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로운 부모가 되고 싶다.
아이들이 새근새근 잠든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감사하다. 한편으론 부쩍부쩍 크는 녀석들이 버겁고 두려운 마음도 생긴다.
오늘 밤에도 잠든 아이들의 발가락을 한참 만지작만지작거리며 앉아있었다.
지난 토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 흰쌀밥 한솥을 했다.
주말 오전 수업을 재빨리 마무리하고 오랜만에 김밥을 10줄 쌌다.
두 끼는 해결하려나 싶었는데 웬걸 솥 하나가 금세 텅 비어버렸고 김밥도 다 먹어버렸다.
식재료 비를 아끼고자 대형마트 가서 큰 부챗살 고깃덩이를 사서 소분해서 먹은 지 6개월이 흘렀다. 터무니없는 외식비를 줄이고 싶어 유튜브 보며 공부했다. 할 줄 아는 요리를 한 달에 1개씩 성실하게 늘려나갔다. 그러나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식재료 비에 그 모든 작은 몸부림들도 도리가 없다.
이렇게 아껴도 남는 것이 없다면 어쩌란 말인가? 뭐가 잘못된 걸까? 답을 못 찾고 있을 때 신사임당이 유튜브에 떴다.
어쩜 그리 맞는 말을 아프게 잘한다.
"절약한다고 다 부자가 됐으면 후진국 사람들이 모두 부자가 됐겠죠? 돈을 의미 있는 수준으로 벌면서 투자가 같이 돼야 하고 그리고 절약해야 돈을 벌 수 있는 거죠!"
대기업 다닐 때 동료나 선배들이 다들 쉽게 사립초 보내길래 나도 그렇게 될 거라 여겼었는데, 교습소 운영하는 우리 부부에겐 겨우 요 두 녀석 학원 두세 개 보내는 것도 버겁다. 앞으로는 어떻게 감당해 내야 할지 눈앞이 캄캄하다. 추운 겨울 따뜻한 곳에서 놀라고 등록한 태권도를 4월이 되고, 첫 아이 것을 먼저 정리했다. 학원 중에 태권도가 가장 가성비가 좋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곳이라 기꺼이 돈을 지불하는 곳이지만 두 명이면 형제할인을 받아도 월 32만 원이다.
둘째 녀석은 곧 국기원 승품심사가 있어 그때까지만 다니기로 남편과 상의했다.
이제 큰 아이가 다니는 학원은 겨우, 아파트 커뮤니티 리듬 줄넘기와 방과 후 배드민턴 고작 2개뿐이다.
그나마 매일 다녔던 태권도를 정리해 버리니 아이가 납득이 잘 안 갔나 보다. 벚꽃이 피기 시작하길래 공원을 산책하는데 아이가 손을 잡으며 나직이 묻는다.
"엄마 근데 왜 태권도를 그만둬야 하는 거야? 이해가 잘 안 가서"
바라만 보기도 아까운 아이에게 할 말이 없어졌다.
"응, 사실 추운 겨울에 안전하게 놀라고 등록한 거라서 이제 따뜻한 봄이 왔으니까 태권도 갈 시간에 놀이터에서 실컷 놀라는 의도였어. 그리고 늘 수학문제풀 시간 부족했었잖아. 하교하고 바로 문제 풀고 다 풀고 나서 편안한 마음으로 밖에서 실컷 놀아."
그렇게 설명해 주니 착한 녀석은 마지못해 알았다고 대답했다.
그늘진 것 없이 밝게 만 자란 두 녀석들에게 부모의 부족한 잔고를 들키고 싶지 않아 노력하는데 어느 날 얇게 덮인 담요를 슬쩍 들춰버릴까 봐 안절부절이다. 봄이지만 해가 지고 나니 여전히 코끝이 시렸다. 공원에서 내려와 아이들이 좋아하는 맥도널드에 갔다. 매장에 들어서자마자 로블록스 장난감을 주는 해피밀 박스가 눈에 띄었다. 아이들이 그걸 놓칠 리가 없지... 큰아이가 해피밀 주문해 달라고 여러 번 졸라댔지만 안된다고 여러 번 단호하게 말하고 나서야 치즈버거를 주문할 수 있었다. 이제부터 이런 실랑이가 얼마나 많아질 것인가, 휴... 한숨이 비집고 흘러나왔다.
언제 그랬냐는 듯 아이들은 여전히 해맑게 함박웃음을 머금고 버거들을 먹어치웠다.
회사를 그만두고 난 뒤 그래도 아침잠은 충분히 잔다고 생각했는데 입안이 헐기 시작했다. 이번엔 이상하게 목구멍 안쪽까지 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평소에 즐겨 먹었던 빅맥도, 프렌치 프라이도 입에 대지 못했다. 큰 아이가 혼자 먹기 미안했는지 억지로 입에 넣어준 감자튀김 하나를 겨우 혀끝으로 몰아내어 먹을 수 있었다.
"엄마 오늘 땀 많이 흘렸는데 목욕해도 돼요?" 라며 네 눈동자가 반짝거리며 묻는다.
"그럼 당연하지!" 하니 "앗싸!"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요즘 '안돼'라는 말을 참 많이 하고 허락을 받는 경우가 적은데, 요구사항이 겨우 따뜻한 물에 목욕하는 것일지라도 이렇게 기뻐하고 감사하는 두 녀석들에게 존경심과 고마움이 올라온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욕조를 정리하고 목욕물을 받는 아빠에게 둘째가 갑자기 "아빠 고마워요!" 한다.
"뭐가 고마워?" 남편이 물으니 "난 아빠가 늦어서 목욕 안돼!라고 할 줄 알았는데 아빠가 목욕허락해 줬잖아요!" 하며 배시시 웃는다.
그 미소에 마음의 한기가 저 멀리 달아난다.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들이 멀리 있지 않다.
이런 사랑스러운 천사들...
드라이기 열기로 머리카락을 말려주고 깨끗이 세탁된 새 옷을 입히고 잠자리 책을 두어 권을 읽어줬다.
돈이 들지 않는 사랑은 최선을 다해 듬뿍듬뿍 쏟아주리라... 얼른 이불 속에 들어가 쉬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둘째가 야무지게 들고 온 영어책 3권을 모두 읽어주었다.
새근새근 잠든 아이들의 발밑에 우두커니 앉아 시린 마음의 매무새를 다잡아 본다.
돈을 많이 벌지 못해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다시, 일터로 가야 할까?
요즘 대기업도 힘들어 나이 든 워킹맘 쉽게 받아주지도 않을 텐데 그곳에 다시 눈길이 간다.
불러준다 하더라도 외국인 남편을 두고 혼자 일터에 나갈 상상만으로도 또 시름이 깊어진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신세...
무엇이 맞는 방법일까?
불안한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나에게 넋두리를 남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