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날이 밤에 도둑같이 이른다
올해 3월 친정아버지께서 일흔이 되셨다.
백세인생이니, 긴 여정의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지난 금요일 교습소 수업준비를 하던 중에 아버지가 심정지로 발견되셨다는 카톡알림이 떴다. 회사 다닐 때는 이런 일이 닥치면 바로 양해구하고 달려갔을텐데, 전화해볼 수 있었을텐데 대체 불가능한 교습소를 운영하고 있으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결국 마음만 동동거리고 티도 내지못한 채 불안한 오후를 보냈다.
친정어머니는 황망한 마음으로 응급실로 향했고, 아버지 수술 전까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무사히 수술이 끝나고 중환자실에서 수면제에 의지하여 주무시고 계신지 5일 째
간단하게 가족끼리 식사로 끝내버렸던 일흔 살 생신이 떠올랐다.
'더 잘해드릴걸 , 호텔도 1박 예약해드릴걸...' 후회가 밀려왔다.
성경말씀에 주의 날이 밤에 도둑같이 이른다고 하셨는데 이게 개인화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철인처럼 쉬지않고 일만하셨던 분이라 쓰라렸다.
딱 1주일 전이었다. 뇌출혈로 친정 아버지를, 폐암 4기 진단으로 친오빠 마저 먼저 보내야만했던 고등학교 동창이 저승사자다음으로 오는 손님은 국세청이라고 조언했다. 부모님께 말씀드리기 어렵고 민망할 수도 있겠지만 언제 그날이 닥칠지 모르니 미리 준비해야한다고 조언했다.
사남매방에 조심히 그 내용을 올렸더니 남동생이 어련히 부모님께서 알아서 하셨겠냐며 문제만들지 말자고 해서 그냥 넘어갔었다. 이런 날이 일주일 뒤에 찾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침에 늘 하시던 대로 전기 자전거타고 출근하셨다고했는데...
친정 부모님은 35년간 부은 청약에 운 좋게 당첨되셨다. 은퇴무렵이라 대출이 어려워 당시 매도해버릴까도 수만번 고민하셨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대출을 실행할 수 있었고 양도세를 줄이기 위해 비싼 대출금을 갚으며 그 집에 거주한지 7년이 다 됐다. 이제 의무거주기한도 끝났고 양도세도 많이 줄인 것 같으니 그만 고생하시고 이사가라고 말씀드렸지만 매번 들으려하지 않으셨다. 두분은 자동차 세가 아까워 오래된 경유차를 처분하고 무더운 여름에도, 추운 겨울에도 자동차없이 뚜벅이로 다니셨다. 벌써 20년 전 심근경색으로 큰 수슬을 받으신 아버지가 걱정스러웠지만 그 고집은 아무도 꺽을 수 없었다.
공무원으로 명예퇴직하셨기 때문에 연금 수입도 꽤 되는데 그걸 절반이나 포기하시고 하루 일하고 하루 쉬는 아파트 전기 기사로 일하셨다. 그래서 애석하게도 퇴직 후 아버지는 1박 이상의 여행을 떠나지 못하셨다.
그 연세에 월 800만원 가까운 급여를 벌지만 끔찍하다면서도 직장에 묶여 하루하루를 성실히 채우셨다.
심정지가 온 날도 근무 중 냉장고 앞에 쓰러진 아버지를 동료가 발견해 신고한 것이라 했다.
독하게 아끼고 대출금만 겨우 겨우 갚으며 살아오셨는데 중환자실에 누워 그동안 부족한 잠을 몰아 주무시고 계신다. "이제 그만 고생하시고 쉬세요" 할 때마다 세테크가 중요하다고 강조 하셨었는데 이렇게 어쩔 수 없이 증여세, 상속세 혹은 가산세로 애쓰고 지키려고했던 재산을 다 나라에 환원하게 생겼다.
하루아침에 성실하게 일하던 남편이 쓰러진 친정어머니는 벌이가 없으니 이제 그 집에서 더이상 살 수 없게 됐다. 그들이 그렇게도 싫어했던 '급매'를 하게되는 상황에 다다랐다.
이렇게나 사람은 어리석다. 한 치 앞을 볼 수 없다.
아버지가 갑작스레 쓰러지신 것은 가슴아픈 일이지만 고집스럽게 하루하루 살아가던 부모님께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었으면 좋겠다. 이 사건이 아버지에게 두번째 삶의 선물이길 바라며... 안타까움을 끄적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