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곳으로의 여행은 일상의 쉼표다

일기 같은 시 한잔

by 현정아

낯선 곳으로의 여행은 일상의 쉼표다


시 / 현정아


성당에 들어갔다
나는 신자가 아니다
아무 종교도 믿는 것이 없다
열린 문으로 무작정 찾아간 아침의 성당은 고요했다
아무도 없는 긴 의자에 앉아 성경책이 꼭 맞을 법한 조그만 선반 같은 테이블에 책을 펼쳐 놓는다
창문으로 빛이 새어들면 책으로 오색빛이 새어 든다
예수님이 글라스로 파고들며 온 공간을 품어간다
고요의 성당, 책 소리만 사라라락
둥근 아치형의 높은 천장을 고개로 빤히 올려다보니 저절로 숭고해진다
공간의 분위기에 압도된 나는 불청객
성경 대신 책을 읽는 나조차 그대로 맞이하는 곳
조용한 목덜미에 환한 웃음이 가르랑거린다
무언가 위로받고
낯설지만 편안하고
공간 속에 휴식이 된
이 맛을 처음 느꼈다
오늘 나는 새로운 곳에서 제대로 여행을 한다
여전히 나는 천주교 신자는 아니지만, 다음에 또 오고 싶다




모처럼 쉬는 날 오전 10시 일정을 제하면 아무 일도 없는 황금 같은 시간이 내게 두 시간이나 주어졌다.
이런 날에 일찍 카페에서 책을 읽고 싶은 생각이 들어 출근하는 날, 여느 때처럼 집을 나섰다.

책 한 권을 손에 들고 카페로 들어가 커피와 함께 찬찬히 소화시킬 참이다. 우유 거품이 풍부한, 내가 좋아하는 카페라테 한 잔 주문하고 앉아 창밖으로 펼쳐진 녹음의 계절을 만나는 순간이 근사해진다.

따뜻한 커피와 어울리는 책을 꺼내 펼쳐 드는 맛이란 진정의 자아를 만나 즐겨가는 한 폭의 그림 같은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카페 음악은 유유히 흐르며 테이블마다 동동 울린다. 이런 금쪽같은 시간을 나와 이룬다.

조성익 작가의 『건축가의 공간 일기』라는 책을 읽는다. 건축가이지만 건축에 관한 책이 아니라 공간이 주는 미학을 자신의 관점으로 나타내어 기록한 책이다. 공간을 따라 읽다 보니 성당 이야기가 나왔다. 뾰족한 탐침의 웅장한 외국 성당이 눈에 들고 언제나 열린 공간이기에 머물렀던 기억을 따라 쓴 문장을 읽다 보니 나도 그곳으로 가보고 싶었다. 그 공간에 머물면 어떤 느낌일까?

예전에 자주 들르는 꽃집에 꽃을 주문하러 갔는데 꽃집 사장님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 자신이 다니는 성당 이야기가 나왔고 나도 지나다니며 예쁜 성당이라는 생각을 했던 곳이었다. 10년 동안 신자들이 함께 일구고 세운 성당이라 뿌듯함과 자부심이 남다르게 느껴졌다. 눈빛과 말투에 애정이 가득했다. 어제나 열려 있고 누구나 들러도 된다는 말이 불현듯 생각났다.

오! 이곳으로 가볼까? 나에겐 30분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다. 야호! 나는 신자는 아니지만, 항상 열려 있다는 말에 문을 열어낼 용기가 생긴다. 지나다니며 보았던 성당은 파란 하늘과 잘 어울려 우아하고 아름다운 자태를 뿜어낸다. 꽃길에 선 성모마리아 상이 고개를 떨구어 인자하게 웃고 있다. 푸른 청춘의 계절이 성당을 유유히 밝힌다. 아침은 가장 환해지고 바람이 지나고 푸릇한 싹들이 힘차게 자라 온 세상이 초록이라 그것만으로도 벅차다.

조심스럽게 문을 연 성당엔 평일이라 그런지 아무도 없다. 제일 끝에 자리해 앉아 공간을 찬찬히 올려다본다. 높은 천장은 위엄이 있기보다 넓고 아늑하게 온몸을 감싸는 느낌이 든다.
창문마다 드리운 빛깔이 참으로 곱다. 색깔이 있는 글라스를 통해서 해가 들어오고 형형색색 이루는 빛깔이 실내를 다시 장식하며 그림 같은 풍경을 자아낸다. 무언가 편안하고 신성해지는 기분이랄까. 그 기법이 바로 고딕 양식의 스테인드글라스였다.

조그만 앞쪽 탁자에 올려놓은 책은 비록 성경책은 아니지만, 공간 안에 미학을 제대로 담아낸다. 나그네 같은 낯선 이의 방문을 흔쾌히 받아 주는 곳. 누군가의 휴식 같은 일상의 여행을 겸허히 인정해 주는 곳. 처음 방문한 공간이 압도적인 것이 아니라 마음을 편안하게 들일 수 있는 곳.

이곳에서 짧은 독서를 했다. 짧지만 기막힌 시간이다. 어떤 공간에 내가 머물러야 하는지, 공간 안에 내가 어떤 분위기를 풍기어야 하는지 생각해 본다. 일상에 지나친 수많은 공간 안에 새로이 발견할 쉼표 같은 일들이 다르게 다가온다. 내가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지는 눈앞의 현실은 멀리 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그곳이 바로 색다른 여행이 된다. 숨겨진 공간을 찾아내는 일들이 공간을 비추는 나의 기록이 되니 이 또한 기쁜 일이다.


카페 테라피
하늘
성경대신 책 한 구절
공간이 주는 미학
아름답다
빛나는 일상의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