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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더 R Apr 28. 2021

재택근무의 발견

아이가, 내가, 남편이 자란다.

나는 욕심이 많은 #워킹맘 이다.

#친정엄마 또한 욕심 많은 #전업주부 였다.


 내가 막 7살이 됐을 무렵 점심은 #핫도그빵 으로 겨우 때우며 여섯 개의 학원을 다녔다. '왜' 배우는지 알고 싶었는데 엄마는 자세히 설명해주는 성향이 아니다. 그저 혼나기 싫어서 다녔다.

 손가락이 도에서 도가 안 닿는다며 손가락 마디 사이를 볼펜으로 찔러대는 마녀 선생 탓에 나는 딱 한번 기를 쓰고 가기 싫다고 울었던 적이 있다. 엄마는 나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모두가 피아노를 치는데 혼자 못 쳐서 후회할 텐데 분명 엄마에게 고마워할 거라며 타일렀다. 엄마의 말이 맞을 거라 철석같이 믿으며 그녀의 소원대로 #체르니40번 까지 뗐지만 그날로 난  #피아노 를 완전히 잊었다. 젓가락 행진곡과 학교종이 땡땡땡은 자신 있다.

 시간이 많이 흘러서 괜찮은 줄 알았는데 아들내미가 다니는 #어린이집에 학원 많이 다니는 아이들을 지켜보다 보면 그 부모들에게 화가 치미는 걸 보30여 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회복되지 않은 #트라우마 가 내 안에 남아 있었다.


한때 #그로잉맘 의 근무조건을 보고 몇 번을 지원서를 내볼까 부산하게 채용사이트를 들락날락거렸던 적이 있다.

근무시간 : 유연한 근무 시간(시간선택제/자택근무가능/ 필요시 주2-3회 출근)  

새벽같이 출근해서 해가져서 돌아오니 아이들 저녁 먹이고 양치시켜서 재우고 나면 하루가 휙 흘렀다.

그런 하루가 쌓여서 1년이 흘렀고 아이들은 어느새 7세, 4세가 돼있었다. 아이들은 #어린이집 에서 거진 하루 10시간을 지내다 왔다. 엄마와 살을 맞대고 있는 시간보다 선생님 친구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어쩜 더 많았겠다.


#육아 에 관심이 참 많은 #워킹맘 이라 출산이후 줄곧 유연한 직장생활을 꿈꿔왔다. 천지가 개벽하지 않는 이상 내 생애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Covid19 이 세상을 뒤바꿀 줄이야...

그렇게 한 달만 하겠지 했던 #재택근무는 이미 1년이 넘어 내 일상이 되었다. 작년 8월에 이직한 회사는 #OJT 자체도 #줌 미팅으로 진행할 만큼 #재택 에 진심인 회사라 이젠 회사에 가는 것이 너무 어색할 지경이다. 심지어 #슬랙 으로 주로 일하고 보니 가끔 회사에 갈 일이 있어도 모두 #영어 닉네임을 쓰는 환경이라 9개월이나 됐지만 어색해서 인사를 못나눈다. 꽤 외향적인 사람이었는데... 내가 그랬었나 싶다. 점심은 본사가 있는 잠실역 근처에 지인을 불러서 먹거나 혼자 먹거나 굶고 만다. #비대면 근무의 단점은 아무래도 이런 점이 아닐까?

엄마와 함께 하는 #어린이집 #등하원길

처음 재택을 시작했을 때는 늘 가슴 시리게 보냈던 #등하원길 을 동행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함박눈 이 내렸던 어느날 눈이 녹기 전에 함께 뽀드득 뽀드득 걸어보았다.

지난해 겨울은 유난히도 #함박눈 이 많이 내렸다. 그때마다 만감이 교차했다.

늘 회사 창밖으로 잿빛 눈이 쌓이는 것을 보면서 집에 돌아가는 길이 험난할 것이라 고개를 저었고 아이와 함께 거닐지 못함을 속상해하며 곧 눈이 녹아버릴 것을 아쉬워했던 내가 떠올랐다. 동네에 소복이 쌓이 눈은 참 희고 깨끗했다. 누가 먼저 밟기 전에 두 아이를 데리고 잠깐 거닐고 돌아왔다. 회사였으면 동료들과 셀카를 찍으며 기뻐했을 텐데 이제 내 곁엔 동료 같은 두 아이가 있다.

아이들도 10시간 넘게 있는 어린이집의 선생님이 더 가족 같았을까? 재택 전에는 아무래도 회사에 있는 시간이 많으니 그들을 가족같이 생각하게 되었다. 그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수다를 떨었다. 정작 내 가정의 이야기는 들을 길 이 없었다.


#재택근무 가 장기화되면서 일주일에 1번쯤은 아이들 친구 엄마 또는 위층 이웃과 만나 점심을 한다. 그들과 #동네 맛집을 검색하고 #동네한바퀴 를 돌면서 #단골집 이 생기고 전혀 몰랐던 공간을 알게 되는 기쁨을 맛맛았다. 올해 1월 #신규 분양된 아파트로 입주하면서 #위층 이웃과 #층간소음 문제로 소원해진 뻔한 일이 있었는데 그것도 재택근무 덕에 함께 점심을 하며 꽁꽁 언 마음을 풀기도 했다.   

동네 골목길에 이렇게 힙한 #브런치카페 가 있을 줄이야 가격도 #아아 포함 1인당 9000원이라 숨은 보석을 채굴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날도 난 #재택근무 시간 중 내게 주어진 유일한 휴게시간 1시간을 유용하게 썼다. 1호의 친구 엄마 이야기를 들으며 다른 사람이 보는 아이의 장단점을 듣고 #교우관계 도 알 수 있었다.

 언젠가는 해주고 싶었던 #방문학습 도 시작하고 이웃집 엄마가 차로 직접 라이딩을 해준다고 배려해주어  #축구교실 도 보낼 수 있게 됐다.

생애 처음 #축구교실에 갔던 첫째 아이의 함박웃음을 난 잊지 못할 것 같다.


코로나 전에는 어린이집에 무사히 보내기만  하면, 마치 그날 하루의 내 책임을 다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재택근무를 하면서 잘 관찰해보니 #어린이집에서 주는 점심과 간식은 아이의 허기를 다 채우기 부족하다는 것과 7세의 아이에겐 #한글 공부를 매일 꾸준히 가르쳐줄 엄마가 필요하단 사실을 알게 됐다.


또래보다 말이 빨랐고 기저귀를 24개월 만에 뗀 큰아이라 한글은 알아서 깨칠 거라 자만했고 착각했다.

작년 12월 발등에 불이 떨어져 불안에 떨고 있었다. 블로그를 촤라락 검색해보니 #국민 한글책 #한글이 야호 가 나왔다. 당장 #로켓 배송으로 주문하고 매일 30분씩 가르치기 시작했다.

첫째 주는 'ㄷ'과 'ㅁ' 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큰아들 에 멘붕이 왔다. 인내심이 폭발하기 직전이라 잠시 #대학생 알바를 고용해볼까 고민하다가 끝없이 올라오는 '욱'을 다스리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1년 안에는 되겠지? 학교 가기 전까지면 된다고 했어' 스스로를 위로했다. 내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해맑게 웃으며 되려 천천히 연습하면 되는 거라고 아이가 응원해주었다.  

의심쩍었던 #한글이 야호 2의 위력은 대단했다. 한 달 만에 기초 자음 4권을 끝내고 아들은 자음을 구분하여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2달이 흘렀고 간단하게 #야호에게 편지를 쓰기도 했다. 직접 가르친 지 2개월 만이다.

7세여서 더 빠른 속도를 보인 것도 있지만 나의 작은 관심과 지지 속에 아이가 성장한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재택을 하면서 가장 좋은 점은 빨래를 돌려놓고 까먹어서 옷에서 쉰내가 난다거나 썩어서 버리는 #음식쓰레기 눈에 띄게 줄었다는 것이다. 또, 아무 때나 아파트 #소독 #하자보수를 들일 수 있게 됐다.

자녀뿐만 아니라 내가 일하며 사는 '내 집'도 '남편'도 다 가꿀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나에게도 가끔 재택 #슬럼프 가 온다. 위에 나열한 그 많은 장점들은 결국 이 작은 몸뚱이 부지런히 놀려 얻은 결과이기 때문이다. 난 모든 것을 제 때에 해내기 위해 새벽부터 일어나 아침밥을 짓고 업무 스케줄을 정리하고 아이들의 학습을 돌봐주었다. 하나 만해도 힘든데 동시에 여러 가지를 하니 지치기 일수다.

그럼에도 잘 자라주고 있는 아이들을 보며 오늘 하루도 힘을 내며

'재택근무의 발견' 일기를 써본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엄마가 필요하고, 난 돈이 필요했는데 몹쓸 #코로나바이러스 지만 내덕에 내가 이렇게 살아본다며 오늘 하루도 감사하게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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