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

온라인 마케터 12년의 여정

by 마더 R

이커머스가 뭔지도 모르고 첫발을 내디뎠는데 벌써 12년 차 과장이 되었다.


가장 완벽한 계획은 무계획이야.

인생은 계획을 하면 모든 계획이 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법이거든

-영화 <기생충> 중에서-


온라인 마케터가 되겠다며 진지하게 로드맵을 그렸다면 이렇게까지 올 수 있었을까?

그저 여느 직장인처럼 3.6.9의 고비가 늘 있었고 딱 3개월만 선배 욕 버텨보자 하다가 맥북 지르고 카드값 다 갚을 때까지 버텨보자에서 결혼할 때까지만 다녀보자가 됐다.

그렇게 어느덧 난 아이 둘을 기르는 워킹맘이 되어있었다.


무계획이 완벽할지라도 그렇다고 내가 목표가 없이 사는 사람은 결코 아니다.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남기는 지금 감회가 새롭다. 1년 전 호기롭게 브런치 작가 도전을 했다가 퇴짜를 맞았다. 이후 블로그에 꾸준히 글을 썼고 그리고 나서 1년 만에 재도전한 끝에 브런치에서 작가라고 불러주셨다.

지인들에게 가끔 내꿈을 말한다. 그중 한가지는 책이었다. '난 꼭 내 삶에 대해 책 한 권은 낼 거야'

멋진 꿈이야 라고 응원을 해주기도, 어이가 없어하기도 했다. 그걸 말하는 나도 진짜 해낼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입 밖으로 내뱉게 되면 사부작사부작 그 꿈을 향해 가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스스로에 대한 약속을 지키기위해 한 꾸준한 연습이 라인 마케터인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2007년의 마지막 날 그 어떤 날 보다도 차갑게 느껴졌던 청담사거리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너무 막막해서
발이 부르트도록 걸었다.

내 손 안엔 단 3가지 6개월의 인턴경험, 영어 자소서, 한글 이력서가 있었다.
외국계 기업에서 시작했으니 외국계 기업으로 가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어 피플앤잡을 매일 들어갔다. 거기에 처음 보는 회사가 있었다.
롯 데 닷 컴

업무 상세 상황을 여러 번 다시 읽어봐도 전혀 모르는 듣보잡인데 전문가들이 절대 하면 안 된다고 조언했던 묻지 마 지원을 했다.
'생계를 유지해야 하니 일단 모르겠고 지원하고 보자.'
당시 온라인팀장님은 공순이면서도 영어 이력서를 잘 준비한 데다, 명품에서 일했던 이력을 독특하게 보셨다. 나중에 들어보니 당시 L사에서 B사 짝퉁을 팔다가 아예 몇 년간의 판매 권한을 뺏겨버렸다고 한다. 뭐 그건 나와 전혀 상관없는 이슈였지만 아쉬움이 있었던 걸까 그래서 공채가 아닌 특채로 '라이브 커머스' 담당 인턴으로 채용이 됐다.
1차 면접은 팀장님이 보시고 2차 면접은 대표님 이하 이사님들과 봤는데 1차 면접 후 팀장님은 걱정스러웠는지 이커머스에 대해 전혀 모르는 날 위해 2차 면접 전에 공부해오라고 이것저것 팁을 주셨다. 덕분에 떨지 않고 잘 포부를 설명해서 결국 무사히 통과하고 이커머스 업계로 발을 들이게 됐다.

사회생활을 막 시작했던 그 당시는 2008년 2월이었다.
부모님께 L이란 회사가 있어서 온라인 마케터로 일하게 됐다고 설명했더니
'L은 *데백화점과 같은 거야? 어떻게 직접 보지도 않고 물건을 사? 괜찮은 회사 맞니?'라고 질문하셨던 기억이 난다. 20대 초반 이긴 했지만 나 또한 온라인으로 뭘 사본적이 없는 보수적인 사람이라 그곳에 속해 일하면서도 L사에서 수십만 원을 결제하는 고객들이 참 신기하고 대범하게 느껴졌었다. 직원들만 사는 거 아닐까?라는 오해를 하면서 말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고객들은 나와 비슷했다. 그래서 그 시절엔 백화점을 끼고 있는 대기업이 백화점/마트/영화관 고객을 대상으로 영수증 이벤트를 하면서 신규 고객을 유치하고 온라인 사업의 신뢰도를 얻었다.
그렇게 이커머스를 시작했던 기업이 L사, H 몰, AK 몰, 신세계몰이다.
그 당시 L사 슬로건이 '백화점을 인터넷으로'이다. 다시 읽어봐도 이 슬로건에서 신뢰를 얻고자 함이 마구 느껴진다. 최근에 슬로건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궁금해서 L사를 검색하니 lotteon으로 자동으로 바뀌어서 통합 페이지가 떴다. 그래도 한때 몸담았던 곳인데 아예 사라져 롯 데온으로 떠버리니 기분이 묘하면서 섭섭한 마음이 든다.


'라이브 커머스' 담당 인턴으로서 맡았던 코너는 '깐깐 라이브'라는 5분짜리 동영상 쇼핑이었다. 온라인 쇼핑의 마켓셰어가 크지도 않았는데 라이브 커머스라니 시기상조였다. 결국 6개월 정도 운영하다가 인지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인턴생활도 끝인가 했는데 성실히 일하는 모습을 좋게 봐주셔서 정직원으로 고용이 됐다.


시작이 독특해서였을까? L사에서 새로운 시도는 모두 나에게 주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가이드라인이 전무한 일이라 맨땅에 헤딩하는 일들이었기 때문이다. 숙련된 선배들은 더 중요한 마케팅 캘린더 짜기, 전략 세우기 등등이 맡겨졌고...


누군가에게 늘 새로운 일은 스트레스일 수도 있겠지만 ESFP성향을 가진 나에겐 딱이었다.

똑같은걸 반복하는 건 정말 지루하니까. 그래서 실험실을 박차고 나온 내가 아닌가!


그런 새로운 일중의 하나가 페이스북 공식 계정을 담당하는 일이었다.

명품 화장품 카테고리를 브랜딩 하면서 회사의 페이스북 계정을 담당하게 됐다.
당시 대기업 중 공식 페이스북 계정을 운영하는 회사는 국내 10개뿐이었고 페이스북코리아 직원도 단 1명이었던 시기였다. 지금은 몇 명일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한국어로 된 페이스북 관련 서적이 없어서 영문으로 된 서적을 공부하고, 운영자 모임에 가서 궁금한걸 하나하나 묻고 해결하며 업무를 했던 기억이 난다. 정말 신입이라 모든 게 가능했던 시절이다. 직접 SNS 마케팅을 맡게 되면서 트위터에 올라온 Olleh KT의 ‘지금 만나러 갑니다’ 이벤트에 일부러 참여한 적이 있다.
땀이 송골송골 맺혀서 열정적으로 진행하는 담당자의 모습을 보고 진정성에 감동을 받고 나도 그런 마 케터가 될 테야 다짐하며 돌아왔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저렇게 난 프로모션/이벤트 담당자로서

짧은 기간 동안 여러 가지 경험을 해보며 약 3년간의 경력을 쌓을 수 있었다.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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