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기록
방황의 2021년을 지나 2024년이 된 지금, 여전히 나는 광고와 커뮤니케이션으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AE에서 마케터로, 마케터에서 프리랜서 기획자로, 그리도 다시 AE로. 일의 정의와 형태는 계속 바뀌었지만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범주 안에서 내가 해온 일들은 크게변하지 않았다. 일의 본질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솔루션을 찾아주는 일“ 로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브랜드가, 소비자가 처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솔루션을 제시하는 역할. 그리고 그 솔루션은 브랜드마다 천차만별이다. 광고가 될 수도, 콘텐츠가 될 수도, 오프라인 경험이 될 수도, 프로덕트가 될 수도 있다. 수많은 솔루션 중에서 각 브랜드에게 꼭 맞는 솔루션이 무엇인지 전략을 세우고, 방법을 고안하고, 눈에 보이는 결과물로 만들어내는 것은 내가 하는 일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과정이다.
그 과정은 절대 나 혼자 진행할 수 없다. 광고를 만든다면 광고를 만드는 프로덕션과, 콘텐츠는 크리에이터들과, 오프라인 경험은 BTL 팀과 함께 진행해야 한다. 왜냐면 나는 상위의 전략과 빅아이디어를 기획하는 기획자이지, 실제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창작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 프로젝트를 추진할 때마다 다양한 파트너사들과 합을 맞추며 일하게 된다. 실제로 지금 담당하고 있는 프로젝트에는 10곳이 넘는 파트너사들이 투입되어 협업 중이다.
3달 가까이 끌고 온 프로젝트 론칭을 앞두고, 지난 시간 가장 힘들었던 것이 무엇이었냐 묻는다면 클라이언트의 피드백도, 시안이 중간에 엎어져 다시 작업한 것도 아닌 파트너사들을 믿어주는 것이었다. 함께 일하는 파트너사들이 나의 기대치만큼 결과물을 가져와주길 바라는 마음에 데일리로 마이크로매니징을 하고, 전달된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그들의 노력과 과정에 대한 인정보다는 피드백이 먼저 앞섰다. 프로젝트의 총대를 메고 있기에 이게 당연한 거라고, 내 기대치만큼 파트너사들이 일해주지 않는단 생각에 더 채찍질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의 생각과 판단이 맞다고 확신했다.
시간이 흘러 돌이켜보니 성숙하지 못한 업무 방식이었다. 최고의 결과물을 만들고 싶어서라는 나의 선한 의도는 나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에 담겨 있지 않았다. 그저 나는 내가 직접 키보드를 두드리며 만들어내는 페이퍼 결과물 외에는 그 어떤 것도 믿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하면 더 빠르게, 더 잘할 수 있는데", "왜 내가 기대한 만큼 해오지 않는 거지?"라는 오만한 생각이 가득했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어느 곳에도 이야기하지 못하는, 나의 공간에 남겨보는 자기 고백이다.) 광고주가 나와 우리 팀을 믿어준 것처럼, 나 역시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파트너사들을 믿어주고 존중해주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단 사실이 부끄럽다. 10년 차가 되어도 부족한 것이 너무 많고, 배워야 할 것이 너무 많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이 참 멀다.
믿어주고, 지지해 주는 파트너가 되는 것.
올해 나에게 꼭 필요한 마음가짐일 것 같다.