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새

코로나 이후의 이직

by 마더 R

#텃새 : 계절적 이동을 하지 않고 일정 지역에서 연중 살면서 번식도 하는 새


#코로나 2단계로 접어들 무렵 두 번째 이직을 했다. 첫 이직 때 전 직장과의 문화 차이로 적응이 힘들었던 기억을 더듬으며 어느 정도 각오는 돼 있었다.

무려 9년 만이다. 2번째 이직을 한 후 어느새 5개월이 눈 깜작할 사이에 흘렀다.

힘들 것이라 예상은 했었다.

하지만 대리로서의 이직과 차장으로서의 이직의 강도는 예상 밖이었다.

싱글이었던 첫 번째 이직과 두 아이를 키우는 지금, 환경의 변화는 컸다.

게다가 코로나로 재택근무가 계속됐다.

팀 구성원은 총 4명으로, 팀에서 한 명씩만 출근하라는 권고가 내려오니 같은 팀이라고 해도 근무한 기간 중 서로 직접 얼굴을 마주한 적이 손에 꼽을 정도다. 4명이 모두 모여서 얘기를 나눈 적은 3번? 일게다.

올해 코로나가 창궐하는데도 기존 회사는 일주일에 2번 정도만 재택을 허용했고 당시 과장이었던 나는 재택은 집에서 노는 것이라는 훈수를 들으며 상사의 눈치를 살펴야만 했다.

새 직장은 그와는 정반대였다. 업무 분위기를 이메일과 줌 미팅으로 익혀야 했다. 슬랙 콜이나 줌으로 언제든 연결돼서, 전화기조차 별도 결재를 올려 받아야 하는 곳이었다. 출근해서라도 온몸으로 달라진 문화를 익혀야 하는 이직자로서는 여간 불편하고 어색했던 것이 아니다.

슬랙, 줌 없이 전화로 바로 궁금한 것을 질문하거나, 다 같이 모여서 대면미팅을 주로 했던 전 직장과 스타트업인 이곳의 환경은 180도 달랐다.

정치는 하지 않아도 돼 좋았지만 그건 잠깐이었다. 한 달이 됐을 즘 난 무서운 사실을 깨달았다. 이곳에서 알바가 하는 일과 차장인 내가 하는 일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젊고 손이 빠르고 애가 없는 그들이 나보다 적응이 빨랐고 연봉이 낮으니 기대 수준도 낮아 회사의 기대를 쉽게 만족시켰다. 나 또한 슬랙으로 보이는 닉네임으로는 상대편의 경력이나 나이, 성별조차 가늠이 쉽지 않았다. 누가 알바인지 누가 경력직인지 알 턱이 없었다. 내가 그렇듯 그들 또한 결국 실무로 나를 판단할 것이다. 현기증이 느껴졌다.

누구에게라도 뭘 물으면 #위키 뒤져봤냐는 자동응답기 같은 답을 주었다. wiki는 그곳의 시스템에 익숙한 사람을 바탕으로 내용이 쓰여 있었다. 그래서 뒷단, 시스템에 대한 설명은 부족했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신규 입사자는 wiki를 아무리 봐도 50% 정도만 업무파악이 됐다. 결국 자세한 인수인계가 동반되어야만 했다. 어떤 키워드는 위키 결과 값만 몇 페이지가 나왔다. 그중에 어떤 것이 내가 찾는 정보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심지어 그들은 내 업무능력에 대한 판단도 빨리했다.

나에게 천천히 적응할 시간 따위 허용하지 않았다.

늘 성격이 급하고, 너무 빠르게 일처리를 한다는 평을 들었던 나였다. 그런 나도 놀랄 만큼 짧은 시간에 나를 평가해버렸다. 적응에 3개월이 필요하다는 내 편견을 가볍게 부서 주었다. 새벽 6시 반부터 밤 12시까지 쉼 없이 일하던 나는 적응이 느리고 , 실수를 많이 해서 차장답지 못하다는 평가를 들었다. 입사하자마자 야근이 많았지만 나의 적응기라고 생각하고 야근수당 신청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대기업인 전 직장은 휴일엔 휴일수당을, 야근을 할 땐 야근수당을 당연히 줬었다. 그래서 하루는 새벽 2시까지 일하다가 메신저에 있는 팀원을 발견하곤 야근수당은 어떻게 신청하냐고 물었더니 계약서 제대로 안 읽어봤냐는 무시를 당했다.

그렇다 이곳은 무시가 일상화돼있었다. 회사 평판과 다르게 사람 손을 타는 일이 많아서일까? 휴먼에러가 많을 수밖에 없었고 시시때때로 품절 체크를 하며 디자인 수정을 해야 했다. 그래서인지 이곳에서의 인상은 모두 뾰족하다는 것이다. 그들은 궁금해서 질문하는 상대편을 쉽게 무시하고 판단했다. 결국 입사 2개월 만에 야근수당을 물어 분위기를 흐렸고, 차장으로서 Attitude가 별로라는 주홍글씨를 달고 새로운 팀으로 옮겨졌다.


팀을 옮기고 조직장과 1:1 시간이 있었다. 2분기에 입사했으니 평가대상이 될 텐데 중간에 애매하게 팀이 옮겨져 내 평가가 어떻게 되는 것인지 질문을 했다. 전 리더가 2개월 만에 나를 평가했다고 들었는데 정확한 평가가 궁금하다고 용기를 내 물었다.

조직장은 약 30분 동안 나에게 매우 독한 말들을 쏟아냈다. "본인 매우 느린 거 알아요? 평가 궁금해하니까 알려줄게요. 내년 연봉 동결이고 인센티브 없습니다."

용기를 내어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었더니 꼴찌라고 힘주어 말해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엔 다시 전 직장으로 돌아가 보는 거 어때요? 라며 대안도 제시해주셨다.

고맙게도.

9년 만의 이직이고 아이가 둘이나 딸린 워킹맘이라 결정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야근이 많고 힘들어도 내 책임을 다하기 위해 새벽 6시 반부터 12시까지 배우기 위해 맡은 바를 해내기 위해 노력했는데 너무도 단호하게 나는 꼴찌였다.

조직장과 살벌했던 1:1 미팅이 끝나자마자 새로 간 팀원들과 미팅이 시작됐다. 리더가 묻는 질문이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질문과 답변이 다르게 나왔고

줌이라 상대편의 얼굴을 볼 수 없었지만 새로 만난 리더가 한숨을 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도 전 리더에게 나에 대한 얘기를 들었으리라...

집중하지 못했던 팀 미팅이 끝나고 리더에게 1:1 미팅을 요청했다. 그리고 조직장과 있었던 얘기를 가감 없이 들려줬다. 이러이러해서 팀 미팅에 집중할 수 없었고 마음이 어렵다. 그는 어떻게 손 쓸 수 없을 만큼 최악의 상황이나, 어떤 말로도 지금의 상황을 바꾸긴 어렵다. 하지만 본인의 자리에서 묵묵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달라고 했다. 그 후로 한 달이 흘렀다.

처음 2주간은 구름 위를 붕붕 떠다니는 것 같았다. 영혼은 가출한 채 껍데기만 책상 앞에 앉아 주어진 일을 수행했다.

아이들이 하원하고 돌아와 엄마, 엄마 하며 10번씩 불러대도 난 듣지 못했다. 누군가 내 몸을 계속 흔들어대서 옆을 보면 아이가 원망스러운 눈으로 날 지켜보고 있었다. 내가 아이들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귀 기울이지 못하니 더 떼를 쓰고 나와 함께 있으려고 했다. 여러 번 아이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나의 분노를 받아내야만 했던 아이들도 불쌍했지만 나도 살고자 몸부림을 쳤던 것 같다. 내 마음은 구멍이 뚫려있어 퍼줄 것이 없는데 미칠 노릇이었다.

운이 좋은 건지 그녀와의 잔인한 1:1이 있은 후 코로나 2.5단계가 되었고 연말까지 100% 풀 재택 명령이 내려졌다.

코로나 탓에 적응이 참으로 힘들었던 이곳이 코로나 덕에 불편한 사람들을 마주치지 않게 해 주었다. #프리랜서처럼 그저 내게 맡겨진 일들을 묵묵히 수행해내면 되었다. 기분대로 당장 관둬봤자 바로 일자리를 구하기도 힘들 거고 이렇게 프리랜서 기분을 느끼며 버텨보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아이들에게 배우자에게 더는 분노를 쏟아내지 않기로 스스로 다짐했다.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택했던 이직행이 아니었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러고 나니 다시 아이들에게 눈길이 가고, 가족이 있어 힘을 내어 하루하루를 살아내었다. 그리고 달력에 스스로에게 상을 주듯 지나간 날짜마다 빗금을 쳤다. 그렇게 가출된 영혼은 껍데기로 돌아왔다.


힘들지만, 최악은 아니니 #존버 하자.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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