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살 젊음을 한창 즐길 나이에 "내 이름은 김삼순" 이란 몹쓸 드라마에 빠졌다. 2021년의 감수성으로 보면 여론의 뭇매를 맞고 퇴출됐을 법한 드라마들을 연애의 교본으로 삼았으니 왜 일만 하며 모태솔로로 20대를 보냈었는지 알만하다.
서른 살이 되자마자 김삼순의 어두운 그림자가 내 삶에 드리워졌고, 회사 동료가 주선해준 소개팅에 나갔다.
키 작은 국가 공무원 동갑내기가 나와있었다. 파스타, 샐러드까지 인당 가격을 책정하는 꼼꼼함에 정나미가 뚝 떨어졌다. 심지어 결혼을 목적으로 나온 것까지 나와 닮아있었다. 동족이니까 한눈에 알아봤다. 파토의 낌새를 눈치챘는지 그는 '30살 넘었으니 너무 재면 안된다'며 협박 섞인 조롱을 보냈다. 잠시 잠깐 노처녀로 남겨질 두려움에 여러 번 더 만나볼까 흔들리다 고개를 저었다. 결혼 후에도 저런 얘길 들으며 보수적이고 계산적인 한국 남자와 결혼해 평생을 함께할 자신은 더더욱 없었다.
결혼식은 그해의 유일한 달성 목표가 됐다. 무서운 열심으로 일주일에 2~3번씩 소개팅을 하며 6개월을 보냈고 결국 난 넉다운됐다. 속마음을 잘 숨기지 못하는 난, 늘 얼굴 한 조각에 외로움이 묻어 있었다.
그러던 중 교회 예배에서 한 외국인을 만났다. 늘 쫓기듯 사는 나와는 다르게 여유로운 그를 만나면 안심이 됐다. 이 사람과 결혼하면 '빨리빨리' 한국을 떠나 자유로운 삶을 영위할 것만 같았다. 그와 만난 지 6개월이 됐을 때 나와 결혼해주지 않으면 헤어지자고 엄포를 놓았다. 적어도 2년은 연애를 해봐야 한다고 생각했던 그는 내 성급함에 동공이 심하게 흔들렸다. 하지만 단단히 각오를 한 나와 헤어질 길밖에 없다는 걸 안 그는 본국으로 돌아가 가족의 허락을 받아왔다. 그렇게 난 소개팅을 전전하는 삶에 마침표를 찍었다. 숙제하듯, 외로워지기 싫어서 내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결혼을 했다.
신혼여행이 끝나고 현실을 마주한 나는 더 극심한 외로움에 사무쳤다. IT매니저로 일했던 그는 나와 밤낮이 달랐다. 내가 퇴근을 하고 나면 그는 근처 카페로 출근을 했다. 9호선 급행 지옥철에 부서져라 몸을 욱여넣을 때 그는 유유자적 자전거를 타고 한강으로 향했다. 서운함은 쌓이다 못해 폭발했고 그는 외롭다는 내 울부짖음에 짐짓 당황했다.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줄곧 봐오던 가짜 신혼의 달달함은 1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와르르 무너졌다. 우리는 치열하게 전투했고 끝이 없는 설전을 벌였다. 내가 선택한 남자에 대해 뭔가 단단히 착오가 있었던 것 같았다. 다들 행복하게 잘 살거라 생각했을 테니까 그 누구와도 만나자고 쉬이 불러낼 수 없었고 친정 식구들은 오해할까 봐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했다. 그러니 결혼 전보다 몇 배는 더 외로웠다. 어쨌든 내 집에 사는 나 자신과 남자와 담판을 지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