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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더 R Apr 06. 2021

덜컥 결혼을 했다.

숙제하듯이, 외로워서

24살 젊음을 한창 즐길 나이에 "내 이름은 김삼순" 이란 몹쓸 드라마에 빠졌다. 2021년의 감수성으로 보면 여론의 뭇매를 맞고 퇴출됐을 법한 드라마들을 연애의 교본으로 삼았으니 왜 일만 하며 모태솔로로 20대를 보냈었는지 알만하다.

서른 살이 되자마자 김삼순의 어두운 그림자가 내 삶에 드리워졌고, 회사 동료가 주선해준 소개팅에 나갔다.

키 작은 국가 공무원 동갑내기가 나와있었다. 파스타, 샐러드까지 인당 가격을 책정하는 꼼꼼함에 정나미가 뚝 떨어졌다. 심지어 결혼을 목적으로 나온 것까지 나와 닮아있었다. 동족이니까 한눈에 알아봤다. 파토의 낌새를 눈치챘는지 그는 '30살 넘었으니 너무 재면 안된다'며 협박 섞인 조롱을 보냈다. 잠시 잠깐 노처녀로 남겨질 두려움에 여러 번 더 만나볼까 흔들리다 고개를 저었다. 결혼 후에도 저런 얘길 들으며 보수적이고 계산적인 한국 남자와 결혼해 평생을 함께할 자신은 더더욱 없었다.


결혼식은 그해의 유일한 달성 목표가 됐다. 무서운 열심으로 일주일에 2~3번씩 소개팅을 하며 6개월을 보냈고 결국 난 넉다운됐다. 속마음을 잘 숨기지 못하는 난, 늘 얼굴 한 조각에 외로움이 묻어 있었다.


그러던 중 교회 예배에서 한 외국인을 만났다. 늘 쫓기듯 사는 나와는 다르게 여유로운 그를 만나면 안심이 됐다. 이 사람과 결혼하면 '빨리빨리' 한국을 떠나 자유로운 삶을 영위할 것만 같았다. 그와 만난 지 6개월이 됐을 때 나와 결혼해주지 않으면 헤어지자고 엄포를 놓았다. 적어도 2년은 연애를 해봐야 한다고 생각했던 그는 내 성급함에 동공이 심하게 흔들렸다. 하지만 단단히 각오를 한 나와 헤어질 길밖에 없다는 걸 안 그는 본국으로 돌아가 가족의 허락을 받아왔다.  그렇게 난 소개팅을 전전하는 삶에 마침표를 찍었다. 숙제하듯, 외로워지기 싫어서 내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결혼을 했다.


신혼여행이 끝나고 현실을 마주한 나는 더 극심한 외로움에 사무쳤다. IT매니저로 일했던 그는 나와 밤낮이 달랐다. 내가 퇴근을 하고 나면 그는 근처 카페로 출근을 했다. 9호선 급행 지옥철에 부서져라 몸을 욱여넣을 때 그는 유유자적 자전거를 타고 한강으로 향했다. 서운함은 쌓이다 못해 폭발했고 그는 외롭다는 내 울부짖음에 짐짓 당황했다.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줄곧 봐오던 가짜 신혼의 달달함은 1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와르르 무너졌다. 우리는 치열하게 전투했고 끝이 없는 설전을 벌였다. 내가 선택한 남자에 대해 뭔가 단단히 착오가 있었던 것 같았다. 다들 행복하게 잘 살거라 생각했을 테니까 그 누구와도 만나자고 쉬이 불러낼 수 없었고 친정 식구들은 오해할까 봐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했다. 그러니 결혼 전보다 몇 배는 더 외로웠다. 어쨌든 내 집에 사는 나 자신과 남자와 담판을 지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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