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 접어 넣어둘 여행에 대한 기억
한 달 반토막 짜리 여행이 끝나간다.
여행이 끝나면 내내 부풀었던 마음을 다시 접어 캐리어와 함께 옷장 속에 고이 넣어두어야 하기 때문에 아쉬움을 끄적인다.
아이들이 유아이거나 임신 중일 때는 오래 걷고 또 걸어야 하는 도심을 여행한다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그동안 동남아 휴양지만 돌다 올해 처음으로 한국나이로 9세, 6세가 되는 두 아이를 데리고 도쿄 도심에 도착했다.
그리웠던 도쿄
도쿄는 12년 전 회사 내 유명한 일본통 이사님과 출장으로 왔었다. 박학다식한 분이라 가이드를 정말 잘 받기도 했지만 당시 도토루 커피를 마시고 로손편의점의 신선한 오니기리를 먹으며 이 퀄리티가 어떻게 가능하냐며 두 눈이 휘둥그레졌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당시는 동전파스, 휴족시간, 아이봉, 호로요이 등이 한국에 수입되지 않아 20대 보부상들이 블로그를 통해 공구마켓을 열어 활약할 때였다.
일본 망가를 좋아해 일어가 유창한 전 직장 동료가 눈빛을 빛내며 보부상으로 활약만 해도 1년 동안 일본 3~4번 가고도 여행비가 보전될 정도로 쏠쏠하다는 후일담을 들려주곤 했었다. 그러나 이후 도쿄에 2011년 3.11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하는 동일본 대지진이 있었다.
그 이후로는 정말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3년 간의 코로나 기간 동안 가장 그리웠던 여행지는 지척에 있으면서도 닿지 못했던 도쿄였다.
여행준비
여행을 떠나기 한 달 전 가장 걱정스러웠던 것이 2호가 여전히 밤중기저귀를 떼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 달 동안 훈련을 했다. 6세가 돼서 그런 걸까 신기하게도 정말 단 한 번의 실수가 없었다. 약 10일이 돼가는 이곳에서도 실수를 하지 않아 매일 아침 6세 형님의 어깨 뽕이 올라간다.
짠내투어 콘셉트이라 택시를 최소화하고, 지하철로만 이동할 거라 아이들을 위해 엉성하게 여행계획 뼈대를 세웠다. 나머지는 비워두었고 호텔로 돌아온 저녁, 편털음식을 먹으며 그날의 여행을 복기했다.
하루 종일 구글맵을 검색하고 걷고 걸으며 마음속에 담은 것들이 참 많았는데 아이들에게 '어떤 것이 가장 기억이 가장 남아?' 물으면 '좋았어.'라고 짧게 대답했다. '조금만 자세히 말해주면 안 돼? 잘 생각해 봐' 하면 '진짜 좋았어'라고 진심으로 말하는데 허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남편과 머리를 맞대고 다음날 어떤 곳으로 이동할지 무엇을 하며 뭘 먹을지 간략한 회의를 했다.
첫 용돈, 천 엔
떠나기 전날 밤 두 아이의 가방을 하나씩 꾸려 들려주며 천 엔을 손에 쥐어주었다.
'이건 한국에서 만원의 가치와 같아.'라고 설명하자 지금까지 겨우 천 원만 받아본 아이들의 두 눈이 휘둥그레지며 이내 환호했다.
"도쿄에 가면 포켓몬카페에 갈 거고, 디즈니랜드도 갈거라 정말 사고 싶은 게 많을 거야. 하지만 예산은 천 엔이니까 정말 신중하게 골라야 해 결제하고 포장 뜯고 후회해도 소용없어. 그러니 보고 또 보고 비교해 보고 정말 사고 싶을 때 사도록 해. 정말 갖고 싶은 게 있는데 천 엔을 넘는다. 그렇다면 실망할 필요는 없어 그것이 단 하나라면 엄마아빠가 고민해 보고 돈을 보태줄 용이도 있어."라고 주의사항을 읊자 특히 1호의 표정이 결연해졌다.
사실 아이가 용돈을 잘 써줄지에 대한 일말의 기대가 없었다. 첫 일정이 포켓몬카페이니 휘리릭 '가차' 2번 돌려 써버릴 수 도 있을 거라고 얕잡아 봤다. 그러나 1호는 여행 중반까지 고이 간직하다 돈키호테에서 자신을 위한 선물을 샀다. 그런 2호를 관찰하더니 첫날 500엔을 써버린 2호는 그날 함께 나머지 300엔을 사용했다. 아이들이 돈의 가치를 알게 된 것이 이번 여행의 수혜들 중 하나였다.
든든한 꼬마 가이드
1호는 여행 첫날부터 우리 가족의 공식 여행가이드가 됐다. 구글맵을 켜고 라이브뷰를 따라 앞장서면 우리는 그 뒤를 따랐다. 녀석은 여행하는 내내 보조가방에 스이카(일본 교통카드)와 호텔방키를 보관하고 관리하는 중요한 일을 도맡아주었다. 그는 단 하루도 허투루 리더를 하지 않았고 카드나 돈을 분실하는 일도 없었다. 엄마아빠가 호텔로 향하는 지하철 출구를 헷갈려 헤매는 모습을 몇 번 관찰하더니 종이 쪼가리에 자주 이용한 지하철역 출구를 메모해 가방에 쏙 넣어 다니며 자랑스레 보여주었다.
방향감각이 전무한 내게 정말 유용했던 구글맵 라이브뷰
에필로그
재택 워킹맘으로 아이들 키우랴 일하랴 정신이 없었던 3년이었다.
아침 7시 반에는 1호 학교 아침셔틀 알람이 오후 5시에는 귀가 셔틀알람이 울렸다. 알람을 다 껐을 거라고 안심했을 때 오후 6시에 태권도 셔틀 도착알람이 울렸다. '이렇게 분주하고 정신없이 하루를 살아냈었지'라는 감상에 젖었다.
오랜만에 오직 '여행'이라는 유일한 목표를 가지고 하루하루를 보냈다. 함께 헤매고 작은 공간에서 먹고 잤다. 카드를 쓰지 않기로 결심하고 환전을 충분히 해왔지만 여행을 하면 할수록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정된 용돈 내에서 어떻게 잘 쓸지를 함께 고민하고 뚜벅이 여행을 했다. 아이들은 여전히 어렸지만 잘 따라와 주었다. 그래서인지 다음 여행지의 짠내투어도 기대가 된다. 나중에 아이들이 커서 도쿄거리를 다시 걸을 때 이 추억을 되새기며 작은 발걸음에 힘이 되어주기를 바라본다.
여행 필수품
여행의 진짜 길잡이가 돼줄 스마트폰과 와이파이도시락
잠자기 전 넷플릭스나 유튜브를 함께 시청할 수 있는 노트북 (호텔 TV에 HTMI단자가 있어 정말 유용했다.)
반드시는 아니지만 아이패드 (칭찬스티커가 다 모이면 15분 포켓몬게임을 허락했다.)
여행의 기억을 되짚어줄 아이의 그림일기장
아이가 생각을 끄적거릴 수 있는 무지 연습장, 색연필, 사인펜, 필기도구
보조가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