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의 이직

3인분의 이직, 아직도 우린 적응훈련 중

by 마더 R

2007년 대학을 졸업하던 해 초대 강사가 경력관리에 대해 했던 조언이 있다.

"한 직장에 오래 근무하는 것은 더 이상 미덕이 아닙니다. 여러 번 해야 경력에 도움이 돼요. 하지만 너무 잦게 하는 것은 오히려 독이 되므로 3~4번 정도 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그분의 말을 마음에 새기고 '은퇴하기 전 적어도 3번은 하자' 며 다짐했던 걸 올해 8월 로켓처럼 빠른 회사에 3번째 입사하는 것으로 실천했다.

이직, 누군가에게 꽤 쉬울 이 단어가 아들 둘맘인 나로서는 큰 도전이었다. 작년 과장을 달자마자 준비를 시작했는데 실제 실행에 옮기기까지 약 1년이 걸렸다.

이직 서류를 떼면서 이곳에서만 9년이란 세월이 흘렀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문화를 선도하는 기업인 2번째 회사는 유통공룡이었던 1번째 회사와 분위기가 참 달랐다.

감정노동이 심했던 이곳에서 한 달만 버티자 1년만 버티자 했던 것이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할 때까지만 견디자에서 애들을 낳고 나니 그렇게 돼버렸다.


어느새 나도 낼모레 마흔인 꼰대 선배가 된 것이다.


9년 만에 재입성한 이직 세계는 내가 알던 것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크게 3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 번째는 네카라쿠배

두 번째는 온라인 마케터로서 필요한 역량

세 번째는 달라진 나의 연차

볼라에 올라온 광고 클릭시 잡코리아로 이동

2011년도 입사 당시 만해도 이커머스 업계는 일단 고객들에게 익숙하지 않았고 신뢰를 얻지 못해

백화점을 가진 롯데, 신세계, 현대 또는 홈쇼핑을 가진 CJ, GS 정도의 대기업들이 판도를 쥐고 있었다.

경력자들이나 대학생들이 입사를 꿈꾸는 회사들이라 포털에는 5곳의 복지를 비교하거나, 신입사원 연봉을 문의하는 글들이 쇄도했었다.

그런데 요새 잡코리아나, 잡플래닛에 들어가 보면 심심치 않게 네카라쿠배 어때요?라는 글들을 발견할 수 있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의아했는데 가만히 내용을 들여다보니 네이버/카카오/라인/쿠팡/배민을 말하는 약어였다. 이커머스 신생업체들의 위상이 10년새 완전히 바뀐 것이다. 홈쇼핑 회사 안에만 있을 때는 업계가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는 사실을 못 느꼈는데 이직을 준비하게 되니까 달라진 세상에 대해 눈을 뜨게 됐다.

Al 시스템도입 후 빠르게 변하고 있는 업계상황 및 가까운 미래에 대한 걱정글 '블라인드 캡쳐화면'

첫 번째 이직은 마치 아메리칸드림처럼 꿈꿔왔었던 그것과 많이 달랐다.

달라진 문화에 적응하지 못해 팀장의 눈밖에 나면서 내리 두 번의 승진 누락을 경험했고 아들 1호를 낳고 1년 육아휴직을 쓰고 복귀하니 고과를 1년이 아닌 3년 치를 검토해야 한다며 인사팀의 정당한 사유로 또 한 번 누락을 당했다. 그 덕에 "애티튜드"란 단어에 대해 깊이 묵상하게 됐고 2호를 낳고서는 성치 않은 몸으로 출산휴가가 끝나자마자 3개월 만에 복귀했다. '수치스러운 기억'은 그렇게 사람을 움직였다. 결국 19년 3월 1000명이 일하는 이 거대 기업에서 그 어렵다는 과장 나부랭이가 됐다.


12년 차 경력자라 파트장을 달만도 한데 워낙 승진이 힘든 곳이기도 하고 복지가 훌륭해 위로 나이 든 과차장이 많기도 많아 사실상 대리급 과장이 된 거다.

그러나 시장은 팀장으로서의 people manage 역량을 요구했고 온라인 마케터로서 R, SQL 같은 언어를 이해하고 분석할 수 있는 능력도 요구했다.

후자는 아마도 올해 찾아온 코로나 19 탓에 많은 회사들이 빠르게 Digital Trasformation을 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잔업무는 AI 시스템이 해결해주니

실무자는 불필요한 잔업을 줄이고 마케팅 사전 사후 분석 역량이 더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요새는 이걸 전문용어로 Growth hacking이라고 부른다.

그렇게 나와 맞는 회사를 찾기까지 여러 번 서류가 떨어지기도 하고 면접에서 고배를 마셨다. 거진 1년이 걸렸다.

사실 3번째 회사는 정말 가기 싫었던 곳이었다. 블라인드나, 잡플래닛을 통해 보면 팀바팀, 사바 사라는 단어가 왕왕 보일만큼 이직 이후의 삶을 가늠하기 어려웠고 이미 4월에 이직한 동료를 통해 엄청 힘들다는 얘기를 너무 많이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절대 진지하지 않고 가볍고 진실된 마음으로 5월에 면접을 보기 시작했는데 1차, 2차 전화면접을 통과하더니 4시간 줄다리기 면접까지 통과해버렸다.

역시 인생은 다큐를 찍지 않을 때 풀린다.

연봉협상까지 약 한 달 반이 걸렸고 6월 30일 최종 마무리가 됐다.

끝내 너무도 가기 싫었던 3번째 회사로 가게 된 것이다.

하지만 예상했던 대로 끝이 아닌 시작이었다.

연봉협상이 끝나도 워킹맘의 이직 준비는 결코 끝이 아니다.

만 1세, 만 4세의 두 아들을 키우고 있는 워킹맘이라 비유하자면 날개 잃은 선녀나 다름없었다.

내겐 두 아이들의 이직이 남아 있었다. 이직이 진짜 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해 1호 2호 두 녀석도 홈쇼핑사에 딸린 직장어린이집에 보냈던 것이 화근이었다.

그래서 이직 결정이 결코 쉽지 않았다. 아이 둘을 데리고 많은 환경이 변하는 이직은 사실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다.

내 이직 준비는 그렇다 쳐도 아이들이 이직이 되지 않으면 난 결국 이 오퍼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문화를 선도한다던 홈쇼핑사는 위로는 적재된 인원들이 많았고 텃새로는 일등 먹는 회사였다.

경력자들은 이직을 한 뒤 적어도 1년 동안 그 문화에 적응하느라 고군분투하는 것을 끊임없이 봐왔다.

혼자도 힘든데 두 아이를 데리고 힘든 시간을 견뎌낼 수 있을지 전혀 자신이 없었다. 새로 가게 될 회사에 텃새가 없으리란 보장이 없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결국 아이들의 마음이 문제였다.

운 좋게 큰 아이는 새로 입사할 회사 바로 뒤에 어린이집에 등원하게 됐고 2호는 작년까지 다니던 친정 아파트 내의 국공립 어린이집에 재원 하게 됐다.

하늘의 도우심으로 둘 다 입사 일에 맞춰 새 어린이집을 찾긴 했으나 아이들의 마음까지는 일정에 맞추지 못했다.

이미 겪어본 이직이라 나 스스로는 모든 고난을 겪을 각오가 될 만큼 돼있었지만 아이들은 그렇지가 않았다.

특히나 내 욕심 때문에 변화를 겪는다는 죄책감에 몸과 마음이 어려웠다.

큰아이는 소위 핵인싸로 통해서 '무리 없이 적응할 수 있을 거야'라고 감히 자신했었는데

아이에게 엄마가 이직을 하게 돼서 어린이집을 옮기게 됐다고 설명을 하니 그날 밤부터 잠들기 전 30분이 넘게 울기 시작했다.

겨우 진정을 시키고 잠을 재우려는데 아이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며 신나게 제안을 했다.


1호 : 엄마 앞으로 아침마다 등원 안 시켜줘도 돼 아빠랑 갈게. 엄마는 엄마 회사가 그럼 계속 나 키즈빌 다녀도 되는 거지?

나 : 아니, 그게 아니야 멀어서 갈 수가 없어...

1호: (울먹울먹) 아니 왜 ~

나: 엄마가 좀 고민을 해볼게.

그렇게 하루가 지났고...

결국 일주일 뒤 이런 말을 뱉어냈다.

1호 : 날 이렇게 힘들게 할 거면 왜 낳았어? 선생님이 친구들에게 그만둔다고 말하면 다 슬퍼하니까. 아직 말하지 말라고 그랬는데 나연이한테만 어쩔 수 없이 말했어.

나연이가 가지 말라고 슬퍼해줬어 엄마 난 왜 엄마를 따라서 가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 나랑 동생이랑 이제 독립할 거야 우리 둘이 살아갈 거야. 나 새로운 어린이집 친구 때릴 거야. 선생님도 때릴 거야. 어린이집 부술 거야.

그럼 키즈빌로 다시 올 수 있는 거지?


나 :아니 그렇게 한다 해도 이제 못 와. 그럼 또 다른 데로 옮길 거야


1호: 그럼 그 어린이집도 내가 싫으면?


나 : 그럼 또 옮겨야지 하지만 키즈빌은 이제 다신 올 수 없어 네게 미안하지만 여기 직원만 키즈빌에 갈 수 있어


1호 : 엄마 왜 회사 옮겨 왜 그래. 왜 키즈빌 다니는 애들은 다 그대론데 나만 옮겨 그럼 처음부터 키즈빌에 보내지 말지

동생은 아기니까 아무것도 몰라서 좋겠다.


생각지 못한 이런 말들을 쏟아내니 퇴사하겠다고 했던 말을 당장 취소해버리고 싶을 정도로 마음이 쓰라렸다.

다른 워킹맘들이 바보라서 그냥 참고 회사를 묵묵히 다니는 것이 아닌 텐데 말이다.

큰아이의 마음을 위로해주고 두 아이의 서류를 준비하고 각각 적응훈련에 돌입하며 쉴 틈 없이 무덥고 습했던 7월 한 달을 보냈다.

마치 한 명이 아니라 3명의 이직을 준비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2호는 아직도 어린이집에 갈 때마다 가기 싫다고 서럽게도 운다. 키즈빌 갈 때는 작은 배 낭배고 하늘을 날것처럼 가볍게 갔었는데

늘 신바람나는 모습으로 키즈빌갔던 아가들

내게 말로 쏟아내지 못한 분함을 그렇게 울음으로 표현했던 것 같다

이직을 준비하는 바쁜와중에도 꾸준히 써오던 블로그 , 브런치 그리고 새롭게 해 보려던 유튜브도 무기한 휴업에 들어갔다.

그렇게 난 3번째 이직을 해냈고 벌써 한 달이 돼간다.

우리의 적응훈련이 시작됐다.

아직까진 소문보다 워라밸 좋고 사람들이 괜찮다. 인수인계를 적어도 꼼꼼하게 해 주었고 텃새를 느끼지 못했다. 3번째 이직 시작이 좋다. 역시 도전은 해보고 후회해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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