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든 동네
청약 당첨으로 처음 들어본 동네에 살게 됐다.
성북구의 한 귀퉁이, 삶의 기반이 전혀 없어 두려움반 호기심반으로 시작했던 첫날, 첫 달이 기억난다.
1월이라 막 심긴 키 작은 나무들의 앙상한 가지가 스산함을 더했다.
시간이 흘러 잘 들여다보니 입주민들 대부분 이방인 같은 느낌을 갖고 계셨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하긴 다 갈아엎고 새로 지어 무려 1700세대가 넘으니 그럴 만도 하다. 이 동네 어린이집에서 안면을 트게 된 이웃들은 다 고만고만한 아이들을 키워서 그런가 친정식구들보다 애틋함을 넘어 전우애마저 느껴졌다.
개인적으로 같은 서울하늘아래 친정이 있지만 부모님 두 분 다 아직도 왕성하게 일하시고 기가 막힌 일이 발생했을 때 바로 달려올 수 없는 거리였다.
자주 왕래하지 않으니 이젠 이웃들이 되려 더 가족같이 느껴진다.
의무거주기한 2년만 채우고 떠나야지 했던 게 웬걸 며칠 뒤면 만 4년이다. 그 세월만큼 이 동네에 스며들어 소속감이 생겼음을 느낀다.
지방사람이라 서울중심에 입성하는 야무진 꿈을 꿨던 친정어머니 탓에 어렸을 적 2년에 한 번 이사를 다녔다. 정 붙일만하면 이사를 나갔다.
한 곳에 정착해서 오래 사는 것이 자녀에게 심지어 어른인 내게도 좋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 동네는 사실 학군이 가장 큰 약점이다. 그래서 학군 좋다는 동네 여기저기 기웃기웃해봤는데 비싸기만 하고 정말 낡아빠졌다. 오로지 학군때문에 그 가격이라니…자녀들이 살아갈 세상은 여전히 대학이 중요할까? 이 간단한 질문부터가 의문인데 정든 이웃, 눈에 익어버린 거리, 자주 가던 식당 그리고 주인장이 커피 내려주는 카페까지 쉽게 정 뗄 수 있을까 자신이 없어졌다.
우리 집 아가들 꿈이 할아버지 될 때까지 이 동네 사는 거라고 하길래 '피식' 웃어넘겼는데 이 기세라면 이룰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 유튜브 보다가 김붕년교수님이 이 동네 약국집 아들이었다는 어린 시절 얘길 들려주셨는데 혼자 왜 이렇게 반갑던지…
4년이 되고 나니 이동 저동 이삿짐 차량들이 분주하게 왔다 갔다 한다. 정든 이웃들이 하나둘씩 떠난다고 알려올 때마다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도 마음 여기저기 구멍이 뚫린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