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의 낭만
재작년부터 올해까지 호두까기인형만 세 번째 관람이에요. 첫해는 발레가 무언극이고 2호가 겨우 5살이라 실제 공연장에 가는 것이 많이 꺼려졌습니다.
아이는 핑계고 발레는 제게도 익숙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때 눈에 띈 것이 메가박스에서 하는 영국로열발레 공연실황이었어요. 영화관에서 보는 것인데도 세상에나 1인당 4만 원꼴로 후덜덜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미리 아이들과 30분짜리 유튜브클립을 보고 갔는데 공연을 이해하는데 큰 역할을 했어요.
신기하게도 아이들이 졸지 않고 끝까지 관람하더라고요. 고마운 녀석들
세 번 모두 중국인형 장면이 가장 설레고 재밌었어요.
첫해보고 혼자 결심했던 것이 매년 연말이 되면 호두까기인형을 관람하자였어요. 작년에는 예매 때부터 남편이 두 번 보는 것은 결사반대라며 막아서더라고요.
불행 중 다행으로 12월 23일이 생일이거든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생일선물로 받고 싶다 말하니
물러서줬습니다. 그래서 또 영화관에서 관람을 했어요.
마침내 올해 예술의 전당에서 국립발레단의 공연을 관람했어요. 3년째 보니 아이들에게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공연 전부터 즐기고 있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주일예배 후 빕스에서 배 터지게 먹고 와서 그런 걸까 갑자기 따뜻한 실내로 들어와서 그런가
아쉽게도 2호는 공연 중 반이나 '쿨쿨' 잠들었어요.
심지어 코를 골 뻔도 했죠. 다급히 자세를 바꿔주니 숨소리만 새근새근 날뿐 불편한 소음은 발생하지 않았어요. 그래도 그 녀석, 깨어있는 동안 흥미롭게 본 것 같아요. 이렇게 꽤 실감 나게 그림일기를 남겨주었습니다.
주부인 친정엄마와 공무원인 친정아빠사이에 아이는 넷… 어린 시절 영화관에도 못 가봤는데 발레라뇨.
엄마는 항상 발레는, 공연장은 재미없는 거라고 그래서 그런 줄로만 알았지요.
가끔 그게 서운했는데 그렇게 믿고 살았으니 남과 비교하지 않고 덜 부족하다고 느꼈을 것 같아요. 일종의 배려였던 것 같아요. 자식 키워보니 아이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을 못해줄 것 같을 때 마음이 많이 아리더라고요.
공연시작 전 프로그램북을 파는데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어요. 그때 1호가 다가오더니 간직하고 싶다며 손을 잡아끌었습니다.
분명 나 혼자라면 절대 사지 않았을 건데, 아이 덕에 사본 책자를 공연 전 스르륵 펼쳐봤는데 꽤나 알차고 재밌었어요.
이걸 사람들이 '왜 사는지' 이제야 깨달음이 왔지요.
나의 그때와는 다른 결로 살고 있는 아이들 그래서 뭔가 더 뿌듯하고 뭉클한 연말입니다.
남부터미널에서 나와 한껏 꾸며진 고속터미널의 신세계 백화점을 스쳐 한강다리를 건너 집에 돌아오는 드라이브했던 그 장면 장면이 모두 마음에 담겼어요.
참 낭만적이더라고요.
아마도 오늘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들 중 하루일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