 자기 뜻이 아니라면서도 구보승의 설계대로 진행한다. 마지막 감리를 볼 때도 수정하지 않고 허락한다. 고문실을 만들기 위해서 '인간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며 구보승을 설득한 그다. 설계가 완성하자 자신은 인간을 파괴하는 공간을 만들라고 가르친 적이 없다고 한다. 설계자란에 자신의 이름마저 지우며 도덕적 책임을 돌린다. '구의 집'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위선적인 행동도 한다.
구보승은 어쩌면 여재화의 거울이다. 여재화의 이상과 욕망의 얼굴을 비춘다. 도덕적인 짐을 구보승 앞에 내려놓더라도 자기 거울 앞에 내려놓을 뿐이다. 거울 앞에서 자신이 분리될 수 있을까? 여재화의 말대로 인간을 깊이 이해해서 공포와 불안, 고통과 희망으로 고문하여 파괴하는 고문실을 만들어 냈다. 자기 욕망의 거울이 구보승이다.
최근에 '디즈니 플러스'에서 '데어데블 본 어게인'을 봤다. 악당 킹핀이 뉴욕 시장이 된다. 시민들은 그를 검증하기보다 구호가 시원하다며 뽑아준다. 그는 뉴욕을 사유화하기 위해서 정의를 수호하는 데어데블 같은 인물을 제거하려고 한다. 자기 권력을 위해 시스템을 이용하고 바꾼다. 계엄령을 내려도 시민들은 지금처럼 평화로운 시기가 없다며 무고한 사람들의 비명을 외면한다. 곧 닥칠 불행한 처지를 알지 못한다. 우리가 속한 시스템은 어떠한가? 나는 구보승처럼 도식적인가? 사회에 관심이 없는가? 의심하고 비판하며 돌아보아야 한다.
흔히 곧이곧대로 행동하는 사람을 'FM이다'라고 한다. 비판적 사고 없이 구조나 명령에 순응하는 무사유가 거대한 악행을 저지를 수 있다. 특별히 악한 인물이 아닌 평범한 사람일지라도. 이것이 한나 아렌트가 말하는 '악의 평범성'이다.
다른 사람의 처지를 생각할 줄 모르는
생각의 무능은
말하기의 무능을 낳고
행동의 무능을 낳는다.
- 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