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매장이 아닌 파종으로.

드디어 바닥을 딛고.

by 김희진

그 자리에서 바로 계약해도 모자랄 판에 생각해 보겠다니! 미쳤지, 미쳤어! 씨드북 출판사에 계약하겠다고 전화했다. 계약서를 보내고 그림 파일을 보내자, 비로소 내 그림 표현의 부족한 점이 보인다. 하지만 명확하게 알 수 없어서 도서관이란 곳으로 갔다. 그림책이란 것을 봤다. 그동안 그림책 한 권 안 보고 그림책을 그렸다니! 오전에 가서 점심은 굶고 저녁까지 그림책과 책을 봤다. 수많은 그림책을 보고 그림책 쓰는 방법, 책 만드는 방법, 스토리텔링 작법, 글 쓰는 방법, 수필과 시집을 봤다. 간절한 마음으로 사진을 찍고 필사했다. 6개월 동안 미친 듯이 책에 푹 빠져 계약한 그림책을 고치고 또 고쳤다. 하지만 출판사에서는 만족해하지 않는다. 희망이 좌절로 다가온다. 그래도 다시 용접 기능사로 돌아가기에는 늦었다. 아니, 작가로 살고 싶다. '김희진 작가님'이란 말이 가슴에 꽂혀 있다.


2019년이 지나가고 2020년이 왔다. 하나만 붙들고 있을 수 없어서 다른 그림책을 여러 권 그렸다. 『반짝거려』 『행복한 집』 『케이크를 먹는 나라』 『공룡은 딸기를 좋아해』를 그렸다. 『행복한 집』 은 월천상회 출판사와 계약했고 『케이크를 먹는 나라』가 10월, 걸음동무 출판사에서 출간됐다. 씨드북 출판사와 계약한 그림책이 다시 눈에 들어온다. 수정해서 출판사에 보내자, 이제야 비로소 출간할 수 있겠다고 한다.

2021년 2월 『공룡은 딸기를 좋아해』가 걸음동무 출판사에서 출간됐다. 그해 5월, 씨드북 출판사와 계약한 그림책 『목욕 중』이 출간되었다.


걸음동무 출판사는 내 인스타그램(https://www.instagram.com/hj415415)에서 『목욕 중』 이야기만 한다며 섭섭해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그림책을 많이 출간해도 내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그림책은 구미에서 그린 『목욕 중』일 수밖에 없다. 이제부터 내 인생은 활짝 필 것이다. 이제까지의 설움에서 모두 벗어날 것이다. 드디어 바닥을 딛고 일어섰다.



류시화 시인은 말한다. '뿌리를 내려 자신을 매장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을 파종으로 바꾸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매장이 아닌 파종으로 받아들인다면 불행은 이야기의 끝이 아니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