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는 버버리도 입더라

공순이가 온라인 마케터가 된 사연

by 마더 R

KBS 스페셜 '사람에 집중하라' 편을 보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패션 브랜드 올세인츠 대표 인터뷰가 시작됐는데 명품B사에서 유일한 아시아인이자 한국인 부사장이었다고 소개를 하고 있었다. 인턴으로 일하면서 접했던 W는 뱅 앤 올룹슨 같은 고가의 디지털기기에 관심이 많았다. 런던 가서 인정받고 있다는 소문은 전해 들었지만 이직해서 다른 브랜드의 대표가 돼 다큐에 나올 정도로 유명한 분인지 몰라 뵈었다.


여전히 어눌하지만 알아듣기 쉬울 정도로 한국말을 잘 구사하는 윌리엄을 보고 배신감에 분이 올라왔다.


입사 후 다른 팀 인턴들의 전공과 학교를 대충 파악해보니 의상학, 경영학을 전공한 것도 아닌 어중간한 나를 고용했던 이유는 정말 열정과 영어를 좋아하기 때문 그 이유 하나였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나와 페어로 일했던 J대리는 2002년 법인을 설립할 때 유로통상에서 넘어온 인력 중 하나였다. 유로통상에서 넘어온 사람들은 대부분 영어를 잘하지 못했다. 하지만 다들 자기 맡은 바 본분, 아니 그 이상을 성실히 해냈다. 오히려 직접 고용한 사람들이 영어와 정치를 잘해 일을 대충 해도 승승장구했다. 그게 100번 이상 서류를 떨어지며 긴 터널을 지나 그토록 배우고 싶었던 사회의 첫인상이었다.

내가 지켜본 J대리는 하드웨어 전공이지만 70명이나 되는 본사 직원들의 모든 컴퓨터의 에러와 잡무를 도맡았다. 그중 무엇보다도 어려운 일은 윌리엄 킴의 모든 사적 심부름 왜냐하면 말이 빠르고 한국어가 어눌해 무슨 말을 하는지 정확히 알아듣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또 못 알아들으면 엄청 평가절하됐다. 안 그래도 영어 포비아가 있었던 J대리는 내가 입사하자마자 W에 대해 이것저것 들려주며 앞으로 윌리엄이 부르면 같이 들어가서 무슨 말을 했는지 잘 기억하고 있으라는 미션을 주었다.

그렇게 뱅 앤 올룹슨 사건이 발발했다.


중요한 것은 난 공순이 었다. 난 그때 버버리와 닥스도 구분 못하는...

트렌드에 대해 아웃 오브 안중이었던...

W는 입사한 지 채 한 달 밖에 되지 않은 날 멘붕에 빠뜨렸다. 영어라고 하면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는 J대리는 늘 그날도 나를 앞 장세 워 사장실에 데려갔다.

뱅 앤 올룹슨 사건이 발발하고 난 뱅 앤 올룹슨이 뭔지 그 존재를 알아차렸다.

아이리버가 최고였던 나에게 30여만 원이 넘는 그 비싼 블루투스 이어폰을 사는 대표의 마음은 정말 당최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뱅~어쩌고를 사 오라고 말했는데 난 그게 무슨 말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날 처음 접한 브랜드였으니. 그날 난 J대리가 준 미션 수행에 처참히 실패했다.

사무실에서 나와 하얗게 변한 머리를 쥐어뜯으며 초록색 창에 뱅으로 시작하는 단어들을 두들겼다.

결국 우리는 뱅이 뱅 앤 올룹슨일 거란 합리적 유추를 했다. 그렇게 운 좋게도 그날 사건은 문제없이 해결될 수 있었다.


나를 담당한 상사는 왜소한 C였다. 고려대 수학과를 졸업하고 전 직장이 P&G인 그래서인지 자신감이 늘 뿜 뿜 했다. 난 겨우 158cm밖에 되지 않는데 나보다도 작고 말랐으니 정말 작은 체구를 가졌지만 야망만큼은 거인 같은 여자였다. 그 작은 체구로 어떻게 아이를 낳았는지 상상이 되지 않았으나 아이가 하나 있는 워킹맘이라고 소개했다. 두 아들을 둔 워킹맘이 된 후로 그 시절을 돌이켜보면 그녀는 나와 다르게 전혀 워킹맘 느낌이 나지 않았다. 싱글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만큼


난 겨우 70만 원의 열정 페이로 일하는 인턴이었지만 내 상사가 요청하는 오더를 뭐든 해내기 위해 밤 12시까지 야근도 불사했다. 그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난 기쁘고 즐거웠다. 그 전까진 그 누구도 내게 업무를 주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그곳에서 겨우 6개월의 시한부 인턴이지만 누가 또 알 까 정직원의 기회가 주어질지

그렇게 스스로를 희망 고문하며 그러나 즐겁게 6개월을 보냈다.


하지만 70만 원의 급여로는 점심식사와 교통비를 해결하기조차 버거웠다. 난 인턴이라 마음이 가볍기도 했고 옷을 편하게 입고 다녔는데 어느 날 윌리엄이 직원들을 모아놓고 우리는 럭셔리 패션 브랜드고, 직원들도 그와 맞게 옷을 입었으면 좋겠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패션감각이 없으면 그냥 까맣게 입으면 된다고 조언했다.

Black is always right

그 문장은 지금까지도 내 마음에 새겨놓았다. 그건 정말 백 번 천 번 옳은 말이다. 까맣게 입으면 돈을 크게 들이지 않아도 패션센스가 중간은 간다. 당시 눈치 없는 나도 그 말은 날 저격하는 말로 느껴졌다. 그래서 그날 엄마에게 부탁해 엄마카드 찬스로 검정 옷을 몇 장 긁었다.


아무튼 상사 C는 2006년 개봉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메릴 스트립 못지않게 인턴이었던 날 개인비서로 아무 때나 부려먹었다. 그녀의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한다고 하여 백화점이 문 닫기 전에 부리나케 뛰어 책가방을 사 왔고 중요한 협력사에 카드 보낼 일이 있다고 하면 비싸 보이는 카드를 몇 장 구매해 손에 쥐어주었다. 물론 감각이 없다며 한심한 눈빛을 쏘아될 때도 많았지만

지금 생각해도 억울한 게 메릴 스트립은 그래도 편집장이었잖아!!


2007년 12월 31일 한해의 마지막 날 짧았던 계약직 인턴의 종지부를 찍었다.

내가 꿈꿨던 희망고문이 끝났고 냉랭한 청담사거리에서부터 문정동까지 발이 부르트도록 걷고 걸었다.

굵은 눈물 줄기가 주룩주룩 흘렀다. 소리 없이 울음을 삼키며 차가운 겨울 거리를 걸었다.

다시 끝을 알 수 없는 불가능의 터널에 들어와 있었다.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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